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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코로나 감옥' 100일···분노조절장애 등 20%가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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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노원구에 사는 70대 할머니 김모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겁이 나 집밖에 나가본 지 오래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최근 대학병원에 갔다. 이달 초에 갔어야 하는데 집을 나서기 무서워 미뤄 왔다. 김씨의 증세는 그새 꽤 나빠져 있었다. 그간 치료받고 많이 좋아졌는데 집에만 머무는 ‘집콕’ 생활이 두 달 넘으면서 역주행했다. 주치의는 “활동량이 줄면서 근력이 약화됐고, 입맛이 떨어져 식사량이 줄면서 다시 우울증이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우울·불면 시달려 ‘코로나 블루’ #“경로당·복지관 못가니 낙도 없어” #분노조절장애 등 20% 위험징후 #원격의료로 ‘집콕 어르신’ 돌봐야

서울 마포구 이유직(86) 할머니는 집콕 생활이 석 달 넘었다. 지난 24일 은행에 가려고 처음 집을 나섰고, 27일 서울대병원 안과에 다녀왔다. 약이 떨어져 더 미룰 수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이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한 달에 열흘은 퇴직교사 모임 등에 나갔다. 꽃놀이 여행에 빠지지 않았다. 매일 한강변에 나가 4㎞씩 걸었다. 집콕이 길어지면서 자녀들이 식자재를 사다 준다. 자녀들이 혹시라도 바이러스를 옮길까봐 현관에서 돌아선다. 이씨는 “80대가 코로나19에 걸려 가장 많이 사망한다. 무섭기도 하거니와 자녀들이 외출을 극구 말린다”며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3년 전 대장암 수술을 했는데, 정기검진을 5월로 석 달 미뤘다. 아들은 “어머니가 운동을 제대로 못하고 사람을 못 만나 소화가 안 되고 설사를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24.3%. 29일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공개한 80대 이상의 코로나19 치명률이다. 전체 평균(2.29%)의 11배다. 70대는 10.3%다. 이런 상황은 노인에게 공포다. 자녀도 노부모의 집콕을 강권한다. 코로나19가 번지면서 지난 2월 전국 경로당·복지관 등이 문을 닫았다. 55만 명에 달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도 중단했다.

“마스크 쓰고 하루 30분 공원 나들이, 우울증 예방에 도움”

101세인 이삼추 할머니가 29일 대전시 자택에서 TV를 시청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여가를 보낼 곳이 없어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01세인 이삼추 할머니가 29일 대전시 자택에서 TV를 시청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여가를 보낼 곳이 없어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요양보호사·간호사 등이 가정을 방문하는 재가노인복지사업도 멈췄다.

노인들은 집이라는 섬에 갇혔다. 석 달 집콕은 정신적·육체적 약화를 초래한다. 김광준 신촌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코로나19 집콕 현상 때문에 어르신 환자의 10~12%에게 우울증·불면증·불안장애·분노조절장애 등의 질환이 새로 생겼고, 8~10%는 이런 병이 더 악화했다”며 “어르신 코로나 블루스(Corona Blues)가 문제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대전시 중구 김영숙(77) 할머니는 두 달 넘게 집콕 생활을 한다. 경로당·스포츠댄스교실·사회복지관 등에 갈 수 없다. 김씨는 “집에서 TV를 켜놓고 가요 프로그램을 보든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때가 많다”며 “이런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기분이 우울해지고 기력이 떨어지고 식욕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한 80대 할머니는 집 안에만 있다 보니 미칠 것 같다는 느낌이 점점 심해졌다. 불안으로 번지더니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성격 변화가 심해졌고 인지기능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변했다. 의식이 흐리고 착각과 망상을 일으키며 헛소리나 잠꼬대를 하는 섬망 증세까지 왔다. 병원에서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대전시 유성구 이삼추(101) 할머니는 “노인 일자리 사업이 중단되고 여가를 보낼 데가 없어 두 달간 집에 있다”며 “하루 한 시간 정도 집 근처 공원에 갔다 올 때가 있고, 이따금 경로당이 열었는지 확인하러 간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대전 중구지회 이인상(81) 회장은 “안부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어 보면 경로당 회원 다수가 우울증과 불안감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저소득 독거노인은 더 문제다. 대구시에 사는 80대 기초수급자 할머니는 온종일 집에 드러누워 지낸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대구시 달서구 김후남 상록수노인복지센터 이사장은 “이 할머니가 처음에는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계속 전화를 했고, 통화됐을 때 ‘우리 전화를 받지 않다가 아프면 어떡 할거냐’고 설득해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받게 했다”며 “우리 센터 서비스 대상 어르신 400~500명 중 50명이 위험 징후를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로당·복지관 개관, 노인 일자리 사업 재개 시기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김광준 교수는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인해 노인의 건강 악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집콕 생활이 계속돼 이미 근력이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며 “실내에서 거실과 방을 왔다 갔다 하고, 마스크를 쓰고 하루 30분 정도 근린공원에 나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형선(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은 “이번 기회에 원격 의료를 활성화해 ‘집콕’ 어르신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대전=김방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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