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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시한부 비대위' 거부…김종인 단 한 줄 입장만 남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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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통합당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 됐다. 의원들이 전국위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통합당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 됐다. 의원들이 전국위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미래통합당이 28일 4개월짜리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안을 가결했지만,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측이 이를 거부했다. 이로써 지도체제 등을 둘러싼 통합당 내 혼선이 이어질 전망이다.

통합당은 이날 오후 3시 10분쯤 서울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전국위원회를 열어 김 전 위원장 임명안을 상정했다. ‘임명 가결’ 결론은 4시 40분쯤 나왔다. 10여명가량이 찬반 토론을 벌이고 표결한 결과였다. 전국위 의장을 맡은 정우택 의원은 표결을 마친 직후 “찬성 177명, 반대 80명이 나왔다. 과반 출석, 과반 찬성을 넘었기에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은 통과됐음을 알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종인 전 위원장의 비서실장인 최명길 전 의원은 가결 직후 “오늘 통합당 전국위에서 이뤄진 결정을 비대위원장 추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한 줄짜리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김 전 위원장 측 관계자는 “(입장문은) 전국위 결과를 보고 김종인 전 위원장과 통화한 내용”이라며 “심재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제안을 한 건 ‘대선 승리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내년 3월까지는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4개월짜리 비대위원장을 하라는 건 전제조건이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여부를 결정하는 28일 오후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서울 광화문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다. 통합당은 이날 오후 2시 상임전국위원회를, 오후 3시에 전국위원회를 잇따라 열고 '김종인 비대위' 구성 의결을 시도한다. [뉴스1]

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여부를 결정하는 28일 오후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서울 광화문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다. 통합당은 이날 오후 2시 상임전국위원회를, 오후 3시에 전국위원회를 잇따라 열고 '김종인 비대위' 구성 의결을 시도한다. [뉴스1]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를 거부한 데엔 전국위 1시간 전(오후 2시) 예정됐던 상임전국위가 무산된 게 결정적이었다. 통합당은 당초 “8월 31일까지 전당대회를 연다”고 규정한 당헌(부칙2조)을 상임전국위에서 개정하려했다. 전당대회 시기를 늦춰 비대위 활동기간을 충분히 보장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임전국위엔 총원 45명중 17명만 참석했다. 형식이 아닌 내용상의 김종인 비대위 비토였다. 결국 정족수 미달로 전국상임위는 무산됐고, 관련 조항 역시 개정이 불가능해졌다. 김종인 비대위가 ‘4개월 시한부’로 규정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이후 전국위에서 김종인 비대위를 통과시켰지만, 김 전 위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통합당 안팎에서는 일부 중진들이 조직적으로 상임전국위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불참을 유도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차기 지도자는 40대 경제전문가여야 한다"고 한 김 전 위원장의 발언에 중진들의 위기감을 증폭시켰다는 의미다.

전국위 비대위 비토는 전례도 있다. 2016년 총선 패배 당시 옛 새누리당 지도부는 비박계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하기 위해 전국위를 소집했으나 친박계의 반발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최순실 사태'로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가 출범했던 2017년 1월에도 비대위원 선출을 위한 상임전국위가 친박계의 방해로 한 차례 무산되기도 했다.

전국위 가결 직후 심재철 원내대표(당 대표 권한대행)는 “당헌 개정은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 측은 “4개월짜리로 들어와서 임기를 스스로 늘려서 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통합당 내부에서도 “비대위 체제 전환을 전국위에서 먼저 통과시키고 임기를 연장한다는 건 편법”(조경태 의원) 등의 지적이 나왔다.

다만 일각에선 김종인 비대위가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 측 관계자는 “당에서 임기를 내년 3월 정도로 다시 조정해서 가져온다면,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도 “(김 전 위원장에게) 투표 내용 등을 설명하고 수락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단기 김종인 비대위'가 제동이 걸리면서 '장기 김종인 비대위'로 전환되기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전망이 높다. 당내 일부 인사는 "조기 전당대회"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당장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대표는 “총선을 망친 당 지도부는 당연히 물러나고 당선인총회가 전권을 갖고 비대위를 구성하라. 더 이상 추해지지 말고 오해받지도 말고 그만 물러나라”고 말했다. 최고위원 중 유일한 당선인 신분인 조경태 의원은 전국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는 혼란을 수습해달라는 의미에서 만드는데, 김종인 비대위에서는 논란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자유청년연맹 회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김종인 비대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대위' 구성 여부를 의결 할 예정이다. [뉴스1]

자유청년연맹 회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김종인 비대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대위' 구성 여부를 의결 할 예정이다. [뉴스1]

이날 통합당은 종일 혼란이었다. 특히 자유청년연맹 회원 10여명은 전국위 표결장 앞에서 “기간을 명시하지 않는 비대위가 어디 있나” “권한대행이 당대표인줄 아느냐”며 현수막을 펼쳐 든 채 항의 시위를 했다.

상임전국위-전국위의 엇갈린 결정은 이날 오전 열린 당선인총회에서 이미 예고됐다. “당선인총회를 먼저 열어 (비대위 관련) 뜻을 모으자”는 3선 11명의 요구에 따라 총회가 열렸지만 3시간 20분가량의 격론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총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각자 할 말만 하고 타협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통합당의 현주소가 여과없이 드러났다"고 했다. 전국위 직후 통합당 관계자는 "'콩가루 정당'이 더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한영익ㆍ윤정민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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