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재난지원금 문제만으로 언제까지 아웅다웅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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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당정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이미 ‘소득 하위 70% 가구 지급’으로 결론을 냈으나, 여당인 민주당이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면서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총선 과정에서 전 국민 지급을 주장했던 미래통합당이 입장을 바꾸면서 여야 간 입씨름까지 벌어지고 있다.

소득하위 70% 결론 내놓고는 다시 논란 #빨리 마무리짓고 경제위기 총력 대응을

여당과 야당, 정부가 갑론을박하는 사이 ‘긴급’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졌다. 어려움에 부닥친 국민을 지원하고 소비를 진작한다는 취지는 찾기 힘들게 됐다. 재난지원금이 기대했던 효과를 보려면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우리보다 코로나19 방역에 뒤진다는 미국·일본 등이 국민 생계 지원에서는 이미 방향을 정해 속도를 내는 것과 비교된다. 정 합의가 어렵다면 당초 결정대로 70% 가구에 일단 지급한 뒤, 전 국민 지급 여부는 추후 결정하는 등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행정력 낭비가 생길 수 있지만, 지금처럼 표류하면서 시간만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

당장 눈앞에 닥친 경제위기를 생각하면 재난지원금 범위 문제만으로 아웅다웅할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4월 들어 수출이 26.9%나 줄었다. 코로나19의 충격이 음식·관광·숙박 등 내수 산업을 넘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공급과 수요에 걸친 복합 위기로 주력 산업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날개가 묶여 버린 항공업은 물론이고, 두산중공업·쌍용자동차 같은 한계 기업들도 돈줄이 말라가고 있다. 3월 취업자가 19만5000명 줄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그냥 쉰다’는 인구는 236만 명에 이른다. 예상치 못한 긴급 사태를 맞아 재난지원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 봤자 일회성 생계 지원일 뿐이다. 이 문제에 매달려 더 화급한 경제 현안을 소홀히 하는 것은 태풍이 몰려오는 바닷가에서 어떤 조개를 줍는 게 좋을지 다투는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경제부총리가 중심이 되는 ‘경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체제’를 갖춰 달라고 주문했다. 코로나 사태로 국내외 경제가 비상 국면에 접어든 것이 벌써 두 달이 넘는다는 점에서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경제 사령탑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재정과 관련된 정책을 두고 여당이 정부 부처를 흔드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청와대·정부·여당이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 유능하고 경륜 있는 경제 전문가가 주도권을 잡고 국면을 헤쳐 나갔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위기는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깊어질 공산이 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재정을 쏟아부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선 재정 건전성 약화를 최소화해 추가 국채 발행 등의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장에 일리가 없지 않다. 새로운 경제 사령탑으로 바꿀 생각이 아니라면 여당도 선거공약이라며 밀어붙일 게 아니라 기재부에 일단 힘을 실어주는 게 맞다. 무엇보다도 재난지원금 이견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쓰나미처럼 밀려온 경제위기 대응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