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내가 누군지 알아?" 그를 폭발하게 만드는 한마디

중앙일보

입력 2020.03.18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32)

요즘은 시나리오 작가모임을 하며 글이 움직이는 공부를 한다. 해보고 싶은 글쓰기였지만 나이가 드니 쑥스러운데 수업을 주관하던 하원준 감독의 격려가 우리 중년들에게 큰 용기와 꿈을 실현할 사명감(?) 같은 것을 주었다. 젊은 시절엔 동적인 활동을 해야 할 시간이고 지금이 시나리오 쓰기에 참 좋은 나이라고 추켜 주었다. 인생을 살아온 연륜과 아픈 시간이 있어야 시나리오가 맛있고 깊은 울림이 있다며.

모든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고 하듯이 이웃의 삶과 함께 모든 것이 소재가 된다. 글을 쓰고 함께 작품을 논하다 보면 재밌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자서전 쓰기와 함께 노후의 시간 활용에 권하고 싶다.

살아온 인생살이, 이런저런 사건이 지나고 보니 모두 영화 감이다. 발버둥 치고 살았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시민으로 소신을 가지고 살아온 남편의 인생 이야기를 써본다. [사진 pexels]

살아온 인생살이, 이런저런 사건이 지나고 보니 모두 영화 감이다. 발버둥 치고 살았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시민으로 소신을 가지고 살아온 남편의 인생 이야기를 써본다. [사진 pexels]

지난번 남편의 폭력을 미화하는 글을 올렸다가 험한 꼬리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그 글을 쓰기 바로 전에 숙제로 본 ‘브래이브원‘이란 영화와 TV 드라마인 ‘이태원 클라쓰’에서 주인공이 죽어가며 말한 ’소신 있게‘란 말에 남편의 음성과 주먹이 클로즈업되었다. 폭력을 미화한 글이라 모두 정신병자 취급을 하지만, 말 그대로 소신은 남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는 일이다. 나이 드니 소신이 고집이랑 비슷하지만, 내가 쓰는 글은 나의 소신이 들어있는 이야기다.

어느 철학관에선 불같은 성격의 남편에게 ‘당신은 한여름의 화롯불이라 어떤 행동을 할 땐 한 번이라도 숨을 고르고 행동해야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며 조곤조곤하게 예를 들어가며 주의를 주었다. 타고난 성격과 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것은 본인도 늘 말했지만,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의 사건이 있거나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안고 가는 게 성격인 것 같다.

지난날, 가난으로 무시당하며 살아온 남편은 그 상처를 분노로 다스렸다. 가난한 어린 시절 쌀을 얻으러 갔을 때, 침을 뱉으며 모멸감을 준 부잣집 동갑내기 자식 이야기를 수십 번이나 했다. 가장 싫어하는 말은 ‘내가 누군지 알아?’였다. 그 말이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먹이 올라갔다. 지인이나 이웃이 당하는 꼴도 못 보고 앞장서서 설쳤다.

어느 날의 사건도 그랬다. 집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이웃이 술값도 못 받고 젊은 청년들에게 폭행당할 때 남편이 끼어들어 말렸다. 폭행하던 자들이(2인) 벌렁 넘어지며 남편에게 죄를 덮어씌웠다. 경찰이 말하길 다음부터는 직접 끼어들지 말고 신고만 하라고 했다. 흥분한 상태라 “사람이 죽어도 신고만 하라고?”라며 경찰과도 싸울 뻔했다. 상대방이 진단서를 끊어 고소했다. (진단서가 나올 만큼은 아니었는데….) 지켜본 내가 증인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폭행당한 사람이 서야 유리하다고 했다. 재판장에서 상처 입은 포장마차 주인을 증인으로 불렀는데 나오지 않았다. 벌금을 왕창 물었지만 재판장의 소신 있는 판결로 벌금은 세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되고 마무리되었다. 법원 문을 나서면서 다시 전쟁이 붙고, 정말 영화 같은 시간이었다.

가난으로 무시당하며 살아온 남편은 그 상처를 분노로 다스렸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이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먹이 올라갔다. 지인이나 이웃이 당하는 꼴도 못 보고 앞장서서 설쳤다. [연합뉴스]

가난으로 무시당하며 살아온 남편은 그 상처를 분노로 다스렸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이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먹이 올라갔다. 지인이나 이웃이 당하는 꼴도 못 보고 앞장서서 설쳤다. [연합뉴스]

남편의 행동이 급해도 그럴 땐 괜찮은 남자 같았다. 훗날 포장마차 주인은 수박 한 덩어리를 사 들고 와서 오래 울다가 갔다. 그날은 수박 한 덩이와 벌금을 퉁 쳐도 아깝지 않은 기분이었다.

요즘 양익준 감독의 영화를 찾아서 본다. 독립영화가 성공하고 영화제에 참석한 어머니가 얼굴이 빨개져서 웃는 얼굴로 등짝을 후려치며 말씀하셨단다. “야, 이 상놈의 새끼. 이런 걸 다 보여주면 어떻게 하냐. 하하”

우리 시대엔 힘들고 지친 아버지들의 폭력이 잦았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란 이름 때문에 가슴 속 응어리를 꾹꾹 눌러 한을 안고 살았다. 내 마음속 상처와 아픔을 시나리오를 쓰며 화해한 그 감독이 존경스럽고 멋지다.

살아온 인생살이, 이런저런 사건이 지나고 보니 모두 영화 감이다. 발버둥 치고 살았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시민으로 소신을 가지고 살아온 남편의 인생 이야기를 써본다. 유명 작가가 아니니 영화관에는 절대 걸리지 않겠지만, 남편의 인생을 이해해보는 지금 이 시간이 참 좋다. 소개한 감독처럼 분노와 한을 사람에게 폭발하면 추하지만 다른 에너지로 전환하면 한 편의 영화도 되고 글이 된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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