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처칠, 루즈벨트가 되고픈 아베"…일본식 긴급선언 과연 통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도쿄도를 비롯한 7개 광역자치단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뒤 하룻밤이 지난 8일 오전 8시.

일본 도쿄 등 긴급사태 발령 첫날 #아베는 "출근 70% 줄여 달라" 호소 #휴업시설 확정 안돼 별 변화 없어 #닛케이 "아베, 처칠에 자신을 포개" #전날 회견에선 루즈벨트 발언 인용 #日 사회 "일본식 코로나에 승리" #"이미 통제 불가로 확산" 비관론도

7일 저녁 7시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평소보다 70~80% 사람과의 접촉을 줄여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7일 저녁 7시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평소보다 70~80% 사람과의 접촉을 줄여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쿄 교통의 요지인 시부야 역의 모습은 전날보다 승객이 '약간' 줄었을 뿐 큰 차이는 없었다. 신종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 비하면 상당히 줄긴 했지만, 긴급사태 전후를 비교하면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도쿄도가 아직 구체적인 휴업 요청 대상 시설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긴자 등 번화가의 주요 백화점들과 의류 매장, 대형 레스토랑과 커피 전문점 등이 선제적으로 휴업에 돌입해 거리는 전날보다 다소 한산했지만, 전날 기자회견에서 “사람과의 접촉을 70~80% 줄이고, 시차 출근 등을 통해 출근자의 70%를 줄여야 2주 뒤 감염자가 피크(정점)를 지나 감소세로 바뀐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호소와 실제 거리의 모습 사이엔 아직 거리가 있다.

긴급사태선언 발령 전인 지난 7일 오전 8시 도쿄 시부야역의 모습. 서승욱 특파원

긴급사태선언 발령 전인 지난 7일 오전 8시 도쿄 시부야역의 모습. 서승욱 특파원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다음날인 8일 오전 8시 도쿄 시부야역의 모습. 전날보다 승객들이 다소 줄긴 했지만 인파는 여전하다. 서승욱 특파원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다음날인 8일 오전 8시 도쿄 시부야역의 모습. 전날보다 승객들이 다소 줄긴 했지만 인파는 여전하다. 서승욱 특파원

향후 도쿄도는 백화점과 극장, 각종 전시관, 술집 등 휴업 요청 대상이 되는 시설과 장소를 발표하고, 외출과 이벤트 자제를 공식적으로 요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누차 강조하는 것처럼 강제력이 동반되지 않기 때문에 유럽의 ‘도시 봉쇄’와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일본 국민의 상식과 자발적인 협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라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다음날인 8일 평소보다 차량의 왕래와 인적이 줄어든 도쿄 번화가 긴자. 서승욱 특파원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라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다음날인 8일 평소보다 차량의 왕래와 인적이 줄어든 도쿄 번화가 긴자. 서승욱 특파원

아베 총리를 정점으로 한 일본 사회엔 "일본식으로 신종 코로나를 극복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즉, 일본 국민 특유의 위생 의식과 순응적인 국민성을 바탕으로, ^밀폐 ^밀집 ^밀접 접촉 등 소위 '3(密)'을 피하는 자발적 노력으로 코로나의 폭발적인 증가를 억제하자는 것이다.

7일 아베 총리의 회견에 동참한 전문가회의 좌장도 "일본은 국민의 건강의식이 높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때도 10만명당 사망자가 다른 나라와 단위가 다를 정도로 적었다. (총 사망자 203명) 의료제도도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시계 등 명품 매장이 즐비한 도쿄 긴자의 나미키 거리는 8일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서승욱 특파원

시계 등 명품 매장이 즐비한 도쿄 긴자의 나미키 거리는 8일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서승욱 특파원

요미우리 신문은 8일 자 1면 칼럼에서 "일본식 싸움으로 국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선 한층 더 과감하고 섬세한 지도력이 아베 총리에게 요구된다. 국민의 의지와 인내력이 성공의 키를 쥐고 있다"며 "모두가 의연하게 위기와 싸우자"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으로 나치 독일에 대항했던 윈스턴 처칠에 자신의 모습을 포개고 있다. 처칠은 곤란 속에서도 국민의 신뢰를 얻어 난국을 극복했다. 처칠을 그린 작품 『never despair(절망하지 마라)』를 틈날 때마다 반복해서 읽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8일 신종 코로나에 임하는 아베 총리의 자세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베 총리는 7일 회견에선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을 했는데, 닛케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대공황 때 했던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8일 도쿄역 인근 고속버스터미널의 한산한 모습. 고속버스 출발을 기다리는 승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서승욱 특파원

8일 도쿄역 인근 고속버스터미널의 한산한 모습. 고속버스 출발을 기다리는 승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서승욱 특파원

신종 코로나 극복과 올림픽 성공 개최를 자신의 정치적 유산으로 삼겠다는 게 아베 총리의 의도겠지만, 상황이 그의 그림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하루 4000건에도 못 미치는 검사 실적 때문에 '현재 발표된 확진자 수는 빙산에 일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7일 저녁 7시 총리관저에서 열린 아베 신조 총리의 긴급사태선언 관련 기자회견은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기자들도 2m 정도 거리를 두고 착석한 채 진행됐다. [로이터=연합뉴스]

7일 저녁 7시 총리관저에서 열린 아베 신조 총리의 긴급사태선언 관련 기자회견은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기자들도 2m 정도 거리를 두고 착석한 채 진행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긴급사태선언을 통해 사람간 접촉을 억제하더라도 이미 통제가 어려울 만큼 감염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더 많은 시설에 휴업을 요청하겠다는 도쿄도의 의견에 일본 정부가 ‘너무 가혹하다’고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초반부터 일정이 헝클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8일 도쿄역 인근 백화점 정문이 닫혀있고, 임시 휴업을 알리는 전단이 붙어있다. 서승욱 특파원

8일 도쿄역 인근 백화점 정문이 닫혀있고, 임시 휴업을 알리는 전단이 붙어있다. 서승욱 특파원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감염 억제보다 자신의 치적인 아베노믹스와 경제를 더 중요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식의 어정쩡한 상황으론 아베 총리가 호소하는 ‘사람 간 접촉 80% 억제’는 쉽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적지 않다.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라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다음날인 8일 평소보다 차량의 왕래와 인적이 줄어든 도쿄 번화가 긴자. 서승욱 특파원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라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다음날인 8일 평소보다 차량의 왕래와 인적이 줄어든 도쿄 번화가 긴자. 서승욱 특파원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