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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인프라]발등의 불 끄기에 집중한 일자리 대책, "돈만 있고, 전략이 없다"…반쪽 뉴딜 안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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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한 고용 및 기업 안정 대책’을 내놓으면서 경제 챙기기에 본격 나섰다. 이번에 발표된 대책은 노동시장에 휘몰아치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긴급 대응책이다. 그래서인지 광범위한 헬리콥터 드롭 식 현금 지원이 대부분이다. 일자리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고, 기업 입장에서도 인적자원 손실의 부정적 효과가 있다. 정부도 이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다른 나라의 지원 규모에 비하면 약한 수준”이라며 “그러나 재정을 활용해 기업의 숨통을 트고, 위기의 강도를 낮춘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기업에 숨통 트여. 그러나 돈 살포만 있고, 고용 개혁·혁신 전략이 없다"

반면 전략없이 무턱대고 돈을 살포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민간의 소비·투자를 살려 시장이 고용을 떠받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구조조정을 하겠다거나 혁신성장이 가능한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등의 얘기가 없다"(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와 같은 평가가 나온다. 단기전이 아닌 중장기전에 대비해야 경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행히 정부가 ‘중앙 경제대책본부(이하 경제 중대본)’를 꾸려 추가적인 대응책을 마련키로 했다. 경제 중대본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표방한 '한국판 뉴딜'을 골격으로 삼을 전망이다.

뉴딜 정책의 골격은 구제, 부흥, 개혁의 3R…정부 대책에는 '구제'만 보여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미국에서 등장한 뉴딜 정책은 이후 경제 위기를 겪는 상당수 나라가 인용했다. 뉴딜 정책은 3R을 기본 속성으로 한다. 구제(Relief), 부흥(Recovery), 개혁(Reform)이다. 3R이 유기적으로 연결해 추진돼야 비로소 효과가 나타난다. 뉴딜 정책을 표방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33년 취임하자마자 그 해에 농업조정법, 산업부흥법, 관리통합법, 긴급은행법을 만들고, 연방임시구제국을 설립한 것도 3R의 동시 구현이다.

정부가 내놓은 고용·기업 안정 대책에선 구제만 보인다. 고용도, 기업도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인지 앞뒤가 안 맞는 대책도 포함됐다. 기간산업지원책이 그렇다. 40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지원하면서 배당과 자사주 취득제한, 보수제한, 고용총량 유지를 내걸었다. 기금을 지원받기 전에 위기로 주가가 하락한 틈을 타 회사의 주주가 주식을 사 모은다고 치자. 이후 기금을 지원받고, 그 덕에 회사가 정상화하면 주가가 상승한다. 결국 기업이나 주주만 살찐다. 이런 도덕적 일탈을 방지하기 위한 조건이다. 미국이나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도 이런 조건을 내건다. 일각에서 경영 자율 침해를 걱정하지만 기금이 지원되는 동안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마치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마치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총량을 유지하는 문제에는 논란이 인다. 기금 지원을 받은 뒤 근로자를 내쫓는다면 기업만 득을 보는, 도덕적 해이와 다를 바 없다. 지원 조건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아사 상태에 몰린 기업까지, 상황이 천차만별이다. 자율성이 필요하다. 획일적 잣대로 인력 조정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자금 지원에 조건을 달면 기업이 오히려 인력 구조조정으로 비용절감을 택할 수도 있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고용총량의 획일적 유지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동시에 밟는 꼴 날 수도 

일부 기업은 정부의 정책 급변과 시장 변화로 어려움이 누적되던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쓰러질 지경에 처했다. 두산중공업이나 대형 마트 같은 사업장이다.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원자력 정책 전환으로, 대형 마트는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린 온라인 장터에 치여 어려움을 겪어왔다. 결국 시장 변화에 맞춰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기업에 고용총량을 유지하라고 하면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격이 되기에 십상이다.

사업장 사정에 맞는 단계별 대책도 안 보인다. 근로시간을 줄이며 버티는 사업장, 그것 만으로 안 돼 휴직을 하는 곳, 그러다 희망퇴직을 받는 지경에 이른 곳, 마지막 조치인 정리해고에 돌입하기 직전에 놓인 기업 등 처한 사정이 다르다. 해법도 달라야 한다. 무턱대고 돈만 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떤 사업장에는 신용지원과 고용유지지원금 같은 유동성 지원만으로 버틸 수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심각한 곳에는 단체협약의 효력 중지나 행정집행 유예 같은 조치까지 필요할 수 있다. 이런 핀셋 대책이 실행되지 않으면 돈을 뿌린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반감할 수 있다.

외부충격은 정부가 책임져야…사회안전망인 고용보험 마구 끌어쓰는 건 문제

특히 사회보험인 고용보험기금을 마구 끌어쓰는 것은 향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사회보험은 구조적인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이다. 외부 충격을 관리하기 위한 게 아니다. 외부 충격에 의한 대응책에는 국가가 돈을 대고 책임져야 한다. 선진국은 코로나 사태에 따른 지원금을 모두 정부가 편성한 특별예산으로 충당한다. 가뜩이나 고용보험기금은 올해 안에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 실업급여도 못 주는 상황이 코 앞에 다가와 있다는 뜻이다. 권순원 교수는 "이번 기회에 사회보험을 사회안전망이라는 성격에 맞게 지켜질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판 뉴딜“ 정부의 고용안정 대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국판 뉴딜“ 정부의 고용안정 대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경제 중대본이 현재의 어려움을 견디고, 미래에 부흥하기 위한 뉴딜 정신을 구현하려면 다각적인 개혁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22일 내놓은 대책에는 미래에 대한 스케치가 없다.

"오프라인 집착보다 4차 산업혁명을 염두에 둔 종합적 산업고용정책 구상해야"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오프라인 뉴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온라인 경제체제에서 효과가 제한적이다. 자칫하면 오프라인 좀비기업을 양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디지털 경제 체제로의 전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종합적 산업고용정책으로서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회복 뒤 부흥을 꾀할 수 있고, 안정적 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뉴딜 정책의 한 축인 개혁도 이런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예컨대 노동개혁의 경우 노동시장의 유연화도 중요하지만 사회안전망의 범용성을 높이고, 공고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선 현금만 보이고 시스템이 안 보인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에게 돈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혜택을 줘야 하는 데 그게 없다는 얘기다. "구조개혁이 없는 상황에서 현금만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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