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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그림으로 담담하게, 글로 처절하게 만나는 4·3사건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소중 친구 여러분. 9기 정가희 학생기자입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개학이 연기돼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데요. 제가 사는 제주도 공공도서관에서는 3월 11일부터 ‘북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를 해서 책으로 심심함을 달랠 수 있습니다. 북 드라이브 스루는 매주 2회, 화·금요일 오후 6시까지 예약한 책을 수·토요일 차를 타고 수령하는 방식의 서비스예요. 직접 서가를 보면서 책을 고를 수 없으니 읽었던 책이나 인터넷 서점 추천도서를 검색했죠.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고 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가면 마당에 세운 천막에서 마스크를 쓴 사서분들이 도서대출증을 확인한 후 준비해둔 책을 창문을 통해 주십니다. 처음 경험하는 대출 방식이라서 새로웠고 사서분들의 수고에 감사했어요.

학생기자 리포트- 제주 4·3 관련 책 소개

덕분에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4·3추념일을 알리는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약 7년 7개월간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으로 인해 약 2만5000~3만여 명의 주민(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추정)이 희생한 사건입니다. 이를 자세히 알렸던 지난해 소년중앙 4·3 리포트 기사에서 관련 책 제목을 언급했었는데요. 올해는 책을 다시 읽고 소중 독자들에게 자세히 소개하고 싶어 오랫동안 계획해서 4·3 관련 책 5권을 읽고 부지런히 썼죠.

권윤덕 작가의 『나무 도장』은 정가희(왼쪽) 학생기자가 4.3 관련해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사진은 2015년 제주 한라도서관에서 열린 ‘나무 도장’ 북콘서트 때 모습.

권윤덕 작가의 『나무 도장』은 정가희(왼쪽) 학생기자가 4.3 관련해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사진은 2015년 제주 한라도서관에서 열린 ‘나무 도장’ 북콘서트 때 모습.

한라도서관에 가면 제주 출신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따로 있어요. 또 학교에서 4·3 수업 때 추천받기도 했죠. 평소에 봐둔 책이다 보니 5권을 고르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여러분에게 소개할 책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금숙의 『지슬』, 권윤덕의 『나무 도장』, 정란희의 『무명천 할머니』, 제주에 사는 작가 3명이 쓴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입니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

『순이 삼촌』은 금기였던 4·3을 세상에 알린 첫 소설입니다. 이 때문에 현기영 작가는 고문을 당하고 책은 금서가 되기도 했죠. 제주 방언으로 ‘삼촌’은 친근한 이웃을 가리켜요. 4월 3일, 제사를 위해 고향 제주도에 간 주인공은 4·3사건 당시 잔인한 학살 현장에 끌려갔다 군인들의 총격에 까무러쳐 시체 더미에 깔려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결국 죽음을 택한 순이삼촌의 소식을 듣죠. 이를 시작으로 주인공은 어렸을 적 일어난 4·3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가족들과 나눕니다. 주인공과 가족의 대화가 제주 방언으로 쓰여 이 사건이 제주도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읽는 내내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요. 책을 덮고 나서는 한동안 순이삼촌이 겪었던 4·3학살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4·3을 직접 겪고 외상 후 스트레스 극복을 위해 이 책을 쓴 현기영 작가의 4·3 관련 책은 『마지막 테우리』 『아스팔트』 『지상의 숟가락 하나』 등이 있죠.

김금숙 작가의 『지슬』

김금숙 작가의 『지슬』

김금숙 작가의 『지슬』은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을 그래픽노블로 그린 책입니다. 4·3 당시 주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려는 정부군과 서북청년단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었지만 결국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양민들의 이야기죠. 무채색의 그림은 마치 주민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더해주는 것 같아요. 4·3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이 두려웠던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주민들을 위해 4·3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저처럼 4·3의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려운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권윤덕 작가의 『나무 도장』

권윤덕 작가의 『나무 도장』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나무 도장』은 4·3 당시 주민들이 숨어있던 동굴에서 주인공 ‘시리’가 3살 때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에게 듣는 내용입니다. 군인들이 동굴 속에 숨은 사람들을 찾아 들어가는 장면은 숨을 죽이고 봤어요. 동굴 속에는 어린 시리와 시리의 어머니도 있었기 때문이죠.

정란희 작가의 『무명천 할머니』

정란희 작가의 『무명천 할머니』

처음 표지를 보고 책장을 넘길 용기가 나지 않았던 『무명천 할머니』.  4·3사건 당시 경찰의 총에 턱을 맞아 음식과 물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하얀 무명천으로 턱을 가리고 사셨으며 경찰이나 군인을 보면 4·3의 공포가 떠올라 몸을 움츠려야 했던 진아영 할머니의 비극적인 인생을 담은 책입니다. 할머니는 2004년 9월 8일 9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제주시 한림읍 원령리에서 무명천 할머니의 삶터를 볼 수 있어요.

신여랑·오경임·현택훈 작가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신여랑·오경임·현택훈 작가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는 4·3의 시작이었던 관덕정, 분노한 도민들과 총파업, 4월 3일 무장대의 경찰지서 습격사건, 경찰에 의해 불에 타버린 마을 등을 청소년의 시선으로 본 짧은 이야기와 관련 유적지를 통해 설명해 줍니다. 참여한 작가들의 4·3답사기를 포함,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인 정보와 객관적 사실을 담은 책입니다.

매년 4월 3일에는 제주평화공원에서 '4·3희생자추념식'이 열려요. 2018년 제70주년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죠. 올해 추념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일반인 출입이 제한됩니다. 저는 초3 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4·3수업을 할 때마다 ‘왜 학교에서 어린 우리들에게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려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4·3 70주년 추념행사에 참석하고, 가족과 4·3유적지와 기념관을 방문해보니 4·3이 무섭고 끔찍하지만 외면하면 안 되는 역사라는 것을 알았죠. 앞으로 4·3이 제주도만의 아픈 역사가 아닌, 전 국민이 아는 우리나라 역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4월 3일 오전 10시, 제주도민들은 사이렌 소리에 맞춰 묵념합니다. 전국의 소중 독자들도 4월 3일 제주 4·3 희생자들을 추념해 주세요.
글=정가희(제주 아라초 6) 학생기자, 정리=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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