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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신뢰 흔들리는 WHO…‘코로나 국제공조’ 새 규범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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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고, 첫 사망자가 나온 1월 11일부터 치면 두 달이 흘렀다. 6개 대륙 110여 개 나라에서 코로나19가 발병했다. 전 세계적으로 누적 확진자는 11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4000명을 돌파했다. 14세기 흑사병, 20세기 스페인 독감을 떠올릴 정도로 상황이 나쁘다.

110여 국에서 확진자 11만 명 ‘사실상 팬데믹’ #입국 제한 갈등 커져 조정 기준 논의도 시급

2020년을 희망으로 시작한 지구촌 77억 명의 인류는 지금 코로나19 재앙 앞에 떨고 있다. 이제 지구촌에 ‘털 없는 원숭이’가 숨을 안전한 곳을 찾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런데도 세계보건기구(WHO)든, 유엔이든 국제기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 모두 세계 2위로 올라선 이탈리아는 인구 6000만 명에 대한 이동 제한을 선언해 ‘2차대전급 전시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이란에서는 정치 지도자가 감염돼 숨지기도 했다. 이탈리아와 이란은 중국과의 정치·경제적 관련성이 특히 높은 나라들이다. 프랑스·스페인·독일도 확진자가 1000명 선을 넘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고령의 대선 주자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9일(현지시간) 전염병 학자들의 판단을 근거로 코로나19 발병 상황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WHO는  “팬데믹 위협이 매우 현실화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팬데믹을 선언하지는 않았다. WHO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병한 초기부터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약 10조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중국을 의식해 애매한 입장을 표명하거나 심지어 중국을 두둔하기도 했다. 돈과 정치에 오염됐다며 WHO 사무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원이 40만 명을 돌파했다.

정보 통제와 진실 은폐 때문에 3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초래한 중국은 WHO의 비호를 의식한 듯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중국이 코로나19 발원지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중국 외교부장은 그제 “중국이 다른 나라들의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시간을 벌어줬다”고까지 말했다. 국제사회에 끼친 막대한 피해에 사과하기는커녕 자화자찬한 셈이다.

그동안 WHO의 처신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코로나19가 터진 지 한 달 만인 1월 30일 뒤늦게 ‘국제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국경 폐쇄는 득보다 실이 크다”며 이동과 교역 제한에도 반대해 왔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은 WHO의 인식과는 다르게 굴러간다. 한·일 사례에서 보듯 입국 제한 조치가 잇따르면서 국가 간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비록 강제력이 없는 WHO라지만 이런 달라진 현실에 맞는 국제 규범이나 매뉴얼을 이젠 정비해야 한다. WHO가 ‘인류의 주치의’로서 국제사회의 협력을 끌어내는 노력을 이제라도 제대로 수행해 주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