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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나는 비건이야” 스스로 가두는 프레임을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 비건라이프(23)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호안 미로 미술관에서 오노 요코의 작품을 만났다. ‘페인팅 투 시 더 스카이즈(Painting to See the Skies’라는 작품이다. 활발한 설치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논의 연인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강하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호안 미로 미술관에서 오노 요코의 작품을 만났다. ‘페인팅 투 시 더 스카이즈(Painting to See the Skies’라는 작품이다. 활발한 설치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논의 연인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강하라]

그의 작품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동그랗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의 작품처럼 정치·사회·관습의 틀을 통해 바라보도록 만들어졌다. 둥근 우물 속 개구리는 하늘을 동그랗게 볼 것이다. 우물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더 커다란 우물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식이라는 것은 세상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틀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프레임이라고 하기도 하고 패러다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떨까? 오랜 시간 당연하게 여기던 지식의 일부가 조작된 것이라면 어떨까?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다른 틀을 통해 보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믿고 있는 사실이 실제로는 진실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순간 우리는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사람은 건강·환경·동물·종교 등 여러 이유로 먹는 것에 대한 틀을 달리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틀을 놓고 보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프레임에 생각을 가둔다. 많은 사람이 채식인, 채식하지 않는 사람, 비건, 육식주의자 등의 타이틀 안에 자신을 가두고 본질적인 것을 놓치곤 한다. 채식이냐 아니냐 육식이냐 아니냐를 구분해 프레임을 만들기보다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폭넓은 방향성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조선 시대 가장 오랫동안 정승의 자리에서 어른 역할을 했던 황희 선생의 유명한 일화를 떠올려본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의견을 황희에게 말하자 황희는 “네 말이 맞다”, “네 말도 맞다”라며 두 사람 모두 맞는 말이라고 했다. 황희가 보는 시각과 두 사람이 각각 보는 시각은 달랐기에 모두가 맞는 말이다. 보는 사람의 인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건강이라는 틀에서 채식과 육식의 비율을 9 대 1로 생각할 수도 있다. 환경적 입장에서는 7 대 1이나 5 대 1만 되어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동물 윤리적 입장에서는 10 대 0을 주장할 수도 있다. 모두 인식의 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점진적으로는 현재의 육식 중심에서 채소의 비중을 늘리는 식습관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고 있다.

채식하는 사람 사이에서도 어떤 채식을 하느냐에 따라 서로를 구분 짓는다. 큰 범주에서 지속할 수 있으면서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채식을 하고 있음에도 완전한 채식을 하는 비건만이 해답이라는 시선도 있다. 비건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님에도 그 속에서 또다시 서로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완벽한 틀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기보다 올바른 방향성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틀을 만드는 순간 그 속에 갇히게 되고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포용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대립만이 생길 뿐이다. 우리는 채식을 완벽하게 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연령과 환경에 따라 저마다 더 잘 맞는 식생활이 있다. 지금 무엇을 얼마나 지침대로, 남하는 대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알아가는 열린 태도가 더 필요하다. “당신도 옳고 나도 옳다. 그러니 우리 함께 좋은 길로 가보자.”

느리지만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 길은 충분히 멋지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떠오르게 하는 하와이 해변의 거북이.

느리지만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 길은 충분히 멋지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떠오르게 하는 하와이 해변의 거북이.

“왜 채식을 하게 되셨나요”, “비건인가요”, “채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우리는 쉽게 이야기한다. “좀 더 나은 삶,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보다는 내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 더 배우고 노력하며 익을수록 머리를 숙이는 벼처럼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오늘 알고 있던 사실이 내일이면 잘못되었음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그때의 깨달음을 지도 삼아 한 걸음 나아가본다. 삶은 속도와 완벽함보다 방향이니까.

벨기에의 한 유기농 마트 벽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성을 생각하게 된다.

벨기에의 한 유기농 마트 벽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성을 생각하게 된다.

작가·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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