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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돌고래·고양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 비건라이프(20)

제비가 비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스릴 넘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된다. 남프랑스 니스의 다락방에서 아침이면 먹이를 찾아 나서는 제비가 한집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짐을 풀고 잠이 깬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저녁이면 동네 제비들의 곡예비행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제비’는 날개가 있는 진짜 ‘제비’를 말한다. 어르신들이 특정 사람에게 지칭하는 그 제비가 아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차 한 잔을 내려 테라스에 앉으면 석양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비행이 펼쳐진다. 저렇게 빠르게 어지럽게 날다가 서로 부딪히지는 않을까 손에 땀이 밴다. 포뮬러 1 못지않은 긴장감이다.

어느 날 아침, 테라스와 면한 다락방 벽에서 어린 제비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아침마다 부산한 제비들 소리에 우리도 일찍 눈을 뜨게 된다. 우리에게도 어미 새가 맛있는 아침을 차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비들은 벽과 지붕이 만나는 틈 어딘가에 보금자리를 틀었고 우리는 그들이 내는 부산한 움직임과 소리만 느낄 수 있을 뿐 둥지를 볼 수 없었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우리 가까이 생명을 이루는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새를 통해 세상을 잠시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때로는 개와 고양이를 통해, 돌고래를 통해 그들의 눈이 되어본다. 그 눈으로 사람과 자연을 다시 보게 된다. 인간과 다른 생김이지만 그들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눈을 통해 뭉클한 무언가를 느낄 수도 있었다. 그들과 연결된다는 감정이 놀라웠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의 눈동자를 깊이 바라보는 경험을 해보기를 권한다. 개나 고양이도 그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들이 결코 흐리멍덩한 눈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뛰는 심장을 가진 수많은 생명이 눈을 통해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전에도 지금도 세상은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우리였다. 생각이 달라지고 다른 경험을 하면서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다락방에서 제비 가족을 볼 수는 없으나 느낄 수 있었듯이, 지구에 함께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을 볼 수는 없으나 도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좋은 시대다. 때마침 세상도 여러 이유로 ‘비건’의 문이 많아졌다. 가파르게 늘고 있는 ‘비건’의 문은 건강, 동물복지, 환경 등 어떤 문을 열고 첫 시도를 해도 연결되고 만나며 새로운 문이 다시 열린다. 편의점에서도 비건 도시락과 김밥을 먹을 수 있으니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삶의 모습으로 자리 잡아간다. 누구나 낯선 시도를 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할 때는 선입견이나 두려움이 생긴다. 우리의 인식 확장에 도움을 받았던 책과 영상을 소개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우리가 먹는 것은 누구에 의해 결정되고 어떤 이득 관계가 있는지 보여준다. 원제: What the health. [사진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자본주의 세상에서 우리가 먹는 것은 누구에 의해 결정되고 어떤 이득 관계가 있는지 보여준다. 원제: What the health. [사진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70억 인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속 시원하게 밝힌다.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원제: Cowspiracy. [사진 소에 대한 음모]

70억 인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속 시원하게 밝힌다.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원제: Cowspiracy. [사진 소에 대한 음모]

공장식 축산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영화 장면 중 수많은 동물들의 눈이 나오는데 그 눈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원제: Dominion. [사진 지배자들]

공장식 축산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영화 장면 중 수많은 동물들의 눈이 나오는데 그 눈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원제: Dominion. [사진 지배자들]

생명의 연결됨을 깨닫게 되면서 세상은 유기적이며 복합적인 하나의 ‘고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연결점이 있는 커다란 고리를 떠올렸다.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에는 연결됨에 대한 이야기가 잘 드러난다. “당신도 연결되었나요?”라는 질문에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우리의 연결은 고작 사람과 돈, 소비와 지위, 명성에 그쳤음을 알게 되었다. 매일 발을 딛고 사는 지구와 입으로 넣는 음식에 대한 그 어떤 연결감도 인식하지 못했다. 연결의 의미에는 완벽을 담고 있지 않다.

콜린 캠벨 박사의 『당신이 병드는 이유』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음식과 인류의 병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 온 많은 음식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가 국민을 공포에 빠지게 했다. 우한 시장에서는 박쥐, 개, 고양이뿐 아니라 “이런 것도 먹어?”라고 할 만큼 다양한 동물들이 식용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야생 박쥐와 고양이로부터 전파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렇게 인간을 공격하게 되었다. 먹지 말아야 했던 것들을 인간이 먹으면서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전에는 먹는 것에 대해 좀 더 신중한 선택을 하는 것이 단지 건강만이 아니라 세상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 지금은 세상을 환원론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가 총체적인 연결고리와 원리를 알아가는 일에 즐거움과 연민을 느낀다.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그에 맞는 처방을 받는다. 염증이 원인이라면 염증을 줄이는 약을 먹게 된다. 좀 더 총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무릎이 아프게 된 원인이 염증 때문이라면 염증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의 염증 수치는 줄기도 늘기도 한다. 음식을 통해 우리의 세상은 환원론적인지 총체론적인지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남프랑스 니스의 숙소에서 바라본 어느 저녁, 하늘 곡예를 하던 수많은 제비들도 저마다의 둥지로 돌아갈 시간이다. 모두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태초에 어미가 있는 존재들이다. [사진 심채윤]

남프랑스 니스의 숙소에서 바라본 어느 저녁, 하늘 곡예를 하던 수많은 제비들도 저마다의 둥지로 돌아갈 시간이다. 모두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태초에 어미가 있는 존재들이다. [사진 심채윤]

간단한 저녁을 먹기 위해 장을 봐서 집에 돌아왔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순간 테라스에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석에서 몸을 들썩이며 파르르 떨고 있는 검은 제비가 보인다. 날개의 하나가 꺾여 있고 실오라기 같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내 아무런 생명의 불씨도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 곡예비행을 마친 곡예사에게 합당한 대우는 아니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는 모른다. 집 앞 화단에 묻어 주었다. 저녁 하늘에는 수많은 다른 곡예사들이 여전히 비행 중이었다. 우리 집 처마에 사는 어미가 죽은 것은 아닐까 어린 새들이 걱정되었다. 다행히 그들을 돌보는 존재는 남아 있었다. 생명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하고 다시 꺼지는 수많은 과정, 그중 대부분의 생명은 매일 사람에 의해 강제로 꺼진다.

[사진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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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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