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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내가 거절" 트럼프, 文과 통화땐 왜 입도 벙긋 안했나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백악관 브리핑에서 검진 장소 리스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백악관 브리핑에서 검진 장소 리스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11차 한ㆍ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과 관련해 “한국의 제안을 내가 거절했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문 대통령과 협의하고 있느냐’는 질의를 받고 “이것은 (주한미군 병력) 감축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더 기여할 것이냐의 문제”라며 “한국이 어떤 수치를 제안했지만 내가 거절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새로운 합의는 공평한 합의가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미국)의 납세자들이 이걸 듣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3분여에 걸쳐 방위비 문제를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시그널은 분명했다.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위비 문제에서 이토록 명확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정작 문 대통령과 최근 두 차례나 통화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 관련 등으로 3월 24일, 4월 18일 전화 통화를 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한 달 간격으로 통화하면서도 “방위비의 ‘방’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①한·미 정상 통화에선 '자제'
정상 간 대화에서 돈 문제를 직접 꺼내는 풍경은 흔치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 만은 예외였다. 트럼프 스스로 문 대통령에게 방위비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2018년 9월 유엔총회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후 이틀 뒤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3만 2000명의 주한미군이 있는데 내가 '한국은 우리가 내는 비용을 왜 배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같은 해 12월 아르헨티나 주요20개국 정상회의 때는 30분간 약식회담의 짧은 시간에도 방위비 문제를 거론했다.

최근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최대 관심사인 방위비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놓고 정부 안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는 반대로 방위비 문제가 그만큼 첨예한 순간에 와 있다는 얘기도 된다. 전후 사정을 종합할 때 미국은 지난달 31일을 전후해 한국이 제안한 총액 기준 13% 인상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마지노선을 제안했다. 반면 한국도 “기존 인상 폭을 넘어설 수 없다”는 데 최고위층과 실무진이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 직접 부딪힐 수 있는 소재를 일부러 꺼내지 않았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도 “문 대통령은 내 친구”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정상 차원의 케미스트리와 친분을 강조하는 평소 성격상 민감한 문제를 일부러 피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급에서 결렬되거나 의견이 충돌하게 되면 마지막 해법이 요원해지는 측면도 있다.

이와 관련, 정통한 소식통은 “협상팀에서는 한·미 양측 모두 방위비 문제를 '최대한 정상까지는 끌고 가지는 말자'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스타일상 '실무진의 반대'가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해 11월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뉴욕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11월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뉴욕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②다른 문제에 관심 쏠렸나
오히려 즉흥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단순히 깜빡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이 조언한다고 이를 그대로 따르는 성격은 아니다”며 “방위비보다 더 큰 문제에 관심이 쏠려 있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일 “내 친구 문 대통령에게 선거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해줬다”고 언급했듯이, 지난 18일 한·미 정상 간 통화의 주요 소재는 한국의 총선 결과였다고 한다. 대선 레이스를 치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한국 집권 여당의 승리에 온통 감정이 이입됐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이 전략이었든, 잊어버렸든 결국 결과는 하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듯 미국 입장에서 '공정한 합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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