ADVERTISEMENT

[김종덕의 북극비사]고기에 뿔·혀·순대까지…모든 것 내어주는 순록의 운명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 툰트라 북극권에 위치한 네네츠자치주 유민민족의 전통가옥 '츔'

러시아 툰트라 북극권에 위치한 네네츠자치주 유민민족의 전통가옥 '츔'

⑰ 북극사람들이 먹고 사는 법

수년전, 러시아 네네츠 자치구의 북극권 항구도시 나리얀마르를 방문했을 때다. 마치 우리의 전통시장 골목에서 소고기 수육을 삶는 듯한 냄새가 ‘ 츔’이라고 하는 텐트처럼 생긴 가옥안을 가득채웠다. 그들의 진짜 삶의 속살을 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북극권에서 마주하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음식이다. 10년 가까이 북극권을 다니면서 그들의 음식을 보고 느낀 것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모순된 표현이지만 ‘익숙함 속의 생소함, 생소함 속의 익숙함’이라 하겠다.

러시아 북극지역에서 전통복장을 입은 원주민과 순록. 이곳 사람들에게 순록은 가축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TASS=연합뉴스]

러시아 북극지역에서 전통복장을 입은 원주민과 순록. 이곳 사람들에게 순록은 가축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TASS=연합뉴스]

우리 민족과 닮은 북극 원주민 

북유럽의 일부 북극권을 제외하면 시베리아ㆍ북미ㆍ그린란드 원주민들은 우리와 생김새가 닮아 있다. 또 그들의 믿음과 생활방식,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모습은 우리의 옛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가끔 낮선 길을 가더라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섞여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도 매끼 먹어야 하는 식사 때가 되면 가끔 낮선 광경을 보게된다.

세상 어디든지 음식은 그곳 문화의 총화(總和)이고 민족을 특징짓게 하는 기준의 하나가 된다. 생각해 보면 수백 수천년간 365일 매일 세끼씩 수천가구의 집에서 변화해 온 전통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치유하는 먹거리를 넘어선다. 더군다나 북극권과 같이 식재료가 제한되고 고립된 곳의 음식에는 재료보다 더 많은 사람들간의 이야기가 담길 수 밖에 없다. 우리와 기후대가 달라 어쩔수 없이 음식을 만드는 재료도 다르고 음식에 가미되는 조미료나 향료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북극음식의 놀랍고 순수한 비주얼에 잠시 얼어 붙을 때도 있다.

순록뿔 요리. 단단해지기 전 부드러운 뿔을 요리해 먹는다. 겉은 솜털로 덮혀있는데, 구워서 그대로 먹는다고 한다. 소금에 찍어서 먹는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순록뿔 요리. 단단해지기 전 부드러운 뿔을 요리해 먹는다. 겉은 솜털로 덮혀있는데, 구워서 그대로 먹는다고 한다. 소금에 찍어서 먹는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중국·일본보다는 한국 닮은 북극음식 

하지만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요리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많이 다르고, 주로 물에 삶아서 따뜻하게 만드는 우리의 음식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들의 음식문화도 자연과 매우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식물이나 곡물의 생장이 제한되기 때문에 채소나 과일ㆍ곡류는 흔치 않고 목축과 사냥, 어로활동으로 얻은 재료를 이용한 육류가 주식이 된다.

북극의 음식은 수세기 동안, 아니 그것보다 더 긴 세월동안 북극사람들이 가진 삶에서 습득한 전통지식 위에 발전해 왔다. 계절마다 회유하는 고래ㆍ철새ㆍ연어는 그들의 삶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식량이 되어왔다. 그래서 기후의 변화로 동물들의 이동경로가 바뀌거나 개체수가 줄어들면 다른 대안이 없는 그들의 식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특히 순록이란 동물은 북극 유목민인 그들을 상징하는 심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로부터 발전한 음식문화는 전통과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건강을 보장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그들은 순록을 존중하고 보물처럼 아낀다.

 ‘부유렌’이라는 부르는 순록 피순대. 북극지역 순록유목민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요리이다. 도살 즉시 만들어지며 대부분 내장과 피만으로 만들지만 일부지역은 맛을 더 내기 위해 순록고기를 넣기도 한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유렌’이라는 부르는 순록 피순대. 북극지역 순록유목민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요리이다. 도살 즉시 만들어지며 대부분 내장과 피만으로 만들지만 일부지역은 맛을 더 내기 위해 순록고기를 넣기도 한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기르는 순록 도살할 땐 눈 가리고

예를 들어 시베리아의 에벤키족은 대부분 야생순록을 사냥하여 고기를 얻고 기르는 순록에게서는 주로 젖을 얻는다. 기르는 순록을 먹기 위해 죽이는 일은 매우 드물다. 만약 어쩔수 없이 기르는 순록을 도살하는 경우에는 순록의 눈을 가리고 총 대신 칼을 써서 고통을 덜어준다. 그것은 순록의 영혼이 자신들을 볼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희생되는 순록에게 아이들이나 노약자들을 먹이기 위해서 어쩔수 없었다는 용서의 말을 건넨다고 한다.

또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 즉 도살과 해체ㆍ저장과 요리의 모든 과정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 순록요리를 하는 전 과정은 유목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고대로부터의 지식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으로 함께 음식을 준비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그 지식과 경험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순록 눈알요리. 순록은 우리 민족의 소처럼 버리는 부위가 거의 없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순록 눈알요리. 순록은 우리 민족의 소처럼 버리는 부위가 거의 없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내장·골수·피까지 모두 음식 재료 

그리고 순록으로부터 얻는 모든 것을 이용하고 버리는 것이 거의 없다.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고, 뿔이나 뼈는 공예품이나 도구를 만든다. 나머지 고기와 내장ㆍ피까지 음식의 재료가 된다. 순록의 모든 부위를 활용하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요리방식을 가지고 있다. 단, 비장만은 예외라고 한다. 예로부터 비장은 먹지 않았고 개들에게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혈액 속의 오래된 혈구를 청소 정화하는 기능, 즉 혈액의 필터 기능과 동시에 면역기능을 하고 있는 장기가 비장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들의 지혜가 수긍이 간다.

‘부유렌’이라는 순록 피순대는 북극지역의 순록유목민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요리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방식의 조리법과 식감, 색깔도 다르다. 도살 즉시 만들어지며 대부분 내장과 피만으로 만들지만 일부지역은 맛을 더 내기 위해 순록고기를 넣기도 한다. 우리 것과도 매우 닮아 있다.

.훈연한 순록고기. 음식을 장기간 저장하는 대표적 방법이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훈연한 순록고기. 음식을 장기간 저장하는 대표적 방법이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혀끝 부분 먹으면 거짓말 하게 돼"

순록고기를 훈연이나 건조하는 것은 고기를 오랫동안 저장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다. 순록목축인들은 유목민이기 때문에 음식을 장기간 저장하는 것은 가족들의 생명을 지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 또한 어떤 크기의 순록이 훈연이나 건조에 적합한지, 어느 계절이 좋을지, 훈연에 쓸 나무는 어떤 종류로 해야하는지 등 모든 과정이 지역의 건강한 자연생태계와 깊은 전통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탕이나 국 종류도 발달해 있다. 특히 순록머리를 고아 만든 국은 눈 주위의 육질과 볼에 붙은 지방 덕분에 맛이 좋다. 우리의 소머리국이 생각나게 하는 요리다.

순록의 혀는 순록유목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다. ‘인니’라는 혀요리는 만들기도 쉽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규칙이 있다. 혀끝 부분은 절대 먹지 않는다. 이 전통은 고대로 부터 내려온 금기로서 순록목축인들 사이에는 상식으로 통한다. 그들은 혀끝을 먹으면 거짓말을 하게 된다고 믿고 있으며, 어떤 이는 순록 혀끝은 영령들의 음식이기 때문에 불속으로 던져줘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순록혀 요리. 순록유목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다. ‘인니’라는 혀요리는 만들기도 쉽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순록혀 요리. 순록유목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다. ‘인니’라는 혀요리는 만들기도 쉽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소박하고 순수한 북극 음식

순록요리를 생각할 때면 두 사람이 떠오른다. 우선 필자가 속한 연구원에서 북극관련 교육을 받았던 알레나, 그녀는 국제순록목축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본인도 순록유목민이다. 그녀는 북극이사회에서 추진했던 북극음식을 단행본으로 정리한 EALLU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이 책은 2018년 구르망 어워즈(Gourmand Award)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최고요리책상을 수상했다. 젊은 원주민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북극의 역사와 전통을, 자신들이 가진 음식문화를 통해 지켜가려는 노력이 평가를 받은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아이슬란드에 있는 그린란드 대표부를 맡고 있는 나의 절친 야콥이다. 4년 전 필자가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방문했을 때, 야콥은 미리 순록사냥을 해서 커다란 순록다리 한짝을 자기집 냉동고에 저장해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나를 초대한 야콥과 오븐에 정성껏 구운 다리살을 안주삼아 맥주와 함께 배가 부르도록 즐겁게 뜯었던 기억이 새롭다. 순록구이와 맥주, 즉‘순맥’은 꽤 괜찮은 조합이었다. 그가 그린란드 정부를 대표하여 1년여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때 나의 답례는 우리의 전통 소갈비구이였다.

잔인해 보이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어쩌면 우리의 것과도 조금 닮아있는 북극인들의 순수한 음식들, 그것은 자연과 가족, 그리고 생을 향한 강한 의지와 지혜가 담겨진 북극문화의 진수이다.

⑱회에서 계속

배너_김종덕의 북극비사

배너_김종덕의 북극비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