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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만원 분당 닭강정' 거짓 주문'···대출사기단의 앙갚음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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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4일 경기 성남 분당 닭강정 가게 주인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주문서 내용. [뉴시스]

지난해 12월 24일 경기 성남 분당 닭강정 가게 주인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주문서 내용. [뉴시스]

지난해 성탄절 이브에 알려져 더 공분을 샀던 이른바 ‘33만원 분당 닭강정 거짓 주문’ 사건과 관련한 대출 사기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이 알려진 지 약 두 달 만이다. 애초 이 사건은 20대인 피해자가 닭강정 거짓 주문자들에게 고등학교 때부터 괴롭힘을 당해 온 학교 폭력 사건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며 온라인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경기 성남수정경찰서는 감금·폭행·사기 등 혐의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4일 밝혔다. 또 공범 B씨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하고, 이들의 대출 사기 범행을 방조한 C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씨 등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재직 증명서 등을 위조하는 방법으로 피해자 7명을 상대로 대출 사기를 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정상적인 대출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접근해 대출이 가능한 서류를 조작해주고, 중개수수료를 떼어가는 이른바 ‘작업 대출’ 수법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자신들에게 연락한 피해자들과 모텔·찜질방에서 같이 지내며 대출 중개 수수료 등 명목으로 약 3000만원을 갈취했다. A씨 등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감금·폭행하고 강제로 돈을 빼앗기도 했다.

학폭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대출 사기 공범 

닭강정 거짓 주문 사건은 대출 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인 20대 남성 D씨(20)가 A씨 일당과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찾아갔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달아나자 A씨가 벌인 짓으로 밝혀졌다. 당시 D씨는 A씨 등과 며칠 동안 찜질방에서 지내며 대출을 받기 위해 재직 증명서를 위조하는 방법 등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D씨가 범행 직전 돌연 대출을 포기하고 도망가자 앙갚음을 다짐한 A씨는 지난해 12월 2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닭강정 가게에 연락해 33만원어치의 닭강정을 D씨 집으로 거짓 주문했다. “아드님 XXX씨가 시켰다고 해주세요”라는 요청사항과 함께다.
A씨의 주문을 받은 닭강정 가게 업주는 이를 학교 폭력 가해자의 장난 주문으로 알고 인터넷에 제보 글을 올렸다. “단체 주문을 받아서 배달하러 갔는데 주문자의 어머님이 처음엔 안 시켰다고 하다가 주문서를 보여드리니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가해자들이 장난 주문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 글은 급속히 퍼지며 많은 네티즌이 분노했다.

그러나 D씨가 당일 경찰에 대출 사기 관련 신고를 한 사실이 알려지며 닭강정 거짓 주문 사건의 전말은 대출 사기 일당의 횡포로 드러났다. 업주는 당시 카드 결제를 강제 취소하고 거짓 주문자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에겐 업무방해죄가 적용됐다”면서도 “D씨는 감금 피해자이지만 대출 사기에 가담한 피의자로도 볼 수 있어 불구속 입건됐다”고 밝혔다. 이어 “사기 일당 중 1명이 아직 잡히지 않아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쫓고 있다”고 덧붙였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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