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n번방 사건과 '지하대적'…뽑아내고 재 뿌리자

중앙일보

입력 2020.04.03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56)

역병이 창궐해 뭇 사람들이 밖에도 맘대로 못 나가고 괴롭던 와중에 이번엔 ‘야차(夜叉)’가 등장해 안 그래도 어수선한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야차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해친다는 사나운 귀신이다. 텔레그램의 n번방, 박사방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은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추악한 면이 드러났다. 이런 범죄자를 이를 때 흔히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 일에 대해서는 감히 수심(獸心)이라 하기에도 낯부끄럽다. 짐승의 내면을 드러냈다기보다 이것은 ‘짐승만도 못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에서 야차로 칭하는 이들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본능과 욕망 때문에 저지른 악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 세상의 어떤 구조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살펴보는 일이 좀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 서사 전통에서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행을 저지르는 캐릭터로는 대표적으로 ‘수명장자’가 있다. 태초에 아직 인간 세상의 질서가 잡히기 이전 수명장자는 사납고 힘센 말과 소, 개 각 아홉 마리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만행을 저질렀다. 수명장자는 조상을 모시지 않고 부모에게 함부로 하며 길들인 가축을 이용해 사람을 괴롭혔다. 천지왕이 병사를 이끌고 수명장자를 무릎 꿇린 뒤 머리에 쇠테를 씌웠더니 수명장자는 머리가 터질 듯 아프다면서 종에게 도끼로 자기 머리를 깨라고 소리쳤다.

텔레그램의 n번방, 박사방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사건을 통해,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추악한 면이 드러났다. [사진 Pixabay]

텔레그램의 n번방, 박사방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사건을 통해,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추악한 면이 드러났다. [사진 Pixabay]

천지왕은 그런 수명장자가 어이없어 물러갔고, 나중에 천지왕의 아들인 소별왕이 다시 수명장자를 잡아들였다. 수명장자의 신체는 갈가리 찢겨 파리, 모기, 빈대, 벼룩이 되어 세상에 흩뿌려졌다. 이렇게 위아래도 없이 자기 힘만 믿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던 자를 잠재우고 나서야 인간 세상의 질서가 잡힌다. 다만 수명장자는 미물의 형상으로 인간을 여전히 소소하게 괴롭히는 존재로 살아간다.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는 존재를 혼내 주는 이야기로는 ‘지하국대적퇴치설화’라고 유형 분류되는 일군의 이야기가 있다. 지하 땅속 나라에 대적(大賊)이 있고, 이들을 퇴치하는 영웅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 땅속 나라 도둑 괴물은 흔히 아귀 귀신으로 불리기도 하며, 힘이 엄청나게 세고 칼에 찔려도 잘 죽지도 않는다. 인간세계와는 구분되는 곳에 존재하는데 굴속이나 깊은 구멍 아래 땅속에 살아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들은 공통으로 인간 세상의 여성을 잡아가서 부인으로 삼는다.

지하국대적의 이런 속성은 은밀한 곳에서 여성 존재를 유린하는 범죄자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만하다. 이들이 잡아가는 여성이 인간 세상 어느 나라의 세 공주이기도 하고, 부잣집 마나님이기도 한 것은 귀한 신분을 가진 여성이 잡혀감으로써 인간 세상에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성 착취 동영상이나 흔히 음란물로 분류되기도 하는 성관계 영상 속에서 노출되는 여성의 인권은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누구나 세상에 존귀한 생명으로서 존재할 이유와 권리가 있는 법이다. 굳이 누구의 소중한 딸이고 누이이고 어머니라는 점을 강조할 것도 없이, 그냥 인간 그 자체로서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런 데도 땅속 음침한 곳에 숨어 있던 자가 어느 순간 검은 머리를 드러내고 나타나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성착취동영상이나 흔히 음란물로 분류되기도 하는 성관계 영상들 속에서 노출되는 여성들 중 어느 누구도, ‘그래도 되는’ 범주에 속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게 대해도 되는’ 인간이란 세상에 없다. [사진 Pixabay]

성착취동영상이나 흔히 음란물로 분류되기도 하는 성관계 영상들 속에서 노출되는 여성들 중 어느 누구도, ‘그래도 되는’ 범주에 속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게 대해도 되는’ 인간이란 세상에 없다. [사진 Pixabay]

지하대적에게 잡혀간 여성은 철저하게 지하대적의 부속물이 되어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자기 힘으로 그 영역에서 도망쳐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이야기에서도 그렇게 존재를 유린당한 인물이 자신의 힘만으로 악한 존재와 맞서 싸워 이기지는 못한다. 잘 알려진 영웅 서사 몇 가지만 슬쩍 떠올려 보아도 알 일이다. 피해자 자신이 힘을 내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들을 구해주는 용맹한 영웅이나 지혜로운 조력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들이 나타났을 때야 피해 여성도 기지를 발휘해 함께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

옛날에 아귀 귀신이라는 무서운 괴물 도적이 있었다. 아귀 귀신은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 세상을 요란하게 하고 여자들을 함부로 잡아가곤 했다. 어느 날 또 불쑥 나타난 아귀 귀신은 임금의 세 공주를 한꺼번에 데리고 가버렸다. 한 용감한 무사가 나서서 아귀 귀신을 없애고 세 공주를 찾아오겠다고 하자 임금은 그렇게만 해준다면 가장 사랑하는 막내 공주를 무사에게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무사는 부하 셋과 함께 아귀 귀신을 찾아 나섰다. 백발노인의 도움을 받아 아귀 귀신이 사는 곳으로 통하는 구멍 안으로 밧줄을 타고 들어간 무사는 공주들이 잡혀 있는 곳에 잠입해 들어갔다. 공주들은 아귀 귀신에게 술을 먹이며 아내가 되어 주겠다고 하면서 기분을 맞춰 주었다. 그러자 아귀 귀신은 잔뜩 신이 나서 세 공주가 따라주는 술을 그냥 막 받아 마셨고, 그 틈을 타서 공주들이 아귀 귀신에게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무서우냐고 물었더니 아귀 귀신은 자기 옆구리에 나 있는 비늘을 없애버리면 자기를 죽일 수 있을 것이지만, 감히 그렇게 할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며 큰소리를 땅땅 쳤다. 아귀 귀신이 잠든 사이 공주들과 무사는 아귀 귀신의 옆구리에 있는 비늘을 칼로 떼어낸 뒤 아귀 귀신의 목을 잘랐다. 그러자 끊어진 목이 몸에 다시 붙으려고 하였다. 공주들은 잽싸게 몸에 재를 뿌려서 머리가 다시 붙지 못하게 했다. 마침내 아귀 귀신은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는 그 뒤에 무사가 데리고 갔던 부하 셋이 배신하고 세 공주를 차지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계속된다. 공주들을 지상으로 올려보낸 뒤 세 부하의 계략으로 지하 세계에 혼자 남겨졌던 무사는 나중에 탈출에 성공해 세 부하가 세 공주와 결혼식을 올리려던 순간 나타났다. 공주들이 자신들을 구해준 진짜 은인은 무사임을 밝혀 세 부하는 혼쭐이 나고, 무사는 처음 약속대로 막내 공주와 혼인식을 올리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진다.

지상 세계는 여전히 혼탁하다. 인간은 이기적인 목적에 의해 배신과 음해를 일삼는다. 진실을 알아보는 눈과 그것을 세상에 힘주어 외칠 수 있는 힘은 그래서 중요하다. 세 공주는 지상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찾고 났을 때 목소리를 내어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야차(夜叉)는 본래 인도 신화 ‘베다’에 등장하는 신적 존재다. 추악하고 무섭게 생겼으며, 사람을 괴롭히고 함부로 해친다. 그런데 이 야차가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수호신이 된다. 우리 말에는 아주 잔인하거나 악독한 짓을 하는 악당을 흔히 ‘야차 같다’고 표현한다. 이 야차가 불교에서 수호신의 자격까지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께 감화받아 크게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인데, 최근에 문제가 된 그들이 과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지하대적 같은 존재들을 없애기 위해 시도할 ‘비늘 자르기’와 ‘재 뿌리기’에 해당하는 일은 무엇일까. [사진 Pixabay]

지금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지하대적 같은 존재들을 없애기 위해 시도할 ‘비늘 자르기’와 ‘재 뿌리기’에 해당하는 일은 무엇일까. [사진 Pixabay]

그것을 바란다기보다는 지하세계에 숨어 있는 그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일이 우선이다. 지하대적이 주로 노리는 이들이 여성이라는 것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힘없고 약한’이라는 수식어가 지하대적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수식어부터 없애야 지하대적이 생겨나지 않을 수 있다. 그 자체로 존귀한 인간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인식은 지하세계에서나 가능하다. 또한 이미 지하대적의 볼모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 왜 그리 어리석은 행동을 했느냐, 왜 세상에 알리고 저항하지 못했느냐, 스스로 원해 그곳에 간 것 아니냐며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지하대적에게 끌려간 여성은 몸이 묶여 있진 않으나 정신이 묶여 있어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지하대적의 부인이 된다는 것은 지하대적의 완벽한 소유물이 된다는 뜻이지 결혼을 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예’라는 낙인을 찍은 뒤 복종하게 만드는 상황과 똑같다.

지하대적 같은 괴물이 등장할 때 그들에게는 결정적인 약점 하나가 존재한다. 위에 소개한 이야기에서는 옆구리의 비늘인데 일단 그 비늘을 제거해야 하고,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놓겠다고 머리를 베어도 그 머리는 떨어졌다가도 또 와서 들러붙는다. 그 머리가 다시 붙지 않게 하려면 머리 잘린 부위에 재를 뿌려야 한다. 지금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지하대적 같은 존재를 없애기 위해 시도할 ‘비늘 자르기’와 ‘재 뿌리기’에 해당하는 일은 무엇일까.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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