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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코로나 경제 보면 韓도 보인다···글로벌 각자도생 시대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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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아성이 허물어지고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 생산체제를 구축하려 든다. 각국 정부도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구한다. 외부 충격이 몰아쳐도 휘청거리지 않고 내부에서 해결함으로써 살아남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의미다. 국가 간에 물고 물리는 공급과 수요의 경제사슬이 서서히 끊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기찬의 인프라]

이 과정에서 저소득층은 더 가난해질 것이다.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저개발국은 빈곤에 허덕일 수 있다. 선진국과 저개발국,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격차는 크게 벌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이 가져올 글로벌 경제체제의 변화 예상도다. 세계적인 공익 연구기관인 독일 베텔스만 재단의 티스 페테르센(Thieß Petersen) 수석 고문의 분석이다. 그는 2004년부터 베텔스만 재단에서 연구한 경제부문 석학이다. 금융·경제 위기의 원인과 결과, 세계화의 기회와 위험, 공공 부채와 유로 위기를 주로 연구했다.

페테르센 박사는 최근 경제정책저널인 「경제 서비스(Wirtschaftsdienst)」지에 '코로나 사태가 국제 분업에 미칠 수 있는 5가지 영향'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의 첫마디는 "코로나 사태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레이스의 출발 신호가 될 수 있다"였다. 국가별 자력갱생, 각자도생의 시대를 촉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페테르센 박사는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경제위기와 관련, 다섯 가지 변화가 몰아칠 것으로 예측했다. 독일의 경제 상황을 예를 들며 분석했지만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테르센 박사의 기고를 그의 진단과 함께 여러 현상을 조합해 설명하는 형식으로 소개한다. ( )안은 이해를 돕기 위한 추가 설명.

21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달 국내 수출입 모두 동반 하락했다. 뉴스1

21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달 국내 수출입 모두 동반 하락했다. 뉴스1

1. 국제분업의 범위가 줄어든다 - 외국 아웃소싱 대신 국내 생산

페테르센 박사는 "지금까지 국제 분업에는 비용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곳에 맡겼다. 일자리가 없던 개발도상국은 임금은 적지만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 덕에 국민총생산(GDP)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선진국은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국제 노동 분업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는 게 페테르센 박사의 진단이다. 그는 "독일과 같은 국가는 국제 노동 분업의 범위를 최적화해 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는 이렇다. 예비 제품(부품 등)이 (공급망에) 고장나면 대체품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생산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부품 공급망이 원활하지 않자 세계 각국의 공장이 가동을 멈추거나 가동률이 확 줄어든 것과 같은 이치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원활하지 않으니 생기는 현상이다. 벤츠의 가동률이 11%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각국의 봉쇄조치로 부품 공급이 제대로 안 되어서다.

그래서 페테르센 박사는 "생산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부품의 아웃소싱을 포기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그런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리쇼어링 즉 저임금 국가에 있던 생산 시설을 고임금이지만 자국으로 이전하는 현상이 활발할 것이라는 게 페테르센 박사의 예상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벤츠 공장에서 노동자가 S클래스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벤츠는 코로나 사태로 각국의 봉쇄조치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해 부품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이로 인해 가동률이 11%까지 떨어졌다. REUTERS=연합뉴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벤츠 공장에서 노동자가 S클래스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벤츠는 코로나 사태로 각국의 봉쇄조치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해 부품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이로 인해 가동률이 11%까지 떨어졌다. REUTERS=연합뉴스

2. 생산 시스템의 재배치에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 보조금 지급, 고율 관세 부과 등 보호책 확산할 듯

페테르센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생산 시설을 단계적으로 옮기는 일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수입 의존도(외국으로부터의 부품 공급)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국내 생산 능력의 증대는 어떤 형식으로든 (정부의) 보호조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기업이 자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것은 개발도상국에서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것(사실상의 이득)을 포기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생산하면 생산비용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국가가 이를 지원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협력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만 외면하거나 각자 계산기를 두드리며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죄수의 딜레마란 개념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정부의 지원정책에는 가격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게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현지 공급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형식일 수 있다는 게 페테르센 박사의 전망이다. 세금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는 국영기업의 설립도 고려할만하다. 이런 조치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 대한 개입이지만 수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가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이 경우 우려되는 점도 있다. 세계 각국이 생산시설의 국내 이전(리쇼어링) 경향을 보이면 특정 제품(부품)을 소수의 외국 공급업체가 독점하는 형국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런 회사는 시장에 상당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된 국내 공급업체를 정부가 지원해서 설립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페테르센 박사는 봤다.

예컨대 일본이 반도체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중단함으로써 국내 반도체 업체가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가 이에 대응해 뿌리 산업을 육성하려 발 벗고 나선 것과 같은 시나리오다.

DARPA의 '지하 경연'에 대한 개념도. 지하를 탐색할 수 있는 새 기술을 개발 중이다. DARPA

DARPA의 '지하 경연'에 대한 개념도. 지하를 탐색할 수 있는 새 기술을 개발 중이다. DARPA

3. 산업 정책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 독자 생존 위한 체계적 육성책 마련

페테르센 박사는 다음과 같이 봤다. "2015년 중국이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2025' 전략을 발표했다. 이후 중국은 세계 최고의 공급업체가 되려 한다. 수십억 달러의 정부자금을 쓰면서 이 목표를 추진 중이다. 이 전략이 통하면 중국 기업은 가까운 미래에 로봇공학, 바이오의약품, 정보통신기술과 같은 주요 산업에서 세계 시장의 선도자가 될 것이다. 미국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비롯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다. 독일이 이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독일 기업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 또는 산업의 종속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책 차원에서 국내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기업 안정대책을 내놓으면서 기간산업에 대해 복합적인 지원책을 담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만 현금 지원에 그치지 말고, 중국이나 미국처럼 체계적인 산업 육성책이 필요하다.

a미국 콜롬비아주 메델리시의 거리를 음식 배달 로봇이 달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자동화 바람이 거세게 불 전망이다. 이는 노동력 대체로 이어져 저임금의 경쟁 우위가 사라지는 효과를 낸다. AP=연합뉴스

a미국 콜롬비아주 메델리시의 거리를 음식 배달 로봇이 달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자동화 바람이 거세게 불 전망이다. 이는 노동력 대체로 이어져 저임금의 경쟁 우위가 사라지는 효과를 낸다. AP=연합뉴스

4. 경쟁 우위로서의 저임금의 중요성은 줄어든다 - 자동화로 질병에 따른 생산력 감소 대체

페테르센 박사는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예상되는 반응 중 하나는 전 세계 기업이 생산 과정에서 점점 더 기계나 로봇, 디지털 기술 사용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자동화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노동력 손실이 생산 능력에 영향을 덜 미친다는 의미라고 페테르센 박사는 해석했다.

그는 "이런 추세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의 유행이 이같은 경향을 촉진할 것"으로 봤다. 이렇게 되면 자국의 비싼 노동력을 굳이 많이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자동화와 디지털 확산으로) 독일과 같은 선진국은 생산 시설을 국내로 더 많이 옮기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도의 폐쇄조치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코로나 사태는 선진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촉진해 개발도상국과 저소득층에 재앙이 될 전망이다. AFP=연합뉴스

인도의 폐쇄조치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코로나 사태는 선진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촉진해 개발도상국과 저소득층에 재앙이 될 전망이다. AFP=연합뉴스

5. 원자재가 거의 없는 개발도상국은 뒤처질 위험에 직면한다 - 저임금 국가 빈곤 심화

코로나 사태로 노동력을 자본과 기술로 대체하는 것은 원자재가 없는 개발도상국엔 재앙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화 등으로 저비용 노동력이 핵심 경쟁요소가 아닌 이상 저임금 국가는 경쟁 우위를 상실한다. 저임금으로 버티는 개발도상국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불문가지다. 국민의 소득창출 길이 막힌다는 뜻이다.

또 천연자원이 없는 개발도상국은 경제 발전 수준이 낮은 탓에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리쇼어링이 활발해지면 개발도상국으로의 자본 유입도 줄게 된다. 일자리를 제공할 기반시설을 구축할 돈조차 마를 수 있다. 이는 빈곤으로 이어지고, 개발도상국 노동력의 이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염두에 둔 향후 경제정책의 과제 - 저소득층 보호 위한 안전망 확충

페테르센 박사는 수입의존도를 줄이는, 보호무역주의의 경쟁이 촉발할 경우 다음과 같은 정책 과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제 분업의 이점을 부분적으로 포기하면 가격이 상승한다. 이는 저소득가구의 손실로 이어진다. 이 비용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또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는 생산 시스템의 강도가 심화하면 오직 노동력(단순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소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교육과 사회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산업정책에 있어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객관적 기준도 개발해야 한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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