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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서 배식하려던 그 학교, 학생들은 "수업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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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 앞에서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학습권 침해 고발 및 서실고 정상화를 위한 교육청 적극개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23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 앞에서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학습권 침해 고발 및 서실고 정상화를 위한 교육청 적극개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23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 교복을 입은 서울실용음악고 학생들이 모여 '인간띠'를 만들었다. 시교육청 입구에서 시작한 줄은 100m 가량 이어졌다. 온라인 개학으로 집에서 온격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학생들은 교육청에서 집회를 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 교육청 앞에 모인 서울실용음악고 학생·학부모·전 교직원 등 100여명은 학교 측이 부당한 조건을 요구해 교직원(기간제 교사·음악 강사 등)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학사 운영이 파행되고 있다며 시교육청에 교장 등 임원 해임을 촉구했다. 또한 교단을 떠난 교직원 17명을 다시 채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실용음악고는 지난해 11월 이뤄진 시교육청 감사 결과 ▶회계 부당처리 ▶세출예산 목적외 사용 ▶인건비 지급 부적정 ▶학교장 근무 불성실 등 16개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시교육청은 인건비 등 2억9970만원을 회수하고, 설립자인 장학일 당시 교감을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3월에는 지하주차장에 급식실을 마련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 이에 항의하던 학부모와 교장이 모두 폭행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학부모 "내부고발 교사들 내쫓아…교장 해임하라"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 인도에 서울실용음악고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길게 늘어섰다. 학생들은 학교 운영 정상화와 전직 교원 재계약 등을 촉구했다. [서울실용음악고 학부모 제공]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 인도에 서울실용음악고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길게 늘어섰다. 학생들은 학교 운영 정상화와 전직 교원 재계약 등을 촉구했다. [서울실용음악고 학부모 제공]

학부모 측은 학교 측이 열악한 조건을 제시해 재계약을 불발시키는 방식으로 사학비리에 반발한 교원을 사실상 내쫓았다고 주장한다. 서울실용음악고의 전 강사에 따르면 약 10년간 재직한 강사의 급여가 일반 교사 초임(2019년 기준 월 160만원)에 그친다.

유상일(44) 서울실용음악고 교사 대표는 "턱없이 부족한 보수를 받으면서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며 "설립자 일가의 비리가 알려진 이후 계속해서 학교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재계약 불가' 통보였다"고 말했다.

이후 학교 측은 강사를 배치해 빈자리를 채웠다. 이승준 서울실용음악고 학부모회장은 "시간 강사만 있는 학교에 아이를 어떻게 보낼 수 있냐"며 "학교 운영의 핵심인 선생님이 떠난 후 출석 관리부터 생활기록부까지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실용음악고 전경. 이가람 기자

서울실용음악고 전경. 이가람 기자

일부 학생들은 수업 거부를 선언했다. 학부모들은 부실한 학사 운영이 여전한 상황에서 과도한 수업료를 청구했다며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학생 김가영(18)양은 "학교 측이 온전히 수업이 이뤄지지 않는데 대한 대책도 없어 오히려 선생님을 탓하며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출결 관리도 이뤄지지 않고, 수업도 듣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생과 학부모, 전 교원들은 서울시교육청에 교장을 해임한 뒤 관선 교장을 파견하고, 기존 교직원과의 재계약을 추진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시교육청이 적정한 수업료 기준을 세워달라고 촉구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갈등의 본질은 선생님들의 급여가 아니라 학교의 불투명한 운영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학교 측이 학사 운영을 개선하고 재계약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서실고 "합리적인 기준 제시…학사 파행은 출근 거부 때문"

하지만 학교 측은 파행적인 학사 운영은 일방적으로 출근을 포기한 교직원에 의한 결과라고 반박한다.

서울실용음악고의 송지범 교장은 "교사에게는 법령에 따른 급여 기준을 제시했고, 음악 강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 올해 초부터 3차례 교섭했다"면서 "210명에 달했던 학생이 올해 들어 168명까지 줄면서 열악해진 재정 여건을 고려해 현실적인 급여 조건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송 교장은 "선생님들이 지난 20일 저녁 갑작스레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며  "학습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교사들이 무책임하게 출근을 거부해 정상 수업이 70% 밖에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수업 거부와 수업료 납부 거부의 원인이 된 '수업의 질 저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송 교장은 "시간강사의 수업 수준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만, 강사를 채용한 사람들이 바로 교사들"이라고 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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