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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찾아달라" 재투성이 아빠는 주저앉았다···통곡의 이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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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뉴스1

29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뉴스1

민모(59)씨는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동생과 함께 일했다. 불이 나자 급히 피했지만,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인근 파티마병원에 입원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먼저 찾은 건 동생이었다. 경찰은 “동생이 사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씨는 곧바로 화재 현장으로 다시 달려갔다.

29일 화재 현장에선 38명이 사망하는 등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만큼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다. 형제뿐 아니라 부자(父子)가 함께 일하다 운명이 엇갈린 경우도 있었다. 이천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모(54)씨는 “28살 조카가 아버지와 함께 화재 현장에서 일했다”며 “불이 난옆 동에서 일하던 아빠는 빠져나왔고 아들은 미처 못 빠져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실 앞에는 손에 까만 재를 잔뜩 묻힌 아버지가 작업복을 입은 채 쭈그려 앉아있었다.

아버지는 현장 인근 체육관에 마련된 피해 가족 대기실에서 “아들 생사를 파악해 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화재 소식을 들은 희생자 가족이 체육관으로 속속 도착했지만 당장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한 유가족은 “시신 신원 확인은 물론이고 어느 병원에 있는지조차 확인이 안 된다”며 울먹였다. 현장에 마련한 유가족 센터에서는 “사망자 상당수가 화상으로 숨진 터라 당장 사망자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이날 화재로 숨진 12명의 시신을 안치한 이천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장례식장 입구엔 “사망자 신원이 확인 안 돼 당장 사망 여부를 알려줄 수 없어 죄송하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이천병원 관계자는 “시신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남녀구분도 안 될 정도다. 우리도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한 희생자 가족은 “동생이 꼭대기에서 방수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지하에서 난 불로 이런 변을 당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숨진 작업자의 동료도 갑작스러운 사고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작업자는 “동료가 지하 2층에서 우레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시신이 얼굴까지 녹아내린 상태라 전혀 확인이 안 된다고 한다”며 “나도 오늘 처음으로 현장에 투입됐는데 안전교육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유족은 장례식장 관계자에게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으니 시신을 보여 달라”며 울부짖기도 했다.

40대 여성은 “오빠가 오늘 처음 출근했는데 작업자 명단에 없더라”며 “오후 근무조의 경우 지각하면 쓰지 않고 그냥 일한다고 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여성은 잠시 후 소방본부에서 희생자로 확인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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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김기환ㆍ권혜림ㆍ정진호ㆍ이우림ㆍ이가람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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