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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드문 ‘판사 교체’ 뒤엔 SNS 45만건 압박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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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n번방 사건’ 피고인 ‘태평양’이모(16)군의 전 재판장 오덕식 부장판사에 대한 트위터 키워드 검색 건수가 나흘간 44만건을 넘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n번방 재판 오덕식 검색 급증 #조국 영장 기각한 판사의 76배 #“성범죄에 솜방망이 처벌해왔다” #청와대 청원 등 교체 압박 심해 #오 판사, 여론에 밀려 재판 포기

중앙일보가 31일 다음소프트의 소셜 매트릭스로 찾은 해당 기간 오 부장판사 트위터 검색량은 44만 7623건이었다. 지난 3월 27일 재판장 교체 청와대 청원이 게시되고 30일 사건 재배당이 결정되기까지 트위터에서 언급된 ‘오덕식’ 키워드의 검색량이다.

지난해 12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권덕진 부장판사의 결정 전후 나흘간 검색량(5873건)의 76배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조 전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구속했던 송경호 부장판사, 조 전 장관 동생 조모씨의 1차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명재권 부장판사의 결정 전후 검색량과 비교해도 각각 38배와 25배 많았다. 청와대 청원 등을 통해 “성범죄와 관련해 솜방망이 처벌을 해왔다”고 오 부장판사를 비판한 이들의 비난 강도와 n번방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얼마나 강했는지 확인해준 수치인 셈이다. 그가 엄청난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오 부장판사는 가수 고(故) 구하라씨를 폭행하고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전 남자친구 최종범(29)씨 등 일부 성범죄 피고인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여성계 등의 비판을 받았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별과 나이, 정치적 성향을 넘어 n번방 사건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드러내는 지표”라고 분석했다.

오 부장판사는 전날 “재판을 맡기에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재배당을 요청한 뒤 이날 연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중앙지법은 사건을 형사22단독 박현숙(여) 판사에게 재배당했다.

판사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본다. 청와대 청원 등 여론의 압박에 밀려 판사가 재판을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이름이 오른 판사가 먼저 소속 법원에 재배당 요청을 한 것도 처음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한 여성 판사는 “판결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판사 개인이 이렇게 비난받는 현상은 우려스럽다”며 “여론에 등 떠밀려 재판부를 교체한 것처럼 비친 건 건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 변호사도 “이런 식으로 재판부가 교체되는 건 사건을 넘겨받은 새 재판부에도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범죄전담재판부 재판장을 맡았던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현재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형량이 가벼운 것은 사실이다. 이젠 법원이 변화해야만 하는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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