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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정복자 시저, 오페라선 왜 여성 목소리로 노래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23)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로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는 B.C. 49년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 제1의 권력자가 된 뒤, 알렉산드리아로 도주한 폼페이우스를 추격합니다. 그 와중에 시저는 클레오파트라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지요. 권력욕이 강한 그녀는 동생을 몰아내려다 도리어 패했는데, 이후 시저를 만난 뒤 그의 지원으로 재기합니다.

1724년 발표된 프레데릭 헨델의 오페라 〈줄리어스 시저〉는 시저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여 B.C. 47년에 클레오파트라의 정적인 프톨레마이오스를 제거하고, 그녀를 이집트의 파라오로 즉위시킨 기간의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답니다.

헨델이 활동하던 시기의 오페라는 영혼을 감전시킬듯한 목소리를 구현한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가수)가 주인공을 맡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영화 〈파리넬리〉에서 유명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부른 가수를 기억하시지요? 19세기 이후 거세 행위가 사라진 뒤로는 메조소프라노(바지 역할)나 카운터테너가 그 역할을 맡는답니다.

로마의 상징,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진 Pixabay]

로마의 상징,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진 Pixabay]

막이 열리면, 줄리어스 시저가 이집트인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정복자의 위엄을 드러내며 그를 상징하는 명대사,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외치지요. 그는 폼페이우스의 아내 코넬리아와 아들 섹스투스가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열 것을 간청하자 그에 동의합니다. 패자에게 자비를 베풀면, 두 번 승리하는 것이라며 승자의 여유를 보이지요.

이때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의 심복 아킬라스가 시저에게 선물을 전하는데, 화친의 증거라며 폼페이우스의 잘린 머리를 가져왔습니다. 코넬리아와 주변 사람들은 경악하고, 자신의 정적이었음에도 그들과 평화를 약속한 시저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잔인함을 비난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시저의 힘을 이용할 방안을 고민하다가, 시녀로 변장하고 그를 만난답니다. 그에게 국왕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잔인성을 폭로하며 그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탄원합니다. 그녀의 미모에 사로잡힌 시저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하지요.

시저는 파라오의 궁으로 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경솔한 행동을 삼가도록 경고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을 무시하는 시저를 환대하는 척하며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시저는 그의 음모를 꿰뚫고 아리아 ‘사냥꾼이 냄새를 맡으면’을 부르고 그곳을 벗어납니다. 반복적인 리듬과 ‘우우우~’하는 선율이 독특하게 와 닿는 재미있는 곡이지요.

프톨레마이오스는 아킬라스에게 시저를 제거하는 공을 세우면 코넬리아를 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아킬라스는 그녀를 차지할 욕심에 더욱 충성을 다짐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시저를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하고 은근하지만 아주 강력한 유혹의 노래를 하고 자는 척하며 그를 기다립니다. 등장한 시저는 그녀에게 넋을 잃고, 잠든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합니다. 그의 고백에 그녀가 눈을 뜨며 기뻐하지요.

이때 프톨레마이오스의 부하들이 습격해 왔습니다. 그러자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같이 싸우겠다고 하는 게 아닙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정체가 클레오파트라임을 알게 된 시저는 깜짝 놀라지요. 하지만 지금 그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답니다. 갑주를 챙기고 적을 무찌르고 오겠다며 군사를 이끌고 달려갑니다. 그녀는 그의 안전을 기원하며 애절하게 자신의 사랑을 지켜달라고 신에게 기도합니다.

시저는 전투에서 패하여 대부분의 군사와 전선을 잃고, 인근 해안가로 헤엄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답니다. 클레오파트라도 프톨레마이오스와의 전투에서 패하여 포로가 된 상태고요.

시저를 제거한 아킬라스는 약속대로 코넬리아를 포상으로 원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는 약속을 어기고 그녀를 후궁으로 삼으려 합니다. 배신감에 격분한 아킬라스는 결국 반기를 들었으나 패하고, 시저는 바닷가에서 죽어가던 아킬라스에게서 비밀 군대와 그들을 지휘할 수 있는 반지를 얻어냅니다. 더구나 그들은 성에 침입할 수 있는 비밀통로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독방에 갇힌 클레오파트라는 남동생이 자신을 죽일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태양신이 둘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며 절절하고 기교 넘치는 아리아 ‘눈물이 흐르네’를 부릅니다.

갑자기 군사들이 몰려오는 소리에 때가 왔음을 예감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각오로 지긋이 눈을 감습니다. 그런데 시저가 군사들을 이끌고 들어와 그녀를 뜨겁게 포옹하지요. 시저가 전투에 승리한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기뻐하며 그에게 안깁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군중들 앞에서 시저가 클레오파트라를 여왕으로 추대하고 그녀도 로마 황제에 대한 예를 갖추지요. 모두가 합창으로 시저의 영광을 찬양하며 평화를 기원하고, 시저와 클레오파트라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막이 내려집니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의 첫 만남, 장 레옹 제롬. [사진 Wikipedia]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의 첫 만남, 장 레옹 제롬. [사진 Wikipedia]

한때 시저와 함께 로마의 ‘삼두정치’를 이끌던 폼페이우스는 동맹국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시저는 정적이었지만 재가 되어 사라진 영웅을 추모합니다.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한편, 시저는 정적을 제거하려 이집트에 갔는데, 그곳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지요. 비록 로마법 때문에 두 사람이 정식 결혼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아들 카이사리온은 시저 암살 후 잠시 로마를 지배하기도 합니다. 무시무시한 권력 속에서도 사랑은 꽃을 피우네요. 그렇지요, 사랑은 그렇게 강한 것인가 봅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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