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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허 시대, 늘 시야 확보 ‘침팬지의 눈’을 가져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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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동물원에 있는 침팬지들은 대체로 벽을 등지고 앉는다. 당연한 거 같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원래 녀석들이 사는 열대 우림의 숲은 울창해 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다. 시야가 제한되니 무언가가 가까이 다가와도 볼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한다. 이런 성향이 유전자에 깊이 스며들어 동물원에서 태어나는 녀석들도 그러는 것이다.

동물원서도 항상 벽 등지고 앉아 #언제 어디서 무슨 일 생길지 대비 #양자역학 속성과 일치하는 태도 #변화무쌍한 세상 고전역학 안 통해 #호기심 가지고 낯선 곳 탐험해야

일러스트 = 전유리 yuri.jeon1@joins.com

일러스트 = 전유리 yuri.jeon1@joins.com

#녀석들의 이런 삶의 태도는 요즘 부각되고 있는 양자역학의 속성과 일치한다. 양자역학에서도 세상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세상이란 우주 만물을 이루는 원자들의 세상을 말하는데,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튼에게서 시작한 고전역학과는 완전히 다르다.

고전역학에서 세상의 변화는 연속적이다. 어떤 물체가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를 알면 5분 후 그 물체가 어디에 있을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F=MA’라는 공식으로 말이다. 물체가 아닌 상황을 대입해도 비슷하다. 이전 상황을 알면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거의 알 수 있다. 고전역학이 거시적이라면 양자역학은 미시적이다. 모기 속눈썹 하나가 100만개가 넘는 원자로 이루어질 정도로 작은 세상이지만 여기에도 우주적 구조가 존재한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 전자가 원자핵을 돈다. 하나의 원자가 서울시만 하다면, 원자핵은 농구공만 하고 전자는 모래알 만하다.

그런데 전자의 움직임이 놀랍다. 무엇보다 연속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원자핵에서 10km 떨어진 전자가 100km 떨어진 곳으로 순간 이동할 때 전자는 20km나 30km 지점을 지나지 않고,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그냥 “뛰어 간다”(닐스 보어). 흔히 말하는 퀀텀 점프(quantum jump: 양자 도약)다. 선형(線形)이 아닐 뿐 아니라 움직임도 예측할 수 없다. 언제 어디로 움직일지 모른다. 예상할 수는 있지만 움직이는 시간과 방향을 알 수 없다. 여기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여기 있을 수도 있고 저기 있을 수도 있으며 동시에 있을 수도 있다. 알 수 있는 건 확률이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주사위를 던지면 어떤 수가 나올 확률이 대체로 일정한 것처럼 그런 확률로 움직인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어느 곳의 작은 움직임이 전혀 다른 곳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역학에 기반한 복잡계 방식으로 말하자면 사소한 것이라도 반복되고 축적되면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게 된다.

워낙 난해하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이런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생겨난 코로나19 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찍이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했던 비유 그대로다. “도쿄에 있는 나비 날개가 펄럭거리는 것이 텍사스의 회오리바람이나 (때로는 뉴욕의 폭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몇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도 마찬가지였다. 가수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 한국의 말춤을 세계화시켰다.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한 직원의 행동이 회사를 흔들고, 회의에서의 말 한마디가 일파만파가 되는 일이 점점 흔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전역학적인 세상을 살아왔다. 변화가 연속적이라고 여겼기에 내가 5라는 노력을 1년간 하면 10이라는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의 희망도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이제 세상은 확률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살아가는 환경이 급격하게 바뀔 때 생명체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떠나거나 적응하거나. 떠날 수 없다면 적응해야 한다. 적응하는 첫 번째 조건은 바뀐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다. 갈수록 불확실해져가는 세상을 수긍하고 인정해야 적합한 대응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럴 리 없다’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변화를 받아들일 때 제대로 변화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고전역학적 희망을 버리는 것이다. ‘내가 이 정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선형적인 희망을 버려야 한다. 좋은 일도 올 수 있지만 좋지 않은 일도 언제든 어디서든 올 수 있고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 불행과 행복이 순간적으로 교차될 수 있다. 고전역학적 세상에서 작은 노력은 별 소용이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불행이 일파만파가 되듯, 행복 또한 어느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 돌아온 가수 양준일이 보여주듯 작고 꾸준한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 같은 거대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확신보다는 호기심이 필요하다. 갈수록 세상은 변화무쌍해질 것이다. 과거의 익숙한 것을 확신하다 세파에 밀리기보다 낯설고 이상한 세상 속을 탐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니체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호기심을 가지면 그것이 내 것이 된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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