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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사 서평’은 그만…학식·비판·문체 잘 어우러져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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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호 26면

공부란 무엇인가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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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그 책에 관하여 쓰는 글은 다 광의의 서평이다. 서평의 기본적인 기능은 그 책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높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책 내용 잘 요약, 큐레이팅 역할 #이해 심화시키려면 맥락 부여해야 #창의적 질문 던져 새 면모 조명도 #학술 서평 적으면 학계 발전 못 해 #학문적 깊이, 매력적 문체 겸비 #문예공화국 면모 갖추게 해 줄 것

먼저 책 내용에 대한 적절한 요약이 필요하다. 신간 소개의 성격을 띤 서평이라면 특히 그렇다. 오늘날처럼 전 세계에 책이 넘쳐나는 세상이라면, 책에 관련된 정보 요약과 큐레이팅이 필요하다. 서평은 그런 역할에 최적화된 장르다. 책을 소개하는 글이라면,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책 부분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많다. 그러나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서평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책이 그러한 답을 가능케 하는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책을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가 들기는 하지만, 그때는 왜 그 책이 그런 상태에 이르고 말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내용 소개가 될 수 있다.

최악 서평은 자기 얘기만 주절주절

독자의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내용 요약을 넘어 맥락(context)을 부여해야 한다. 다양한 맥락이 있을 수 있다. 같은 주제를 다루는 여러 책들의 맥락 속에 서평 대상이 된 책을 위치시킬 수도 있고, 동시기에 나온 다른 책들과 함께 맥락을 구성할 수도 있고, 저자의 다른 책들과의 관련 속에서 신간을 논할 수도 있다. 어떤 맥락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서 서평자의 역량이 상당히 드러난다. 학술서적의 경우, 여러 책을 함께 다루는 서평을 통해 연구사 정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깊이 있는 서평은 내용 소개에만 그치지 않는다. 본격적인 비평이 담긴다. 서평 대상이 된 책이 제공하는 정보 중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도 있고, 그 책이 담고 있는 주장들의 논리적 결함을 지적할 수도 있고, 그 책의 논의가 암묵적으로 기대고 있는 전제들을 문제삼을 수도 있다. 물론 설득력 없는 비판을 늘어놓으면 서평자 자신의 얼굴에 검은 먹을 바를 뿐이다. 주례사 같은 서평도 문제지만, 근거 없는 비판으로만 일관한 서평도 문제이다.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의적인 질문을 던져서 그 책의 새로운 면모를 조명할 수도 있다.

최악의 서평 중 하나는 서평을 단순히 자기 이야기하는 발판으로 삼는 경우다. 물론 서평도 결국 자기 이야기를 담긴 담지만, 대상이 된 책을 섬세하고 충실하게 경유해야 한다는 장르의 규칙이 있다. 대상이 된 책 내용을 후다닥 요약한 뒤, 자기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으려거든 다른 글의 형식을 취하는 게 좋다.

심도 있는 서평을 쓰려면, 짧은 길이로는 내용을 다 담을 수 없다. 그런 경우에는 편집자가 아예 작심하고 특정 책 서평에 충분한 지면을 할애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해당 저널의 전면에 나오는 특집 서평(feature book review)은 대개 여느 서평보다 길다. 내가 받아본 특집 서평 중에는 1만6000(영어)단어가 넘는 글도 있었다. 단 한 권의 책에 그 정도 길이의 서평을 쓴다는 것은 각 장마다 심도 있는 분석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서평의 일반적인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는데, 지금부터는 좀 더 협의의 서평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협의의 서평은 비슷해 보이는 주변 장르들과 구별된다.

서평은 독후감과 다르다. 책을 읽은 뒤에 자신이 ‘느끼는’ 바를 쓰면, 그것은 그저 독후감이다. 무엇을 느끼든 그것은 그 사람 소관이다. 나는 그 책을 너무 지루하다고 느꼈지만, 저 사람은 재밌게 느꼈다면 어쩔 것인가. 각자의 인생을 살 뿐이다. 협의의 서평은 그러한 주관적인 영역을 무시하지는 않되, 넘어서는 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서평은, 다른 많은 장르의 글과 마찬가지로, 독백이 아니라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한다.

서평은 추천사와 다르다. 오늘날 추천사는 출판사에서 홍보 목적으로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보다 유명하거나 권위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빌어, 그 책에 합당한 주목을 얻고자 하는 데 추천사의 목적이 있다. 그러니 추천사는 잠재적인 독자로 하여금 해당 책을 읽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책을 칭찬하는 것이지만, 단순한 칭찬만으로 독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너무 칭찬하면, 과장 광고에 속아온 소비자처럼 잠재적 독자는 방어적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추천사를 읽고 책을 사보았다가, 기껏 꿈보다 해몽이 좋네,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평은 출판비평과는 다르다. 출판비평은 출판계 전반의 현황과 흐름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잘 쓸 공산이 크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어떤 학술서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출판비평가가 적임자가 아닐 공산이 크다. 학술지에 실리는 서평의 저자와 독자는 일단 학자들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독자로 상정하므로, 한정된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마음껏 구사한다. 그곳은 합법적으로 엘리트주의(?)와 전문성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학술지에 실리는 서평의 문체는 논문의 문체와 대동소이하다. 전문가들 사이에 정확한 지식을 유통하고 축적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문체가 그곳에 있다. 원점에서 재출발하는 것에 병적인 집착이 있다면 모를까, 자기 학계에 서평과 피드백이 부족하다면, 스스로 활성화하거나 도망가야 한다. 학술 서평이 부족하면, 학적 담론이 누적적으로 발전하기 어렵고, 그런 학계가 제대로 발전할 리 없다.

논문의 문체를 잘 구사하는 학자들이라고 모두 지식 대중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매력적인 문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학문적 전문성을 갖추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학적인 깊이와 매력적인 문체를 모두 추구하는 이들이 환호하는 서평 장르가 있다, 그러한 서평을 다루는 서평지로는 영어권의 경우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나 ‘뉴욕 리뷰 오브 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 등이 있다.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서평지들은 학문적 깊이와 매력적인 문체를 겸비하여 지식층 전반에 호소할 수 있는 글을 싣고자 노력한다.

마틴 스콜세지 ‘50년의 주장’ 다큐도

내용만 좋으면 됐지 문체가 무슨 소용이냐고? 자신의 글이 악보라고 생각한다면, 문체는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자기 글이 연주라고 생각하면 문체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음악 애호가들은 종이 악보보다는 멋지게 연주된 음악을 좋아한다. 학식과 비판과 문체가 어우러져 좋은 글이 쌓이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문예공화국의 면모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서평은 이 세상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 좋은 형식이기도 하다. 사회에 대해 직접 비평하는 일과 차이는, 책을 매개로 비평을 수행하므로 메타(meta)적인 성격이 있다는 점이다. 메타적인 비평을 통해 사회 비평은 보다 입체적이 된다. 이런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의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역사와 영향력을 다룬 ‘50년의 주장’(The 50 Year Argument)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어떤 책을 비평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평의 독자가 꼭 그 비평 대상이 된 책의 저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책의 저자에게는 말조차 걸고 싶지 않아도, 광의의 독자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서 서평을 쓸 수도 있다. 글로 적힌 것은 아마도 인류보다 오래 지속할 것이고, 운이 좋으면(혹은 나쁘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독자도 그 글을 읽을지 모른다. 모든 코멘트와 비평이 그렇듯이, 그 서평은 서평 대상이 된 책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만큼이나 그 서평을 한 사람에 대해 무엇인가 의미심장한 것을 말해준다. 서평은 서평 대상이 된 책뿐 아니라 서평자 자신의 지력, 매력, 멍청함, 편견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좋은 기회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브린모어대학 교수를 지냈다. 영문저서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가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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