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전영기 칼럼니스트의 눈

‘코로나 독재’ 조짐…나쁜 권력은 틈만 나면 전체주의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바이러스가 바꾼 세계의 정치문화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코로나는 고약한 놈이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민주주의는 ①개인의 자유와 인권 ②언론의 자유와 법치 ③3권분립과 정권 교체라는 세 기둥 위에 세워졌다.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상당수 권력들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며 민주주의의 세 기둥을 살금살금 갉아먹고 있다. 민주주의는 한번 파괴되기 시작하면 관성을 갖는다. 무너진 민주주의는 복원하기 어렵다. 권력이 본성상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대중도 새로 형성된 비민주적 질서에 순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위기에서 시작된 전체주의 #안전 위해 자유 양도하라고 속삭여 #이스라엘·헝가리 등 민주주의 후퇴 #한국, 범죄혐의자들 총선 부활 노려

바이러스가 물러나면 권력은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작은 위기를 부풀리거나 없는 위기를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민주주의 세 기둥은 무너져 내릴 수있다. 자유, 법치, 3권분립이나 정권교체는 나이든 사람들의 기억에만 아련히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줄테니 민주주의를 잠시 포기해달라는 권력의 속삭임에 주의해야 한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요즘 세계 권력들의 활동상은 국민을 지켜준다는 명분에 민주주의를 담보잡히는 거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4월1일자 “공포 속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권력들(Fears allow leaders to seize new powers)”이라는 기사다.

이스라엘은 자유민주주의가 살아있는 나라로 알려졌다. 현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해 말 특정 언론사에게 예산과 정책 지원을 제공한 대가로 자신에 관해 좋은 보도를 하게 한 혐의 등(뇌물·사기·배임)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네타냐후의 지지자들은 “검찰의 쿠데타 시도”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검찰총장은 “총리의 기소는 증거와 법에 따라 취해진 나의 의무”라고 말했다. 검찰총장이 총리를 기소해 재판에 넘김으로써 권력자는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가 상황을 바꿔 놓았다.

네타냐후는 행정 명령으로 경찰 등 공안 기관에게 개인 휴대폰의 데이터를 추적할 권한을 부여했다. 개인의 동선 정보를 확보할 권한을 쥐게 되자 정부는 격리 명령을 어긴 사람들을 최고 6개월간 감옥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저항없이 받아들였다. 네타냐후는 여기에 재판정 폐쇄 명령을 슬쩍 끼워 넣었다. 이 모든 일을 바이러스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실행했다. 재판정이 폐쇄되니 총리는 부패 혐의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바이러스에 대처한다면서 법치를 중단시켰다. 네타냐후는 코로나 비상 사태를 가능한한 길게 끌고 나가면서 현직 검찰총장을 쫓아내 사법적 궁지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자유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의 권력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도 이스라엘을 닮아 있다. 윤석열 총장은 조국 전 민정수석 등 청와대의 핵심 측근들 다수를 법정에 기소했다. 그들의 핵심 혐의는 대통령 친구의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권력 이너서클이 총동원돼 조직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4·15 총선 뒤 임종석 전 비서실장까지 수사를 확대하면 문 대통령에 대한 조사로 이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바이러스 총선을 계기로 상황이 뒤집어 졌다.

윤석열이 오히려 수사 대상으로 몰리고 범죄 혐의자들이 심판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집권당의 제1 위성정당 대표는 “(선거 뒤 설치될) 공수처의 1호 수사 대상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2 위성정당의 청와대 비서관 출신들도 같은 입장을 보였다. 검찰총장을 포함해 정권 수사를 지휘한 고위직 검찰 간부 10여명의 명단을 제거 대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범죄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검사를 감방에 보내겠다고 협박하는 모양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과거 어떤 정부에서도 본 적이 없다. 코로나 비상 시국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집권당과 정부가 큰 저항을 받지 않게 되자 또렷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중앙과 지방 정부의 권력자들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교회 예배를 사실상 중단 시키는 행정 강제를 활용하고, 다른 손으로 재난기본 소득이라는 미증유의 돈다발을 흔들어 유권자의 환심을 사고 있다.

열광하는 대중의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행정부의 권력 사용량은 늘어나고, 권력량이 늘어날수록 대중의 환호성이 다시 커지는 순환 패턴이 한국의 코로나 비상 정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권력과 대중의 달콤한 결합은 얼마나 오래갈까. 코로나 비상사태 와중에 둘한테 의회의 견제나 사법적 정의, 언론의 비판같은 대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능은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권력과 대중의 달콤한 시기가 지나면 끔찍한 사태가 올 수 있다. 대중으로부터 자유를 양도받은 권력은 전체주의로 질주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지닌다. 호의가 지나치면 권리가 된다는 영화 대사가 있다. 권력은 대중이 호의로 양도한 자유를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다음 수순으로 권력은 자유의 박탈을 권리로 생각할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전체주의의 욕망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3월 코로나 긴급 조치를 선언했다. 3월의 마지막 날엔 ‘의회의 총리 견제권’과 ‘기존 법률들의 효력’을 중지시키키는 법률이 의회에서 통과됐다. 의회가 의회를 부정하고 법률이 헌법을 부정한 희한한 광경이다. 의회의 3분의2 의석을 오르반 총리의 집권당이 장악했기에 가능했다. 물론 코로나라는 고약한 놈이 국민에게 공포를 심어 놓지 않았다면 시도할 수 없었던 일이기도 하다. 오르반의 긴급조치 법은 1930년대 히틀러의 나치당이 의회로 하여금 자기 권한을 내각에 다 넘기도록 한 수권법과 유사하다. 수권법의 통과는 멀쩡한 민주주의 나라가 쿠데타 없이도 전체주의 일당 독재로 이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르반 법에 따라 헝가리 총리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격리 명령을 어긴 시민에게 형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오르반은 예정된 모든 선거와 국민투표도 중지시켰다. 오르반 법은 언론인을 구속할 수 있는 ‘왜곡 뉴스’‘가짜 뉴스’의 판별권을 권력의 지침을 받는 검찰한테 부여했다. 언론의 자유는 다른 자유들을 있게 하는 마지막 자유다. 언론의 자유를 구금하는 권한을 정부가 갖게 됨으로써 헝가리 민주주의는 질식되었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민주주의 환경에서만 지속가능하다. 공산주의 일당 독재나 전체주의 팬덤 정치에서 개개인의 생명은 파리 목숨으로 전락한다. 나쁜 권력들은 이런 사실을 감추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가 귀찮고 신경이 쓰이며 정권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신체적 자유나 신앙·양심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를 조금만 유보해 달라는 권력의 제안은 위험하다. 공산주의 독재나 나치식 전체주의는 무고한 사람의 대량 살상으로 귀결되었다. 권력은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기 위해 공포를 휘두르고 희생양 만들기를 즐긴다. 스탈린과 히틀러, 마오쩌둥 시대의 희생양 처단은 모두 공포에 젖은 대중의 요구를 권력이 받드는 형식으로 수행되었다. 전체주의는 문명의 위기에서 시작됐다.

시진핑, 양심의 자유 측면에서 후진타오 때보다 못해

중국은 3권분립이나 정권교체가 없는 공산당 일당 지배의 나라다.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당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인정된다. 중국의 지배 권력은 바이러스 침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더 강화되었다.

2003년 당 총서기겸 국가주석에 오른 후진타오는 전임 장쩌민 체제에서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확진자 숫자 등 민감한 정보가 조작,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용감한 군의관이었던 장옌웅 박사의 진실 폭로를 계기로 후진타오는 거짓 정보에 책임이 있는 장쩌민 측근들을 단호하게 숙정했다. 이는 신구 체제간 권력 게임에서 후진타오가 승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0년 우한 코로나 사태로 시진핑 주석의 권력은 더 집중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발생 초기엔 인권 침해, 비밀주의, 거짓 보고 등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있었다. 그 뒤 공산당은 주요 성과 도시들에 대한 초법적 수준의 봉쇄조치를 밀어 붙였다. 저항은 제압되었다. 시진핑은 방역, 격리, 지원 과정에서 자신만이 명령할 수 있는 군사적 동원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 1인 지배력을 높였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노골적으로 심해졌다. 국내 인터넷 통제는 강화됐고 뉴욕타임스, CNN 등 서방 주요 언론사들의 특파원들은 추방되었다. 사스 때 이름을 떨친 중난산이라는 감염병 학자는 “우한 코로나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출현했지만 꼭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 없다”는 궤변을 퍼뜨렸다. ‘출현은 했지만 발원은 아니다’라는 어법은 사물의 본질을 흐려 문제와 책임이 다른 데에 있는 것처럼 꾸미는 전형적인 공산당식 프로퍼갠더다.

중난산은 후진타오 때 사스의 진실을 용감하게 밝혔던 장옌웅과 다른 종류의 지식인으로 비춰졌다. 양심의 자유를 관리하는 측면에서 시진핑 시대는 후진타오 시절에 비해 후퇴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