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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다행스러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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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느새 ‘외환위기’의 공포가 스멀거리고 있다. 최근 증시 폭락의 여파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285.70원까지 치솟으면서다. 환율은 어제 하루에만 40원, 최근 한 달 사이 130원 넘게 폭등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변동이다. 이렇게 가파른 속도로 환율이 치솟으면 한국은행에 아무리 달러를 많이 쌓아놓아도 안심하기 어렵다.

미국식 돈 풀기로는 퍼펙트스톰 못 막아 #최후의 안전판 ‘외환 방패막’ 만전 기해야

1997년 외환위기 때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했지만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로 들어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구제금융 대가로 구조조정의 한파가 몰아치면서 대기업과 시중은행이 줄줄이 쓰러지고 실업자 200만여 명이 쏟아졌다.

지금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런 비상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코스피지수는 2009년 수준인 1457.64로 폭락하고도 아직 바닥을 알 수 없는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경제 충격이 실물과 금융을 동시에 타격하면서 세계 경제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0.4%로 낮출 만큼 비관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도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첫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50조원 규모의 특별 금융조치를 내놓고 대출 연장, 보증, 이자 유예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고사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살리기로 했다. 그제 문 대통령의 말처럼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닌 만큼 불가피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전 국민에게 현금 1000달러를 직접 뿌려서라도 패닉을 막아야 한다고 나설 정도의 미증유 비상 경제 시국이다.

한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세계 경제가 패닉에 빠져들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전자산 확보에 나서면서 한국은 마치 투매의 타깃이라도 된 듯 증권·외환시장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3일까지 2주간 한국 증시에서 총 58억1400만 달러(약 7조원)를 순매도했다. 더 나아가 매도한 주식 대금의 달러화 환전이 본격화하면 외환시장의 불안은 커지게 된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019억 달러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두 배에 달한다. 6개월치 이상의 수입 결제 대금이어서 당장 위험하지는 않지만 안심하기도 어려운 규모다. 지금처럼 환율이 치솟으면 순식간에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출 길이 막히면서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화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위험이 증폭하면서 국가 신용 위험도를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12월보다 두 배나 높아졌다.

다행히 어제 한·미는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모처럼 나온 신속한 대처는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시장의 공포가 가라앉지 않는 한 달러 수요는 계속 커지면서 불안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돈 풀기로 대응할 수 있지만 한국은 외환이 무너지면 아무리 돈을 풀어도 퍼펙트 스톰을 막지 못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지금은 준전시 상태라서 (재난기본소득 같은) 돈 풀기로는 해결이 어렵다”고 했다. 앞으로 달러 유동성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함께 각국 중앙은행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긴밀히 공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