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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기 당하는 고령자 “난 아직 괜찮다”는 과신이 화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48)

70대 중반(여성) H 씨는 어느 날 “엄마, 나야! 나”라고 아들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업무차 고객 영업소에 왔는데, 급히 나오느라 집에서 결제금액이 들어 있는 가방을 놓고 나왔으니, 엄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 직접 건네받아야 안심할 수 있다며 회사 동료를 보낼 테니, 서둘러 지정 장소로 300만엔을 갖고 나오라 부탁한다. H 씨는 아들이 걱정되어 예금을 찾아 아들의 회사 동료에게 돈을 건네주었다. 다음 날 아들과 통화한 후에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자식의 문제에 동요하며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고령부모를 이용하여 돈을 빼앗는 수법(일명 오레오레 사기)이다.

최근 보이스피싱 사건은 추적을 피하려고 은행 송금보다 직접 돈을 건네받는 수법을 쓴다. 또 ‘아포뎅(약속전화)’이라는 새로운 사기수법도 등장했다. 사기보다는 강도에 가깝고 흉악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고령자가 낮에 혼자 집에 있을 때 경찰, 방송국 조사원으로 가장하고 전화를 걸어 가족구성과 집에 있는 현금액을 물어본다. 전화로 구체적인 재산 상황을 물어보고 혼자 사는 집으로 찾아가 범행을 저지르는 위험한 수법이다. 2019년 2월에는 도쿄에서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 사회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식의 문제에 동요하며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고령부모를 이용하여 돈을 빼앗는 보이스피싱 등 고령자 재산을 노리는 사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 Pixabay]

자식의 문제에 동요하며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고령부모를 이용하여 돈을 빼앗는 보이스피싱 등 고령자 재산을 노리는 사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 Pixabay]

언론매체에서 반복해서 보도되고 있지만 사기 피해가 줄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보이스피싱 사기 등의 특수사기는 인지 건수가 1만7844건, 피해총액은 약 383억엔이다. 과거 추이를 보아도 건수, 피해액 모두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며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2019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피해 인지건수는 1만4043건으로 특수사기 전체의 83.4%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65세 이상의 여성, 80세 전후의 고령자들에게 사기가 집중되고 있다(2019년 특수사기·검거상황). 어떤 형태로든 경찰에 인지된 건수이기 때문에 피해를 당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사건도 포함하면 건수와 피해액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65세 이상의 고령자는 대폭 늘어나고 있고, 그들이 보유한 저축액은 전체의 1/3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령자 재산을 노리는 사기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고령여성에게 집중되는 이유가 있다. 많은 고령여성이 혼자 살면서 오랫동안 집에 머물면서 직접 전화를 받는 횟수가 많기 때문이다. 고령자가 쉽게 사기를 당하는 것은 떨어지는 인지능력과 관련이 있다. 나이가 들어 시각과 청각 기능이 떨어지면 외부에서 정보를 잘못 인식하고 결과적으로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고령자들이 사기피해를 당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고령자일수록 사물을 긍정적 또는 낙관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의심하지 않고 어떤 사람과 사물을 쉽게 믿어버린다. 젊었을 때 매우 현명했던 사람도 그럴싸한 말에 쉽게 넘어가 투자 사기를 당하거나 고액의 상품을 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2017년 특수사기에 관한 여론조사(내각부)에 따르면, “자신은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고 대답한 사람은 연령이 많을수록 높았다. 자신은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물은 결과, 70세 이상에서 50.6%는 “속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대답했다(전체 평균 46.3%). 남성이 여성보다, 나이가 많을수록 과신하는 경향이 강했고, 젊은 세대에 비해 다른 사람과 상담하려는 경향도 매우 낮았다. 마찬가지로 경찰청이 2012년에 고령 피해자의 조사에서도 92%는 “자신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했다”고 대답했다. 요약하면 많은 고령의 사기 피해자들은 자신은 속지 않을 것이고 속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닛케이 리서치의 조사(시니어조사 그랜드 100)에서도 60세 이상 많은 고령인력은 자신의 투자판단에 자신을 갖고 있었고(남성 21.1%, 여성 4.8%), 75세 이상을 넘으면 그 경향이 더욱 커졌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과도한 낙관적인 자세를 ‘과신편향(overconfidence bias)’이라고 부른다. 낙관주의는 외부 환경에 대처할 때 자존심과 심리적 건강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만 자신의 능력에 대한 건전한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위험이 있다. 오히려 저축과 투자 등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큰 위험으로 작용한다. 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과신하면 피해를 방지하는 예방대책에 소홀하게 된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각종 단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홍보 계몽활동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모든 세대에게 널리 알려진 저명한 인물로 결성된 ‘SOS47’은 공적 기관, 각종 단체와 협력하면서 사기예방 홍보활동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부터 SOS47의 멤버가 출연하는 동영상 포스터를 제작하여 지자체 등과 연계하여 다양한 이벤트를 전개하고 있다.

일정기간 ATM에서 이체실적이 없는 고령자의 ATM 이체한도를 제로로 하고, 상담창구로 유도하는 대책을 추진한 결과 10,761건, 72.6억엔의 피해를 방지하는(저지율 41%)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사진 Pixabay]

일정기간 ATM에서 이체실적이 없는 고령자의 ATM 이체한도를 제로로 하고, 상담창구로 유도하는 대책을 추진한 결과 10,761건, 72.6억엔의 피해를 방지하는(저지율 41%)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사진 Pixabay]

특히 고령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의료기관 등 고령자와 접하는 기회가 많은 사업자에게 홍보활동의 협력을 얻고, 노인클럽연합회의 전국지사에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 금융회사와 제휴를 통해 고령자가 많은 금액을 송금하거나 지급할 때 경찰에 통보하여 사기피해를 대폭 줄였다. 일정기간 ATM에서 이체실적이 없는 고령자의 ATM 이체한도를 제로로 하고, 상담창구로 유도하는 대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만761건, 72.6억엔의 피해를 방지하는(저지율 41%)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고령자의 명부를 활용하여 주의를 환기하고, 사기전화 다발지역의 금융회사에도 주의를 환기시켰다. 독신 고령자 주택의 전화번호를 항상 부재중 전화로 설정하는 대책도 추진하였다.

다양한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만, 모든 사기를 방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만사를 조심해도 안타깝게도 피해를 당할 경우 ‘보이스피싱 사기 구제법’을 활용하는 대책도 세웠다. 이것은 돈을 이체하고 나서 사기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바로 경찰과 금융회사에 연락하면 이체한 계좌를 동결하고, 그 계좌의 잔액과 피해액에 따라 금액 전부 또는 일부(피해회복 분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제도다. 피해자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지만 피해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범인이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후에는 돌려줄 돈은 거의 없어진다. 이체한 직후에 인식한 경우에 이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체하지 않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사기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경찰은 계속 호소하고 있지만 사기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다양화되고 있다. 새로운 사기수법이 등장하면 경찰도 대응하기 어렵다. 가족 간 암호를 정해두어도 가족 이외의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사건을 방지하기 어렵다. 한 범죄 예방 전문가는 “상대가 누구라도 돈 이야기를 전화로 꺼내지 않는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상대가 누구라도 반드시 상대의 연락처를 다시 물어본다”는 2가지 원칙을 갖고 대응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돈 이야기는 반드시 누구라도 대면을 통해 처리한다는 대책을 주문한다. 큰 금액은 반드시 금융회사의 창구를 이용한다고 정해두면 금융회사에서 사기를 알아챌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모든 돈 문제를 처리할 경우에는 반드시 가족이나 주변사람들과 상담한 후에 처리할 것을 당부한다.

실제로 사기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처음 사기전화를 받을 때 혼자서 판단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자녀, 배우자와 상담하여 쉽게 예방할 수 있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날 때 혼자서 판단하지 않고, 상담할 사람이 있다면 사기 등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판단능력이 떨어진 것을 자각하는 것만으로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 범인의 부자연스러운 전화내용을 조금이라도 수상하게 느끼면 가족에게 확인하고 언제든지 상담하기 쉽도록 평소에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 피해를 당하기 쉬운 고령자와 그 자녀들, 손자녀 세대까지 가족 간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사기피해를 당한 90%의 사람들은 자신은 피해를 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내 판단력은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위험을 예방하는 최대 방법이다.[사진 Pixabay]

사기피해를 당한 90%의 사람들은 자신은 피해를 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내 판단력은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위험을 예방하는 최대 방법이다.[사진 Pixabay]

무엇보다 피해를 당하는 최대 원인은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기피해를 당한 90%의 사람들은 자신은 피해를 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먼저 이런 의식부터 바꾸어 나가야 한다. 사람의 신경세포가 노화되면 그 움직임이 떨어지면서 기억력이 나빠지고 판단력도 쇠퇴한다. 젊은 시절에 두뇌가 명석했던 사람일수록 나이가 들어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내 판단력은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위험을 예방하는 최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고령자가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는 대책도 세워야 한다. 고령자를 노리는 특수사기의 수단은 정부의 법망과 감시망을 넘어 계속 바뀌고 있다. 사기피해자의 부주의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행정, 경찰, 지자체, 금융회사, 고령자와 채널을 가진 모든 조직이 고령자의 일상생활과 환경변화를 인식하고, 그 정보를 활발하게 교환하는 등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2025년 이후에 일본의 치매환자수는 고령자 5명 중의 1명이 될 전망이다. 앞으로 치매 고령자가 늘어나면 특수사기 등의 피해를 당하는 고령자는 훨씬 많이 늘어날 것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생각지도 못하고 원치 않는 재산분쟁에 쉽게 휘말리 않도록 가족은 물론 사회차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국금융교육원 생애설계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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