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봄은 또 온다, 첫 꽃봉오리 빼앗긴 나무에게 속삭이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31)

마당엔 꽃봉오리가 터질 듯 물이 올랐는데 시국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격이다. 세상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야단법석이지만 철부지 아이들도 아파트에 갇혀 있으니 그 또한 전쟁이다. 겨울방학부터 이어진 휴일이 재난으로 봄방학까지 이어지더니 초등학교 개학도 사상 초유의 사태로 3월 말에 한다 하고, 1학년 입학으로 설레던 둘째 녀석도 설렘과 흥분은 사라지고 지금 시간이 몹시 지루해 보인다. 가만히 있는 건 어른도 힘든데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하니 생지옥을 만들어 낸다.

조랑말 같이 뛰는 나이인지라 아파트가 흔들릴 만큼 뛰어다니니 민감한 이웃들을 위해 딸은 아이 셋을 끌고 마당 있는 시골집 친가에서 일주일, 외가에서 일주일 다시 시골집으로 유랑민 같이 떠돈다. 그나마 피난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아침에 헤어졌다가 만나면 이산가족 만나듯 하던 아이들이 종일 붙어있으니 자주 투덕거린다. 세 녀석 중 막내가 특히 눈에 보인다. 어리다고 허투루 볼일이 아니다. 첫째는 여자애라 남자 동생들에게 치여 아예 자기 몫도 동생에게 나눠 주고 그들을 아우르는데, 둘째는 형이라고 자신의 권역 침범을 허락 안 한다. 그 틈에 눈치껏 기회를 엿보던 셋째의 민첩한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조랑말 같이 뛰는 나이인지라 아파트가 흔들릴 만큼 뛰어다니니 민감한 이웃들을 위해 딸은 아이 셋을 끌고 마당 있는 시골집 친가에서 일주일, 외가에서 일주일 다시 시골집으로 유랑민 같이 떠돈다. [사진 Pixabay]

조랑말 같이 뛰는 나이인지라 아파트가 흔들릴 만큼 뛰어다니니 민감한 이웃들을 위해 딸은 아이 셋을 끌고 마당 있는 시골집 친가에서 일주일, 외가에서 일주일 다시 시골집으로 유랑민 같이 떠돈다. [사진 Pixabay]

일단 형의 것이건 누나 것이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물건이 누구의 것도 아닌 상태가 되면 잽싸게 낚아 끌어안는다. 뒤늦게 서로 쟁탈전이 벌어지는데 “내꺼야”라며 발랑 뒤집힌 채 형에게 쥐어박히고 발로 차이면서도 안 뺏긴다. 입술을 앙 깨물고 악착같이 잡고 늘어지는 아이를 보며 셋째로 태어나서 살아가야 할 행동수칙이 이미 다섯 살 녀석의 머리에 입력된 듯하다. 문득 우리 시대의 오 남매, 십 남매의 푸념이 들려오는 듯하다.

잠시 뉴스에 몰두하다가 아이 셋이 다 없어져서 달려나가니 위험한 하천 둑을 기어 내려가 고기를 잡는다고 그물망을 휘저으며 설친다. 콧물이 흐르는 셋째도 따라 들어가 그물망을 낚아채기 위해 매의 눈으로 그것만 주시하고 있다. 악착같이 매달려 성공한다는 것은 여기저기 욕심이 많으면 이룰 수 없다. 셋째 녀석의 하는 짓을 보노라니 딱 한 가지에 악착같이 집중하면 못 이룰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친정엄마라도 눈치가 보이는지, 위로 두 녀석만 남겨두고 아파트로 간 딸이 며칠이 지나 전화를 한다. 하도 뛰어서 방방이라고 별명이 붙은 셋째도 혼자 노는 건 심심하다. 며칠을 누워 뒹굴뒹굴하다가 잠만 잔단다. 이곳에 남은 두 녀석도 조용하긴 마찬가지다. 귀찮게 하는 동생이 없으니 마음 놓고 고기도 잡고 놀라고 하니 재미가 없단다. 종일 텔레비전을 보며 무기력하게 뒹굴뒹굴한다. 미꾸라지 사는 곳에 메기가 휘젓듯이 셋째 녀석은 형들에게 메기가 되어 있었다. 삶이란 흐르는 물과 같아 환경에 따라 독해지고 유해지는, 엉덩이에 불붙은 로켓이 되었다가 나무늘보같이 되었다가 한다. 두 녀석을 움직이게 하려고 멍멍이 목줄을 풀어놓았더니 다시 토끼같이 뛰어다닌다.

어느새 나무마다 물이 올라 꽃망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있다. 며칠 전 셋째는 키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잡고 터질 듯한 꽃망울을 다 따서 나에게 선심 쓰듯 주었다. 작년에 심어 첫 봉오리를 단 나무다. 셋째 녀석 키 높이의 묘목인데 겨우내 힘들게 피운 꽃봉오리를 눈 깜작할 새에 허무하게 다 잃었다. 이 나무도 내 마음같이 스트레스가 심하겠지. 순식간에 일어난 지금의 시국만큼이나 어수선하지만, 꽃이 피지 않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까 내년엔 더 찬란한 꽃을 피울 것이다. 올해는 특별히 이나무를 관심을 가지고 살펴줘야겠다. 바이러스 때문에 아이들은 추억거리가 쌓이고 부모는 스트레스만 쌓여간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