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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네가 왜 끼어들어" 김종인 비대위 좌초 뒤엔 홍준표 압박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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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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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던 미래통합당의 구상이 수렁에 빠졌다. 김종인 비대위의 활동기한을 내년 4월까지 늘리려고 ‘8월 말 전당 대회’ 규정을 삭제하려던 상임 전국 위원회 개최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된 때문이다. 상임 전국위 멤버들이 다수 불참한 배경은 뭘까. 한 멤버는 홍준표의 ‘전화 압박’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김종인호’ 좌초 뒤엔 홍준표 압박 #영남과 구태에 매달리면 죽음 뿐 #중도 흡인할 개혁보수 거듭날 때

“홍준표가 전국위 개최 직전 내게 전화해 ‘어이 ○○○이, 너 거기 가지마’라고 하더라. 5선 의원(홍준표)이라면 상대방에 예의를 갖춰 설득하는 게 상식인데 ‘지금 뭐하는 짓이야. 너희들이 왜 이런 일(김종인 영입)에 끼어들어’라며 ‘압력’을 가하더라. 김종인 영입을 추진한 심재철 원내대표를 비난하면서 ‘(광주 출신인) 심재철이가 같은 전라도 출신(김종인)을 데려와서 보궐선거가 실시될 내년 4월까지 비대위원장을 시켜주려 하는 건 심재철이가 (김종인한테) 경기지사 후보 공천을 받아 출마하려는 속셈이다. 그런 심재철 따라다니면 너도 재미 없다’고도 하더라. 이쯤 되면 막장 아닌가. 다른 상임 전국위 멤버들에게도 이런 전화 안 했을 리 없다.”

“홍준표는 애초엔 ‘김종인 비대위’ 안에 찬성하지 않았나”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김종인은 ‘홍준표가 통합당의 대선 후보 되면 당이 망한다. 그러니 대선 후보가 정해질 때까지 홍준표를 입당시키면 안된다’는 생각이 분명하다. 이를 안 홍준표가 입장을 뒤집고 김종인 영입 결사 저지에 나선 것이다. 궤멸 수준으로 참패한 당에 아직도 뜯어먹을 게 있다고 설치는 이들이 당을 망치고 있다. ”

서울대법대를 우등졸업하고 IT기업을 창업했던 김재섭(33)은 젊음·학벌·용모 삼박자를 갖춘 통합당 신예다. 2012년 대선에선 문재인을 찍었지만, 문 정부의 실정에 실망해 4·15 총선에서 통합당 후보(도봉갑)로 출마했다. 그가 카페에 들어가 핑크빛 명함을 돌리자 30~40대 여성손님들은 그를 잡상인 취급하면서 “안 받아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김재섭이 비위좋게 말을 걸자 “당신은 젊고 괜찮은데 왜 그런 당에 갔냐”는 힐난이 돌아왔다. 국민 밉상으로 찍힌 통합당의 현주소였다.

김재섭의 토로다. “넘사벽이더라. 당에 대한 비호감이 워낙 극심했다. 가치도 철학도 없이 ‘시장 자유’만 외치면서 공감 능력은 제로였던 게 핵심 이유라 본다. 특히 5·18, 박근혜 탄핵, 세월호같이 사회적 합의가 끝난 문제조차 부인하거나 쉬쉬하니 ‘쟤네 도대체 왜 저래’하고 외면하는 거다.”

이런 마당에 홍준표 당선인은 이번 총선 당선 직후 SNS에 “세월호는 해난사고에 불과하다”고 썼다. 세월호 6주기였던 총선 다음날 밤 열린 당선 사례 행사에서도 “자축 차원에서 노래 대여섯 곡 부르고 노래방 기계도 가져와 대학생들 춤도 추려 했는데 보좌관이 좌파언론에 도배하게 된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오죽하면 통합당 김용태 의원이 “당이 사형선고급 심판을 받은 마당이다. 기뻐하시려면 부디 지역구 안에서 그쳐 달라”고 했을까. 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은 ‘부패’ 이미지는 있었어도 ‘존재 자체가 비호감’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2017년 홍준표가 한국당 대선 후보와 대표를 지내면서 ‘비호감’지수가 급상승했다”는 당내인사들의 지적이 많다. “문재앙보다는 홍발정이 낫다”“춘향이인줄 알고 (박근혜를) 뽑았는데 향단이” 같은 독설로 도배된 ‘홍준표 어록’이 큰 몫 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통합당은 32만 책임당원의 절반(16만 명)이 영남에 몰려 있다. 전체 유권자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32%(10만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영남에서조차 통합당은 ‘지는 해’다. 4년전 총선에 비해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은 부산에서 37.7%→43.5%, 경남 29.8%→37.1%, 울산 16.2%→38.6%로 높아졌다. 통합당은 그만큼 떨어졌다. 영남 젊은이들이 더 이상 부모 세대처럼 지역주의 투표를 않는다는 방증이다.

반면 민주당은 ‘호남당’이 아니다. 권리당원 70만 명 중 수도권이 45%(31만 명)에 달하고 호남은 27%(19만 명)에 그친다. 온라인 모집을 통해 꾸준히 수도권 중도층을 당원으로 흡수했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총선에서 민주당이 전체 지역구(253석)의 절반(121석)가까운 수도권을 석권할 수 있었다. 통합당은 갈수록 영남에서 득표율이 떨어지는 터라 수도권 표심을 잡지 못하면 절대 민주당을 이길 수 없다. 수도권 표심을 잡으려면 중도를 흡인할 능력을 갖춘 개혁보수 전국정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홍준표로 상징되는 ‘영남 꼰대’로는 그런 변신을 하기가 어렵다는 당내의 지적들이 적지 않다. 그 점에서 통합당이 홍준표 복당 여부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주목을 받게 됐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