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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화재] 참사 원인 우레탄폼…"마시는 순간 정신 잃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9일 경기도 이천 소고리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 뉴시스

29일 경기도 이천 소고리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 뉴시스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처음 느낄 수 있는 건 코를 찌를 듯한 유독가스다. 가까스로 현장을 탈출한 작업자들은 “유독가스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다. 깜깜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소방당국은 인명 피해가 컸던 원인으로 화재 시 유독가스를 발생시킨 우레탄 폼을 꼽았다. 서승현 이천소방서장은 “지하 2층에서 우레탄 도포 작업 중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불이 발생했다”며 “워낙에 크게 폭발해 현장에 있던 근로자들이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레탄 폼은 용접 불똥만 튀어도 발화 위험이 높은 가연성 물질이다. 주로 건축 단열재로 쓴다. 단열 효과가 뛰어나고 접착성이 우수해 작업하기 쉬운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연소점이 낮아 작은 불씨에도 불이 잘 붙는다. 불에 탈 땐 ‘시안화수소’란 치명적인 맹독성 가스를 내뿜는다.

유독가스는 한 모금만 들이마셔도 위험하다. 제진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레탄 폼 유독가스는 목재의 수십~수백 배라고 보면 된다”며 “들이마시면 눈을 뜰 수 없고, 의식을 잃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우레탄 폼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면 물류창고를 만들 때 쓴 샌드위치 패널이 도화선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샌드위치 패널은 슬라브나 벽돌로 짓는 것보다 저렴하고, 공사 기간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화재에 취약하다. 서승현 서장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물류창고는 ‘화약고’와 같아 불이 나면 진화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샌드위치 패널 가운데 들어가는 단열재로 값싼 스티로폼이나 우레탄을 쓰는 경우가 많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성 단열재도 개발했지만, 우레탄폼보다 높은 비용 때문에 현장에서 잘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직 완공한 건물이 아니란 점도 화재에 취약한 원인이었다. 완공한 건물에는 화재에 대비한 대피유도등이나 별도 대피 통로를 설치하게 돼 있다. 이천 창고처럼 공사 중인 건물에는 ‘작업 안전계획서’에 따라 임시 계단, 임시 승강기 등을 이용해 대피로를 확보하게 돼 있다. 대피로를 규정대로 마련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커졌을 수 있다. 한 작업자는 “비상시 작동해야 할 스프링클러도 아직 설치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ㆍ소방법이 있지만, 현장에서 잘 안 지킨다”며 “소방법상 불꽃 작업 시 반경 10m 내 가연성 물질이 없도록 하고, 5m 내 반드시 소화기를 비치하게 돼 있는데 잘 안 지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사 경험이 많은 한 작업자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은 유난히 안전관리가 잘 안 돼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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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김기환·권혜림·정진호·이우림·이가람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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