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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자세를 낮춰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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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캐릭터계의 대세 펭수를 보면 늘 마음 한쪽이 불안하다. 저러다가 넘어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최근 공개된 유튜브(자이언트펭tv) 에피소드에서 펭수가 그네타기에 도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가 뒤쪽으로 넘어가면서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뒤집힌 건 무게중심 때문이다. 물체는 무게중심이 낮을수록 안정적이다. 반대로 높으면 불안정하다. 머리가 몸통만큼 큰 펭수는 무게중심이 높다. 그래서 뒤집혔다. 펭수를 볼 때 느낀 불안도 여기에 기인한다.

스포츠에서 무게중심은 중요한 문제다. 씨름, 레슬링, 유도 등 격투기 선수는 상대와 맞설 때 엉덩이를 뒤로 빼고 몸을 낮춘다. 무게중심이 높으면 바닥을 지지하는 힘이 떨어진다. 균형이 무너져 상대에게 쉽게 밀리거나 넘어진다. 배구선수도 리시브 때 무릎을 굽혀 몸을 코트 바닥에 밀착한다. 무게중심이 낮아야 안정성과 순발력이 커진다. 그래야 날아오는 공에 재빨리 반응할 수 있다. 농구선수도 골 밑에서 몸싸움할 때 자세를 낮춘다. 격투기처럼, 밀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게중심을 낮추는 거다. 탁구선수도 상대 서브나 공격을 기다릴 때 몸을 웅크려 무게중심을 낮춘다. 배구선수의 리시브 때와 같은 원리다. 서핑과 보드(스노보드, 스케이트보드) 선수도 보드 위에서 무릎을 굽혀 몸을 낮춘다. 무게중심을 낮춰서 안정성을 높이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그네 위의 펭수가 된다.

무게중심이 높아 그네에서 뒤로 넘어진 펭수. [사진 EBS]

무게중심이 높아 그네에서 뒤로 넘어진 펭수. [사진 EBS]

스포츠만 그런 건 아니다. 자세를 낮추는 건 세상 만물이 자신을 지키는 기본기다. 식물도 진화 과정에서 이를 터득했다. 일본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저서 『싸우는 식물』(더숲, 2018년)에 이렇게 소개한다.

“어떤 상황에서나 자세를 낮추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기본이다. 볏과 식물도 몸을 낮춰 자신을 지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성장점이 줄기 끝에 있어 새로운 세포를 쌓아 올리면서 위를 향해 뻗어 나간다. 그런데 줄기 끝이 먹히면 성장점도 먹히므로 크게 손상된다. 그래서 볏과 식물은 성장점을 될 수 있으면 낮추기로 했다. 즉, 땅에서 가까운 밑동 쪽에 성장점을 두고 거기서 위를 향해 잎을 뻗어 나가는 성장 방식을 택했다. (…) 이렇게 되면 아무리 초식동물이 잎을 먹어도 잎 끝부분만 먹힐 뿐 성장점은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178쪽)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적 유행) 속에서도 모범적인 방역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전 세계 스포츠 경기가 멈춰선 가운데, 한국에서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개막했다. 이에 자부심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럴 때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자신을 지키려면 자세를 낮추는 게 상책이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