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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직격탄 두산중, 휴업카드까지 꺼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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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의 탈(脫)원자력발전 정책에 직격탄을 맞은 두산중공업이 결국 휴업 카드를 꺼냈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유휴 인력과 시설의 고정비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수주 10조 증발에 5년 손실 1조” #사업구조 개편 실패 겹쳐 경영난 #사측, 노조에 “휴업 시행 협의하자” #노조 “사주가 사재 출연부터 하라”

두산중공업은 11일 “경영상 이유로 휴업 시행을 검토함에 따라 전날 노조(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에 노사 협의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46조(휴업 수당에 관한 규정)와 단체협약에 근거한 경영상 사유에 의한 휴업 시행과 관련한 협의다.

공문에서 두산중공업은 “글로벌 발전시장 침체와 외부 환경 변화로 경영실적이 여러 해 동안 악화했고, 특히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있던 원자력·석탄화력 발전 프로젝트 취소로 약 10조원 규모의 수주물량이 증발해 경영위기가 가속화했다”고 밝혔다.

이어 “2012년 고점(高點) 대비 매출은 50% 아래로 떨어졌고 영업이익은 17% 수준에 불과한데 최근 5년간 당기 순손실액은 1조원을 넘어서면서 영업활동만으론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신용등급까지 하락하는 악순환으로 부채상환 압박이 더해졌다”고 털어놨다.

두산중공업은 수주물량 감소로 창원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고정비 절감을 위한 긴급조치로 ‘경영상 사유에 의한 휴업’을 실시하겠다고 노조에 전달했다. 휴업 대상과 기간 등은 단체협약에 따라 노조와 협의할 방침이다.

노조는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 측은  “확대 간부회의에서 휴업 협의 요청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며 “비상경영을 하려면 사주와 경영진이 사재를 출연하는 등 먼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산중공업의 경영 위기는 7년째 ‘진행형’이다.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잘못된 경영 판단과 사업구조 개편 실패가 자금 경색을 일으켰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경영난을 가속화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2013년 대규모 미분양 사태를 빚은 두산건설의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사태가 자금 경색의 시작이었다. 두산중공업은 2010년부터 1조원 넘는 자금을 두산건설에 수혈했다.

두산중, 지난달부터 45세 이상 직원들 명퇴 신청 받아

유상증자 등으로 활로를 찾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유동성 악화는 두산중공업과 그룹 전체로 번졌다. 지난해 말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을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추가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탈원전 정책은 결정타가 됐다. 총 사업비 8조2600억원에 달하던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이 중단되고,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도 동결되면서 매출 급감→유동성 악화→신용등급 하락→자금 부담 증가의 악순환이 시작됐다. 2016년 8조원이 넘던 신규 수주 규모는 지난해 말 2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사업구조 개편에 실패한 것도 경영 악화의 원인이다. 독일 지멘스, 미국 GE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전통적인 발전시장 침체와 친환경 추세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적극 대처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의 경우 2014년 이후 신규 수주 물량에서 해외 석탄발전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었다. 이후 전개된 정권 차원의 에너지 정책 개편에 대응할 체력을 갖추지 못했던 셈이다.

두산중공업은 회생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18년 말 사무직을 대상으로 조기퇴직 연령을 낮춘 데 이어 지난달부터는 기술직과 사무직을 포함해 만 4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휴업 결정 역시 고정비 감축을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 정권의 탈원전 기조가 유지되는 한 회생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쪽이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원전이 빠진 부분을 대체해야 하는데 신재생에너지의 본격화에 시간이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정부가 힘을 실어준다면 원천기술을 해외에 의존하는 가스터빈이나 풍력발전 등에서 새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겠지만 기술 개발과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문제”라며 “기저질환이 있던 환자처럼 기초 체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날 두산중공업 주가는 전날보다 21.44% 떨어진 359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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