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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대행론 도는데…침묵하는 북한, 모른다는 미국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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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배석한 모습. 김여정은 김 위원장의 유고 시 권력 승계 1순위로 꼽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배석한 모습. 김여정은 김 위원장의 유고 시 권력 승계 1순위로 꼽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1일 미 CNN방송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중태’ 보도로 촉발된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 이틀째인 22일에도 북한 매체에 김 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최고존엄에 대한 신변 이상설이 불거질 때마다 사진이나 영상 등을 공개, 건재를 알리며 즉각 반응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 언론 김정은 사진 없이 동정 보도 #과거 이상설 나오면 ‘건재’ 즉각 밝혀 #극적 등장 시점 고르고 있을 가능성 #트럼프, 김정은 건강 놓고 “행운 빈다” #한국 정부 입장과는 다소 결 다른 반응 #이상 징후 감지했지만 검증은 못한 듯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이날 김 위원장의 동정 보도 없이 ‘자력갱생은 우리 당의 일관한 정치노선’이란 제목의 논설을 1면에 실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밤 사진 없이 김 위원장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보낸 답전 내용만 공개했다. 김일성 생일(북한에서는 태양절) 축전을 보내준 데 대한 사의 표시였고, 22일자로 돼 있다. 북한 매체가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을 보도한 것은 지난 12일이 마지막이다.

김정은

김정은

이런 북한의 침묵은 다소 이례적이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도 “특이 동향이 없다는 (어제) 입장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북한 주재 외국 대사관이나 북한 매체의 보도 태도에 평소와 다른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는 것도 김 위원장이 건재하다는 정부의 판단에 힘을 실어 준다. 김 위원장이 의도적으로 극적으로 등장할 전략적 시점을 고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지난 15일 북한 최대 명절인 태양절에도 잠적한 이유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업무를 보는 건 가능하지만, 공개 활동은 어려운 상태 아니냐는 추측도 그래서 나온다. 2014년 9월 김 위원장이 발목 수술을 받았을 때도 북한 매체들은 약 40일 동안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 미 NBC방송은 미 당국자들이 “김 위원장이 심혈관계 수술 뒤 정상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어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최고 지도자 대행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미·일 협의 소식통’을 인용한 서울발 보도에서 “지난해 말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사망 등으로 인해 김 위원장이 통치할 수 없게 될 경우 ‘권한을 모두 김여정에게 집중시킨다’는 내부 결정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관련 소식통은 “그(결정) 이후 당과 군에 김여정 명의의 지시문이 많이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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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여정은 현재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지도부는 노동당의 모든 정책에 관여하는 당 속의 당으로 불린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정일은 생전에 김여정을 두고 ‘코털이 있었으면(남자였다면) 권력을 물려줬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며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북한에서 김여정 외에 대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서울=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위중하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우리는 모른다. 괜찮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위중하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우리는 모른다. 괜찮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건강 이상설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장은 “모른다”였다. “아니다”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백악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 말해 달라는 질문에 “우리는 모른다. 모른다”고 두 차례 반복한 뒤 “이 말밖에는 할 수 없다. 그가 괜찮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만약 그가 뉴스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다면, 여러분도 알다시피 매우 심각한 상태”라면서다.

건강 이상설 보도를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만약 사실이라면 쾌유를 바란다는 취지였다. 61초간의 짧은 질의응답 중 “괜찮기 바란다” “행운을 빈다”는 말만 다섯 번이나 했다.

김 위원장 중태설을 보도한 언론이 평소 그가 ‘페이크 뉴스’로 공격해 온 CNN방송이란 점을 염두에 둔 듯 “매우 심각한 의료 기록에 관해 보도했는데, 아무도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CNN이 보도하면 나는 별로 신뢰를 두지 않는다”고도 했다.

거의 매일 각종 첩보와 정보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선 “모른다”고 한 것과 관련, 이상 징후는 감지했으나 아직 믿을 만한 수준까지 이를 검증하지는 못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한·미 간 대북 정보 공유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데 “지방에서 현지지도 등 정상적 활동 중”(청와대 고위 관계자)이라며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을 전면 부인하는 한국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해석 혹은 첩보의 신뢰성에 대한 판단을 달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답을 피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에게 연락을 취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노력을 할 생각이냐는 다른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글쎄, 그럴 수도 있다(I may)”고 말했지만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이어 “그가 괜찮은 걸 보고 싶고, 그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앞서 오전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은 특히 지도자에 관한 정보를 내놓는 데 인색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스뉴스에 출연해서는 유사시 북한 승계 계획에 대한 질문에 “김 위원장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관해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면서도 “기본적인 가정은 아마도 가족 중 누군가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전제를 달았다고는 하지만 북한 최고 지도자의 유고를 상정한 질문에 미 고위 당국자가 대답을 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북한의 승계 서열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에게) 그걸 물어보고 싶지는 않다”면서 “(예전에) 물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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