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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바퀴 도는 예결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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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년 예산을 심의할 국회의 예산결산위원회가 5공 청산이란 걸림돌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당초 26일부터 예결위를 가동시켜 결산· 예비비 지출(88년) 및 추경 안 (89년)을 종합 심사키로 잠정 일정을 잡았으나 야3당간에 5공 청산과 예산안 연계투쟁방식에 혼선이 일고 있는 데다 민정당의 예결위원장 내정자인 신상식 의원의 자격시비까지 엉켜져 위원회구성조차 못하고 공전중이다.
이 같은 국면은 야3당의 노 정권 퇴진투쟁 합의에 민정당이 크게 반발한데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방미정상외교 방해편지로 감정이 격화되어 더욱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있다.
3김 총재가 예산안연계투쟁을 『효율적 전략』 이라고 선언해버려 이 말을 묵살할 만한 새로운 명분이 나타날 때까지 현재의 소강국면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또 결산· 추경 안 심의를 11월6일까지 마치면 되는 시간적 여유가 예결위 가동문제를 서두르지 않게 하는 요인이 되고있다.
게다가 공투를 다짐한 야3당 사이에도 예산심의 연계투쟁에 대한 강도와 속셈이 달라 어차피 가닥을 잡자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예산안 연계투쟁은 처음 민주당이「기발한 아이디어」라고 내놓았다가 평민· 공화당의 호응이 미온적이자 스스로 심의보이콧은 아니라는 한계를 설정했다.
민주당 혹은 4당. 중진회의가 재개될 때까지 예결위 구성을 일단 미뤄뒀다가 중진회의에서 민정당이 풀어놓을 5공 청산의 보따리를 보고 난 뒤 구체적 전략을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만약 일방종결선언 등 민정당이 지금처럼 청산·방안을 고수한다면 예결위원장을 아예 야당에서 맡아 예산안심의를 주도해 버리겠다고 민정당에 으름장을 놓고있다.
이기택 민주당총무는 『위원장을 야당이 맡으면 예비비에 잠복해있는 정보예산과 대통령공약사업예산 등 소위 정권유지비를 대폭 삭감할 수 있어 실질적 5공 청산 압력수단이 될 수 있다』 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평민·공화당조차 그 같은 수단이 가능하다거나 그 결과가 야당에 유리하다고 믿는 것 같지 않다. 여대의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관행처럼 써먹던 심의보이콧 전략도 지금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생각인 것 같다.
김원기 평민당 총무는 『5공 청산의 큰 과제가 앞에 놓인 상황에서 예산연계투쟁은 당위성과 효과 면에서 문제점이 있다』 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김용채 공화당총무도 『삭감투쟁은 원래 야당의 몫인데 이번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느냐』 고 반문한다.
당장 민정당이 내정한 신상식 위원장을 선출하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투쟁목표가 신의원 개인에게 타격을 주자는 것이 아닌 바에야 국감 때 일부 야당의 일방 주장을 근거로 신위원장을 선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13대 국회 출발 때 예결위원장을 민정당에 주기로 한 것은 4당간 양해사항이며 민주당 측이 신위원장 출신구인 밀양의 다음 선거를 위한 전략으로 이 문제를 써먹고 있다는 얘기가 여야간에 파다하다.
아무튼 국민의 세금으로 짜진 예산안을 정치적 이해 때문에 심의를 늦추거나 흥정하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거부감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 또 야당이 예결위원장을 맡아 그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5공 청산 자체가 명분싸움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거꾸로 예산연계가 자칫 명분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김영삼 총재의 자존심과 체면이 걸려있고 김총재 스스로 『여러 가지 투쟁수단』 이 있다고 장담한바 있어 평민·공화당의 엉거주춤한 입장 속에 민주당이 앞장서 풀어야할 형편이다. 평민·공화당은 대충 일단 예결위를 구성, 예산 심의에 착수하되 여권의 움직임을 보아가며 신축성 있게 대응하자고 민주당을 설득하고있다.
이 같은 야3당 내부사정을 읽고 있는 민정당은 시간이 다소 늦춰지긴 하겠지만 11월초 까진 예결위가동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신위원장 선출문제는 평민· 공화당으로부터 내락을 얻은 상태여서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더구나 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당정회의에서 『국민생활에 직결된 예산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치현안과 연계시켜 통과가 안되어서는 안 된다』 고 못박아 민정당 측은 이에 관해 단호한 자세다.
이렇게 볼 때 예결위가동문제는 여야 중진회담 등이 이뤄져 현재의 현안들이 그쪽으로 수용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전망이어서 문제는 여야간의 중진회담성사에 달린 셈이다.
야당 측이 노정권 퇴진 투쟁으로 경화된. 민정당을 달래는 방편으로 신위원장 선출을 양해, 위원회 구성에는 협조할 가능성이 높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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