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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이용하는 제비꽃처럼…‘하게끔’ 이끄는 리더십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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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호 15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무심히 보아 넘기기 쉽지만 잘 보면 독특한 꽃들이 있다. 목련꽃도 그렇다. 봄 꽃 치고는 유난히 희고 큰 꽃을 잎보다 먼저 피워내는 것도 그렇지만 꽃이 위를 향하고 있는 게 특이하다. 다른 꽃들은 입구가 옆이나 아래로 향하고 있는데 말이다. 꽃이 더 커 보이긴 하지만 비가 오거나 하면 좋지 않을 텐데 왜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있을까?

단백질 든 씨앗으로 개미들 유인 #씨는 버리게해 곳곳에 번식시켜 #조직 리더도 의식의 전환 필요 #‘하라’ 지시보다 상황 만들어가야

# 이상한 걸로 따지면,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제비꽃도 마찬가지다. 알다시피 도시는 식물들에겐 무척 척박하다. 아스팔트와 건물,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가득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 하지만 제비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 자란다. 조금이라도 발붙일 곳이 있으면 뿌리를 내려 소담스런 꽃을 피운다. 녀석들의 이런 놀라운 생존력에는 단순히 억척스러운 것 이상의 비결이 있다.

제비꽃은 씨앗을 만들 때 한쪽에 엘라이오좀이라고 하는 기름기 많고 단백질 풍부한 작은 덩어리를 만든다. 날마다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다니는 개미들이 이걸 놓칠 리 없다. 보는 즉시 집으로 가져가 맛있는 덩어리를 떼낸 후, 씨앗은 집 근처 쓰레기장에 버린다(개미들이 쓰레기장을 만든다고?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맛있는 것만 쏙 빼먹고 버리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싶지만 괘씸해 할 일이 절대 아니다. 바라던 바니까! 아니 이게 바라던 거라고? 그렇다.

알다시피 제비꽃은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애써 만든 씨앗을 멀리 보내야 ‘어미’와 ‘새싹’ 모두에게 좋은데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주변에 많은 개미를 활용한다. 개미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어 씨앗을 갖고 가게 하는 것이다. 개미들이 갖고 간 씨앗을 쓰레기장에 버리는 것도 물론 대찬성이다. 다른 곳보다 영양분이 많은 곳이라 싹 트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멀리 이동시키면서도 좋은 곳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제비꽃은 이렇게 해결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부탁하지도 않고 억지로 시키지도 않는다. 개미들이 알아서 하게끔 만든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자기 이익을 위한 행동이 제비꽃의 목적에도 맞게끔 상황을 ‘설계’한다. 그래서 제비꽃이 줄줄이 난 곳을 자세히 보면 개미들이 많고, 근처에 개미집이 있다.

목련꽃이 꽃 입구를 위로 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목련꽃은 수분(짝짓기)을 풍뎅이에게 맡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풍뎅이의 비행 실력이 나비나 벌처럼 세련되지 못하다. 생긴 대로 행동한다는 말처럼 녀석들은 거칠고 투박한 생김새답게 비행도 그렇게 한다. 마치 술 한 잔 마시고 하는 취권처럼 여기저기 툭툭 부딪치듯 날아다닌다. 당연히 입구가 옆으로 나거나 아래로 향한 꽃은 착륙지로선 난코스. 목련꽃은 파트너의 편의를 위해 꽃 입구를 위로 향한다. 고객을 만족시키는 ‘설계’로 자신의 목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식물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이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설계해 생존력을 높인다. 옥수수도 그렇다. 옥수수에겐 박각시나방 애벌레가 골칫거리다. 소중한 잎을 마구 먹어버리는 통에 가만 놔두면 남아나는 잎이 없을 정도다. 이럴 때 옥수수는 묘한 향기를 만들어 퍼뜨린다.

향기를 내는 목적은 하나, 기생벌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아도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 녀석들까지 불러들여 뭘 하겠다는 걸까?

다행히 옥수수가 뿜는 향기는 기생벌들에게 희소식으로 전달된다. ‘여기 너희들이 찾는 박각시나방 애벌레가 있으니 빨리 오라’는 메시지인 까닭이다. 마침 이 애벌레를 찾아다니고 있는 기생벌들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반갑게 몰려들어 이 애벌레들의 몸에 알을 낳는다. 좀 끔찍하긴 하지만 알에서 나온 자신의 새끼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어쨌든 옥수수는 이렇게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원리로 천적을 불러들여 문제를 해결한다. ‘하라’고 하지 않는다. ‘하게끔’ 한다.

세상의 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환경의 변화가 클 땐 생존법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자연의 이치를 감안하면,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에도 새로운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예로 든 것처럼 ‘하라’고 하는 지시보다 ‘하게끔’ 하는 상황 설계 능력이 필요해지고 있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기업들이 일하는 환경을 왜 ‘인간공학적’으로 만들려고 애를 쓸까? ‘하게끔’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하듯 구성원들도 변한다. 아니 변했다. 구성원들은 이제 예전처럼 뭘 모르는, 그래서 계도하고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다. 전문가들은 지시하고 통제하는 관리보다 조절과 조정을 통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필요한 지원을 해주기를 원한다.

목련꽃과 제비꽃, 옥수수가 하는 것처럼 일을 잘 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주는 그런 리더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식물’이라는 단어를 워낙 부정적으로 쓰고 있기에(식물 국회) ‘식물 같은 리더가 되자’고 할 수는 없지만, 뇌도 없는 그들이 개발해낸 절묘한 방법에서 한 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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