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긴급구호 시급하지만 무차별 현금 살포는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1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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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이 먼저 꺼내고 이낙연 전 총리까지 가세한 재난기본소득 얘기다. 청와대가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고, 기획재정부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데도 이들은 총선이 임박하자 군불을 때고 있다. 서울에서는 당장 콜센터 집단 감염으로 ‘제3차 유행 임박’ 우려가 커지는 와중이다. 발등에 떨어진 방역 노력보다는 선심성 포퓰리즘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이들이 제시하는 액수도 1인당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껑충 뛰었다.

‘재난기본소득’ 절박한 사람에게만 가야
청와대·기재부조차 비현실적이라 판단

얼마나 터무니없는 발상인지 보자. 전 국민 5100만 명에게 현금 100만원을 지급하면 51조원이 필요하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정부 예산으로 지급하고 부자에게 세금으로 환수하면 된다”고 했다. 그가 평소 얼마나 세금을 냈는지 의문이지만, 당장 올해 첫 달부터 전년 대비 세수가 6000억원 줄어든 암울한 현실 앞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불황이 깊어지는데 어떻게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건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급여세 3000억 달러 면제를 추진한다는 소식은 못 들었나.

더 큰 문제는 51조원을 조달할 방법 자체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이미 올해 세수 부족으로 추경까지 합쳐 정부가 빚을 내기로 한 돈은 70조원에 달한다. 51조원을 더하면 액수는 120조원이 넘어간다. 이렇게 큰 빚을 국채로 조달하면 금융시장에도 파장이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현금 51조원을 살포하자는 것은 ‘돈 없으면 카드로 긁으면 된다’는 발상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청와대·기재부조차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설령 실행해도 뒷감당이 안 되는 일이다.

더구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재난기본소득은 실효성이 없다. 통장에 그냥 넣어두는 사람도 적지 않고, 지출한다고 해도 일회성으로 끝난다. 무엇보다 긴급 구호가 필요하면 기초생활보장·근로장려금(EITC) 제도를 통해 얼마든지 걸러지게 돼 있다. 최장 9개월 실업급여를 받는 장치도 있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지난달 실업급여는 8000억원에 육박했다.

당장 망국적 탁상공론을 멈추고 실질적 구제책에 나서야 한다. 지금 중소기업·소상공인은 은행에 ‘코로나 대출’을 신청해도 심사에만 두 달이 걸린다. 추경 규모는 11조7000억원으로 커 보이지만, 대출에 필요한 신용보증기금에는 고작 3000억원이 배정됐기 때문이다. 국회 추경 심사에서는 소모성 소비쿠폰을 줄이고 이 규모를 대폭 늘려야 한다. 이같이 당장 실효성 있는 일은 제쳐두고 대중의 포퓰리즘 심리만 살피는 것은 사태 극복에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불부터 끈다는 자세로 막힌 곳부터 뚫어주고, 긴급 구호는 도움이 절박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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