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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26만명 신상 공개하라”…여성들 분노 물결

중앙일보

입력

19일 텔레그램 석착취 ‘n번방’ 사건의 주요 피의자 조 모씨(별명 박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심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텔레그램 석착취 ‘n번방’ 사건의 주요 피의자 조 모씨(별명 박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심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램 대화방을 이용한 성 착취 사건을 두고서 여성들을 중심으로 주도자는 물론 관련자들을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주범과 회원들에 대한 신상정보 등을 공개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에 동의를 표한 사람이 22일 오후 9시 현재 400만명을 넘어섰다.

“수법 악랄, 70명 이상 피해”

2018년 12월부터 벌어진 텔레그램 방 성 착취 사건에 대해 성토 목소리가 급격히 커진 건 18일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다. 피해자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70명 이상에 달하는 데다 수법이 악랄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박사’ 조모(26·구속)씨 등은 여성들을 협박·회유해 성착취물(음란 사진·동영상)을 찍게 하고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대화방에 참여한 사람들은 조씨 등에게 입장료를 지불했다. 조씨 등의 지시를 받고 피해 여성을 찾아가 성폭력을 저지르기도 했다.

경찰은 조씨가 운영한 ‘박사방’ 외에 ‘n번방’ 회원들도 추적해 엄벌한다는 방침이다. 여성 단체들은 이들 대화방의 총회원 수가 26만명(중복 인원 포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텔레그램 성범죄 124명 검거, 18명 구속 

이와 관련, 경찰은 텔레그램 단체방을 이용해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이용자 124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9월부터 ‘n번방’으로 대표되는 텔레그램 성 착취 대화방에 대한 수사를 벌인 결과 이달 20일까지 총 124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박사’로 이름을 알린 조씨를 포함해 총 18명을 구속했다.

특히 경찰은 지난달 10일부터 경찰청·지방청에 설치된 24개 사이버테러수사팀을 동원해 텔레그램과 다크웹, 음란사이트, 웹하드 등 사이버 성폭력 4대 유통망에 대해 집중단속에 나서 한 달간 58명을 검거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제공조와 아이피 주소 추적 등을 통해 아동·청소년 등이 등장하는 성 착취물을 유통하는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자와 제작자, 유포자, 소지자 등 다수를 검거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n번방 운영자 ‘갓갓’도 수사 중이다. 갓갓은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하는 범죄를 처음 만든 인물로 지목됐다. 경찰 관계자는 “박사방과 n번방 등이 나중에는 함께 통칭해 n번방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번 주 ‘박사’ 신상공개 여부 결정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22일 오후 8시40분쯤 200만건의 동의를 돌파했다. 단일 청원으로는 역대 최대 동의다.
경찰은 24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조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보통 피의자의 신상정보는 무죄 추정의 원칙 등에 따라 비공개하지만, 범행 수법이 잔인하거나 중대한 피해 발생 등의 요건을 만족하면 공개할 수 있다. 만일 조씨 신상정보가 공개되면 성범죄 피의자 중 첫 사례로 기록된다.

20일에는 조씨 등뿐만 아니라 n번방 회원들의 신상정보도 공개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등 관련 청원 4개가 올라와 22일 오후까지 200만명 넘는 동의를 동의를 받았다. 여성 연예인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가수 겸 배우 혜리는 2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분노를 넘어 공포스럽다”며 “부디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배우 손수현, 가수 백예린, 탤런트 하연수 등이 목소리를 보탰다.

22일 국회에서 21대 총선 정의당 여성 후보들이 n번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22일 국회에서 21대 총선 정의당 여성 후보들이 n번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여성 수사관 확충, 함정수사 허용해야”

유사 범죄가 반복하지 않기 위한 근본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호소도 잇따른다. 시민단체 ‘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일반 성폭력의 범주로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사이버 성범죄 수사팀의 90%가량을 여성 수사관으로 구성하라는 촉구도 나왔다. 남성 수사관의 2차 가해를 방지할 목적이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함정 수사를 허용하라고 했다.

검찰 내에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도 정부에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n번방 사건은 너무나 당연히 예견된 범죄였다”며 “n번방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은 정말 제대로 된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대 총선 정의당 여성 후보들은 22일 오후 국회에서 n번방 가해자들에 대한 무관용 처벌과 관련 법 정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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