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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카이사르와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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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민중파의 거두, 개혁의 주도자, 속주를 넓히고 국부(國富)를 키운 영웅이었다. 로마 시민은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만년(晩年)의 그는 명백한 공화정의 적이었다. 갈리아 평정 후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한 쿠데타의 수괴였고, 2인 공동 집정관 체제를 무너뜨린 준(準) 황제급 종신 독재관이었다. 암살자들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도 그가 황제 등극을 꿈꾼다는 것이었다.

그 카이사르를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자였던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검찰 비판의 도구로 끄집어냈다. 공권력 보유자에 대한 찬양의 위험성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를 제시한 것이다.

온당한 비교일까. 카이사르는 체제 전복 미수범으로 볼 수 있지만, 검찰은 과잉 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국민과 대통령이 위임한 검찰권을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체제 수호 세력이다. 단임제 검찰총장을 종신 독재관과 비교하는 것도 민망해 보인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한술 더 떴다. 검찰을 향해 “세상 바뀐 걸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윽박질렀다. 둘 다 합법적 검찰권은 철저히 부정한 채 개인적 유감을 담아 ‘반동(反動)’ 딱지를 붙이는 데만 주력하는 모습이다. 최 당선인은 검찰의 세 차례 출석 요청에 모두 불응했다. 보수 유튜버 고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보낸 서면진술서도 백지로 돌려보냈다. 그래놓고는 기소되자 “부당한 기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전 국장에게서도 수사의 적정성을 법정에서 가리겠다는 법치국가 법조인의 기본자세는 찾아볼 수 없다.

“이미 (공소사실에 대한) 시민의 심판은 이뤄졌다”며 총선 결과를 견강부회한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최 당선인이 21일 자신의 첫 재판에 출석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향후 예상되는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의 소환 요청에도 당당히 응하길 바란다.

이들의 ‘장내’ 진입을 바라는 또 다른 이유는 ‘장외 싸움꾼’ 행보가 열린민주당이 원하는 여당과의 합당에도 도움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기자가 여당이라면 검찰과의 장외 대리전을 자처한 이들 ‘방계 선봉장’을 현 상태대로 계속 활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다. 대가도 ‘국회 의석 3석’으로 매우 저렴하니 현상 유지가 여러모로 남는 장사 아닐까.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