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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단군을 찾아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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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정인보 선생이 쓰고 김성태 선생이 곡을 붙인 '개천절 노래' 1절이다.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한 참뜻은 이 노래처럼 우리의 뿌리를 생각하고, 민족국가의 건국과 단일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되새기는 데 있을 것이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 사건으로 온통 시끄러웠던 지난주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단 3백명에 끼여 북한을 방문한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평양 단군릉에서 열린 개천절 행사에 참가하고 단군 사적지를 찾아 지방 몇 곳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북한 측 인사들은 단군릉이 발굴된 지 올해 10돌이 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일성 수령의 위대한 영도에 의해 지금까지 전설로만 알려졌고 신화적 존재로 여겨오던 단군이 실재한 역사적 인물이란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 우리 민족의 원시조를 찾게 해주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화강석 7만2천개로 만든 아득히 높은 계단 위에 세워진 가로 50m.세로 50m.높이 22m의 거대한 돌무덤은 단군을 신화로만 배워온 남쪽 사람들에게 주눅부터 들게 할 뿐이었다.

해외동포와 2천여명의 북쪽 주민도 함께 참석한 단군릉 행사 분위기는 뜨거웠다. 제단에 술과 큰절을 올리고 제문을 읽는 순서로 시작된 행사에서 남과 북의 대표들은 단군의 개국이념으로 한겨레.한핏줄이 힘을 모아 평화통일의 날을 앞당기자고 입을 모았다. 7천만 겨레에 보내는 공동 호소문도 채택했다. 이 자리에서도 북측 인사들은 위대한 영도자와 선군정치를 칭송하고 우리 민족끼리 공조를 이루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단군의 역사적 실재에 대해 남한 측 학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발굴 때 나온 단군과 그의 아내로 추정되는 뼈에 대한 연대측정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고구려식 무덤 양식과 출토물에 대해서도 이의를 단다.

그러나 개천절 전날 평양에서 열린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제2차 남북 공동학술토론회에서는 이런 민감한 문제를 비켜갔다. 북측 학자들은 단군릉 발굴 후 지난 10년간의 학문적 성과를 강조하고, 남측은 문헌.유물을 통한 단군과 고조선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데 주력했다.

지도자의 생일이나 정월 대보름.단옷날까지도 국가명절(공휴일)로 정하고 있는 북한에서 개천절은 국경일이 아니다. 관공서나 학교에서 행사도 없다. 거대한 단군릉을 만들어 역사 문화재로 떠받들면서 단군이 나라를 개국한 개천절을 지키지 않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떤 학자는 단군릉 개건(改建)에 대해 북한이 1990년대 이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체제의 정통성과 우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고, 통일운동의 상징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환인과 환웅.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구월산의 삼성사나 단군 탄생의 전설이 깃든 묘향산의 단군사 등의 유적들이 단군을 진실로 숭모하는 곳이라기보다 외부에 보이기 위한 장소로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한번에 1천명이 넘는 규모로까지 남측 사람들이 북한에 들어간다. 북측 사람들과 반갑게 만나고 여러 행사도 함께 한다. 교류와 접촉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뜨거운 가슴과 함께 냉정한 머리도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는 '민족공조'와 '우리끼리 통일'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도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단군릉 행사에서는 '개천절 노래' 가 울려 퍼지지 않았다. 취주악대는 그 대신 '통일아, 통일아'를 연주했다.

한천수 사회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