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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부산영화제 온 在美동포 감독 김대실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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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흔히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말하지만 주류 사회에 끼기 위해서는 백인들의 논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소수 민족이면서도 흑인이나 히스패닉을 깔보고 짓밟으려 하지요. 그렇게 성공했다고 해서 백인들이 한인들을 진정한 주류로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아닌데도 말입니다."

지난 2일 개막한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다큐멘터리 '젖은 모래-10년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들려온 목소리'로 초청받은 재미동포 감독 김대실(金大實.65)씨.

그는 1992년 4월 29일 일어난 LA 폭동 당시 여성 희생자들의 증언을 담은 '사이구(4.29)'를 비롯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인 '깨어진 침묵-한국인 위안부', 사할린의 한인을 소재로 한 '잊혀진 사람들-사할린의 한인들' 등을 발표해 미국은 물론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온 감독이다.

59분 분량의 '젖은 모래'는 93년 공영방송 PBS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방영됐던 '사이구'의 속편 격이다. 폭동 당시 워싱턴 DC에 살았던 金씨는 TV를 통해 보도되는 LA 폭동이 지나치게 수박 겉핥기식인데 분노해 '사이구'를 만들었다.

'젖은 모래'는 '사이구' 때 만났던 희생자를 비롯해 백인.흑인.라틴계 등 50여명을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미국 내 소수 민족이 겪는 차별과 빈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여기서도 여전하다. 제목 '젖은 모래'는 폭동으로 외아들을 잃은 한 여인의 발언에서 따온 것이다.

"그 분은 '단합이란 젖은 모래를 손에 쥐는 짓이다. 젖은 모래를 손에 쥐면 처음엔 한 뭉치로 손에 잡히지만, 마르는 순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폭동으로 인해 한순간 단결하는 것처럼 보였던 한인들은 10년이 지난 후에도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에 빠져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힘있는 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부질없는 짓은 이제 그만두고 소수 민족끼리 이해하고 뭉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난 金씨는 이화여고와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한 뒤 62년 도미(渡美)했다. 보스턴대에서 종교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신학교수.뉴욕주 예술위원회 미디어 디렉터를 거친 뒤 쉰살이 되던 88년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영화감독이 됐다.

金씨는 그간 미국인 남편의 외조와 록펠러.맥아더 재단 등의 후원으로 제작.연출.각본 등 1인3역을 하며 7편의 독립 영화를 찍었다. 와이드 앵글 부문에 소개되는 '젖은 모래'는 부산에서 8일 오후 4시 상영된다.

글=기선민,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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