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성적, 여성적 구분할 필요 있나요” 비적응 꿈꾸는 새소년

중앙일보

입력

두 번째 EP ‘비적응’을 발표한 새소년. 황소윤이 메인 프로듀싱을 맡고 있다. [사진 매직스트로베리]

두 번째 EP ‘비적응’을 발표한 새소년. 황소윤이 메인 프로듀싱을 맡고 있다. [사진 매직스트로베리]

‘지금 우리 앞의 가장 새로운 물결’. 2017년 10월 3인조 인디밴드 새소년이 첫 EP ‘여름깃’ 발매 당시 소속사에서 붙인 소개 문구다. 다소 과장된 것이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고, 낯선 이름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3년여간의 행보를 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 하다.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 등 2관왕에 오른 이들은 오는 13~22일 미국 텍사스에서 열리는 북미 최대 음악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 초청받을 정도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황소윤 주축으로 팀 재정비한 인디밴드 #2년 4개월만 새 앨범 발매 몽환성 더해 #자유로운 연작 ‘엉’‘덩’‘이’도 눈에 띄어 #아시아 투어 마치고 북미 SXSW 초청

2년 4개월 만에 내놓은 새 앨범 ‘비적응’ 역시 새로운 물결 위에 놓인 작품이다.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황소윤(23)과 지난해 합류한 드러머 유수(30)와 베이시스트 박현진(24)이 처음으로 함께 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원년멤버 두 사람의 입대로 팀을 재정비하게 된 새소년으로서는 앞선 앨범으로 선보인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멤버 변화로 달라진 모습을 함께 담아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여성이 주축이 돼 밴드를 이끄는 몇 안 되는 팀으로서 인디신 안팎의 기대감도 커진 상황이었다.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이들은 “지금도 합을 맞춰 가는 중”이라고 했다. “모든 만남은 시간과 비례한다고 생각해요.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는 바로 맞아 떨어지긴 힘들겠죠. 각종 SNS에 올라와 있는 연주자 영상을 거의 다 찾아봤는데 두 사람은 참 순수해 보였어요. 잔뜩 멋 부리지 않은, 그 속에 있는 에너지가 좋아 보여서 제안했는데 다행히 그 직감이 맞아떨어졌죠.”(황소윤) 황소윤의 중성적인 보컬에 두 사람의 섬세한 연주가 어우러져 몽환적인 느낌이 한층 강화됐다. 새로우면서도 날아가는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깃든 팀명과도 잘 어울린다.

베이시스트 박현진과 드러머 유수가 합류한 뒤 발표하는 첫 앨범이다. [사진 매직스트로베리]

베이시스트 박현진과 드러머 유수가 합류한 뒤 발표하는 첫 앨범이다. [사진 매직스트로베리]

멜로망스ㆍ바이바이배드맨 등 세션으로 활동한 유수는 “현진이랑은 학교에서 스쳐 지나가며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같은 팀을 하게 되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동문인 두 사람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박현진은 “처음엔 드럼으로 시작했는데 틀리면 티가 많이 나서 중학교 때 베이스로 바꿨다. 티가 덜 날 줄 알았는데 더 어렵더라”며 웃었다.

지난해 5월 ‘So!YoON!’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던 황소윤은 “밴드 활동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밴드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을 때 거의 모두가 말렸어요. 개인이 주목받는 시대고, 밴드로서 흥행하기도 쉽지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밴드가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특히 무대 위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고요.” 기본적으로 모든 곡을 직접 만들지만, 솔로 앨범에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사람만 나잠 수ㆍ수민ㆍ선우정아ㆍ샘킴 등 7팀에 달할 정도로 협업에 열려 있는 편이다.

총 7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에도 새 멤버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들이 포함돼 있다. 묵직하게 끌고 가는 유수의 드럼에 끌려 타이틀곡 ‘심야행’이 탄생했고, 음악을 독학으로 배운 황소윤이 얼개를 짜면 박현진이 이론적으로 화성이나 코드 전개를 뒷받침하는 식이다. 박현진이 “보다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심야행’은 장비를 빌려서 12시간 동안 녹음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유수는 “녹음할 땐 시간이 곧 돈인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렇다고 부르주아처럼 마구 쓴 건아니지만, 누구 하나 빨리 끝내자는 사람 없이 추구하는 바가 같아서 좋았다”고 덧붙였다.

‘비적응’ 앨범 재킷. [사진 매직스트로베리]

‘비적응’ 앨범 재킷. [사진 매직스트로베리]

‘엉’ ‘덩’ ‘이’는 진화한 새소년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연작이다. 황소윤은 “각각 타당한 이유가 있는 제목인데 이렇게 큰 관심을 끌 줄은 몰랐다”고 했다. “태초에 ‘덩’이 있었어요. ‘엉덩이 흔드네’ ‘덩실덩실 걸어 다닐 때’ 등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중의적이면서도 리듬감이 있는 표현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프리퀄로 ‘엉엉’ 우는 소리를 따서 ‘엉’을 만들었어요. 다들 겉으로는 따뜻해도 속으로는 숨기고 있는 차가운 부분이 있잖아요. 그걸 꼬집어 보고 싶었는데 ‘엉’ ‘덩’을 만들고 나니 ‘이’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됐죠. 정점을 찍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결과 화끈한 록이 나왔죠.”

학창시절 대부분을 대안학교에서 보낸 황소윤은 “직접적인 영향을 꼽진 못하겠지만 살아온 환경이 반영되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앨범 타이틀이 ‘부(不)적응’이 아닌 ‘비(非)적응’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처음엔 부모님께서 보다 자유로운 학교에서 공부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는데 중고등학교는 제가 선택한 거예요. 부적응과 비적응의 가장 큰 차이도 자신의 의지가 개입돼 있느냐인 것 같아요. 세상에 부적응해 고립된 것과 의지를 가지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결과 비적응하는 것은 다른 얘기니까요. 적응에 맞서는 대안적인 삶의 태도라고 할까요. 사실 음악도 반반인 것 같아요. 배우긴 했는데 받아들인 게 반 정도 된다면, 반영되지 않은 것도 그쯤 되거든요.”

작사작곡에 도전해볼 의향은 없냐는 질문에 유수와 박현진은 ’틈틈이 작업하고 있긴 한데 대장님의 컨펌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사진 매직스트로베리]

작사작곡에 도전해볼 의향은 없냐는 질문에 유수와 박현진은 ’틈틈이 작업하고 있긴 한데 대장님의 컨펌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사진 매직스트로베리]

여성 프론트, 혹은 프로듀서로서 힘든 점이 없냐는 질문에도 그는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물론 사회적인 통념에서 보면 힘든 부분이 있죠. 해쳐나가야 하는 부분도 많고. 그렇지만 힘들고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저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생산적인 것 같아요. 그래야 이 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데뷔하기 전까진 제 목소리가 중성적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걸요. 중성ㆍ남성ㆍ여성적이라고 꼭 분류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지난해 아시아 투어를 성공리에 마치면서 최근 기타 브랜드 펜더에서 선정한 ‘펜더 넥스트 2020’ 아티스트 25팀 가운데 한국 뮤지션 중 유일하게 포함되기도 했다. SXSW로 첫 미국 무대에 서는 소감은 어떨까. 황소윤은 “더 많은 사람이새소년의 음악에 설득될 수 있길 바란다”고 답했다. 유수가 “미국 코첼라, 영국 글래스톤베리 등 가고 싶은 무대가 많다. 얼마 전 롤라팔루자 칠레 무대 영상을 봤는데 너무 멋있더라”고 하자, 박현진은 “싱가포르 공연에서 관객들이 서로 엉겨 붙어 저희보다 더 즐기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국가별로 관객 성향도 다르니 더 다양한 분들과 만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