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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판 커진 '재난 기본소득'…기본소득 가는 발판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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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씩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한 김경수 경남도지사. [사진 경남도]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씩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한 김경수 경남도지사. [사진 경남도]

“전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을 일시적으로 지원하자. 내수 시장을 과감하게 키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8일 전국민에게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정부와 국회에 제안했다. 총 51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한 번 주겠다는 재난 기본소득도 ‘기본소득’일까.

무슨 일이야?

-지난 1일 이재웅 쏘카 대표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올린 ‘재난 기본소득’의 판이 커졌다. 이 대표의 안은 프리랜서ㆍ택시기사 등 비임금 근로자에게 50만원씩 주자는 것이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서 “김 지사를 응원한다”며 호응했다. 9일엔 박원순 서울시장도 재난 기본소득을 검토중이라고 알려졌다.

이게 왜 중요해?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기본소득을 대중적 아젠다로 끌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수십조 원의 나랏돈이 드는 ‘재난 기본소득’은 결국 ‘누구 돈으로 나눠줄 것인지’에 답해야할 문제다.

-김경수 지사는 8일 “고소득층에게 지급한 금액은 내년에 세금으로 다시 환수하자”고 제안했다. 김 지사 말대로 일단 51조를 풀어서 조세수입 8조~9조원 증가 효과를 본다고 해도, 재정 적자를 메울 수단은 결국 국민과 기업이 내야할 미래의 세금.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한국에는 일부 유럽국가처럼 재정 포퓰리즘을 견제할 독립 재정기구도 없는 데다 재정준칙도 마련돼 있지 않다"며 "기본소득제는 무턱대고 도입하기 전에 필요한 시스템을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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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그게 뭔데?

-기본소득은 남녀노소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주기적으로 일정 금액의 생활비를 지급해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자는 정책이다. 현재의 재난 기본소득은 기본소득보다는 일회성 현금 복지에 가깝다.

-국내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16년 성남시장 시절 청년 기본소득(청년배당)을 도입했다.

-2018년 경기도지사 당선 이후 지난해 4월부터는 경기도내 31개 시ㆍ군으로 확대됐다. 경기도 내 만24세 청년 17만5000여명에게 분기당 25만원씩 지역화폐로 지급했다. 총 1753억원 규모의 예산은 도가 70%, 시ㆍ군이 30%씩 부담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2016년 도입한 청년 기본소득을 2019년 4월부터 경기도 31개 시군에 확대했다. [중앙포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2016년 도입한 청년 기본소득을 2019년 4월부터 경기도 31개 시군에 확대했다. [중앙포토]

누가 찬성해?

-21대 총선에서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건 군소정당들이 있다.
-2월 창당한 ‘시대전환’은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원씩 지급하자고 주장한다. 재원은 기존 세제와 재정을 개편해서 마련하면 된다는 입장. 이원재 시대전환 공동대표는 기본소득을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 LAB2050 대표도 맡고 있다.
-올해 1월 창당한 '기본소득당'도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월 60만원씩을 지급하자고 한다. 토지보유세ㆍ환경세 등 새로운 세금을 만들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기도 산하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경기도가 추진하는 '기본소득 지방정부 협의회'에 참석하겠다고 4개 지자체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지방정부에서 확산 가능성이 있다.

빅 픽쳐

-사회보험료로 복지제도를 구축한 유럽은 노동소득이 줄어들 미래를 먼저 고민했다. 스위스는 2016년 기본소득을 국민투표에 부쳤고(부결), 핀란드는 2017년부터 2년간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기본소득은 미국의 IT 기업가들도 주장한다. 로봇이 인간 일자리를 대체하고 노동소득이 줄어들면,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소비가 유지되고 자본주의도 지속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기본소득 찬성론자다.
-우버 같은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기본소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업의 고용없이, IT 기반 네트워크로 노동력을 조달하는 시장에선 플랫폼 노동자의 안정적 생활을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앤드류 양도 IT 기업들에게 걷은 돈으로 18세 이상 미국인에 월1000달러(120만원)을 주자는 ‘자유 배당금(Freedom Dividend)’을 주장했다.

이원재 시대전환 공동대표가 19일 서울 명동에서 정당 창당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원재 시대전환 공동대표가 19일 서울 명동에서 정당 창당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더 알면 좋은 점  

-이재웅 쏘카 대표는 LAB2050를 설립 때부터 후원하며 관련 연구를 지원했다.
-정의당은 기본소득 대신 기본자산(청년기초자산)을 총선 1호 공약으로 걸었다. 만20세 청년에게 3000만원씩 종잣돈을 줘서, 물려받은 것 없는 청년에게도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자는 내용이다.
-'기본자산'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주장한다.〈21세기 자본〉 이후 6년 만에 낸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그는 만 25세가 되는 성인에게 12만 유로(약 1억 6500만원)의 목돈을 주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영문판을 읽은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피케티가 1200쪽이 넘는 이 책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며혹평했다. 경제적 평등주의가 민주주의에서 표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저소득층을 위해 오바마가 의료보험을 확대하고 고소득자에 물리는 세율을 높였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박수련·김도년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팩플] "그래서, 팩트(fact)가 뭐야?"

이 질문에 답하는 게 [팩플]입니다. 확인된 사실을 핵심만 잘 정리한 기사가 [팩플]입니다. [팩플]팀은 사실에 충실한 ‘팩트풀(factful)’ 기사, ‘팩트 플러스 알파’가 있는 기사를 씁니다. 빙빙 돌지 않습니다. 궁금해할 내용부터 콕콕 짚습니다. ‘팩트없는 기사는 이제 그만, 팩트로 플렉스(Flex)해버렸지 뭐야.’ [팩플]을 읽고 나면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게끔,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