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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구경’하는 늑대처럼, 바깥서 살피는 제3의 눈 필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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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일러스트 = 전유리 jeon.yuri1@joins.com

일러스트 = 전유리 jeon.yuri1@joins.com

북미 인디언 중 하나인 오네이다 부족이 새로운 거주지로 이동하기로 했을 때다. 아주 괜찮은 장소를 찾기는 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먼저 자리를 잡은 ‘주인’이 있었다. 늑대들이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이 호랑이나 곰을 신성시했듯 이들에게는 늑대가 그런 대상이었는데 그곳을 포기하자니 아까웠고, 선택하자니 늑대들과 부딪쳐야 했다. 고심 끝에 그들이 찾은 해결책은 늑대와 함께 살아가기였다.

넘버 2가 언덕 위서 상황 파악 지원 #늑대 입장 토론하는 인디언 부족도 #과몰입하면 전투 이겨도 전쟁 패배 #메르스 때 진화 급급, 혈청 못 남겨

#당연히 늑대에게도, 자신들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회의를 할 때 항상 “누가 늑대를 대신해 말할 것인가?”라고 물어, 모든 사안을 늑대 입장에서 말할 사람을 정한 후 회의를 시작했다. 자신들도 모르게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 있었기에, 자신들의 시야 밖, 그러니까 늑대의 관점에서 사안을 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함이었다.

인디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는 늑대가 많이 나온다. 유럽인이 몰려가기 전에는 늑대가 흔했기도 하고, 서로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늑대에게서 생존의 지혜를 배우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냥을 할 때 늑대들은 짜임새 있는 공격을 펼친다. 프로축구에 공격과 수비가 있듯 이들도 마찬가지다. 몰이꾼이나 추격조 같은 각자의 역할이 따로 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첩에서 사용한 학익진 비슷한 전략을 흔히 구사하는데, 일렬로 사냥감을 향해 달리다가 부채꼴로 좌악 퍼져 사냥감을 둘러싸는 것이다. 그런 다음, 대장의 신호가 떨어지면 일제히 공격한다.

이때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두 마리 정도의 늑대가 사냥에 참여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 위로 가는 것이다. 가서 동료들이 사냥하는 장면을 ‘구경’한다. 주로 넘버2와 넘버3일 때가 많은데, 슬쩍 빠졌다가 나중에 나타나는 무임승차를 하려는 걸까?

#이유는 곧 알 수 있다. 사냥이 시작되면 언제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늑대들의 조직력이 좋긴 하지만 사냥감인 말코손바닥사슴이나 아메리카 들소인 바이슨의 공격력도 만만치 않다. 바람같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되려 역공을 가할 수도 있다.

워낙 덩치가 있는 녀석들이라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럴 때 이 두 ‘구경꾼’이 나선다. 언덕 위에 있으니 전체 상황을 볼 수 있어서 언제 어디로 어떤 지원을 해야 할지 알 수 있기에 필요한 곳, 필요한 시간에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다. 인류 최고의 정복자인 몽골의 칭기즈칸도 어렸을 적 본 늑대의 전략을 실제 전투에 즐겨 사용했다는 걸 보면 단순한 전설은 아닌 듯하다.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가 아니다. 1993년 여섯 명의 MIT 대학생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나타났다. 다섯 명은 각자 다른 자리에 앉아 블랙잭을 시작했고 한 명은 이들을 볼 수 있는 곳에 앉았다. 그리고 늑대처럼 작전을 개시했다. 블랙잭을 하는 다섯 명이 작게 베팅하며 ‘뜨거운(Hot)’ 기회가 온다 싶을 때 신호를 보내면 지켜보는 학생이 참여해 크게 베팅했다. 그렇게 300만 달러(약 36억원)를 손에 쥐었다. 라스베이거스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실화다. 늑대 전략이 여전히 통한다는 얘기다.

중요한 일일수록 집중력이 필요하기에 몰입하게 된다. 반드시 성공시키려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집중력이 높아질수록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 또한 커진다. 시야가 좁아지다 보니 시야 밖의 상황 변화를 놓칠 수 있다.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것처럼 말이다. 부분에 몰두하다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듯 몰두는 성공 요인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매몰시키는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발등의 불을 끌 때도 마찬가지다. 당장 눈앞의 불을 끄는 게 중요하지만, 여기에 몰두하다 보면 더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 불 끄기에 급급하다 제대로 된 논문이나 환자의 폐 조직 확보 같은 걸 전부 놓친 것처럼 말이다. 다 화장시키는 바람에 제대로 된 혈청도 없다고 한다.

심리학자 존 터너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스타를 좋아해 모인 팬클럽은 대화를 나눌수록 그 스타를 더 좋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가 잘 생겼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만나면 곧 그가 가장 잘 생겼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서로 좋은 점만 말하게 되고, 그것만 보는 쏠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극단주의자들이 모이면 그런 성향이 더 강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를 풀 때, 좀 더 넓은 시야로 좀 더 합리적인 대응을 하려면 인디언 부족이나 늑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황 바깥에서 상황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어떤 일로 고민할 때 친한 사람보다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이 더 도움이 되듯,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친한 사람은 생각도 비슷하기에 생각만큼 도움이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혹시 발등의 불을 끄고 있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없을까? 이 상황 밖에서 보면 무엇이 보일까?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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