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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BTS 만든다…이수만도 방시혁도 키우는 걸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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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계관을 토대로 해외에서 승승장구하는 걸그룹들. 달의 뒷면을 담은 이달의 소녀. [사진 각 소속사]

세계관을 토대로 해외에서 승승장구하는 걸그룹들. 달의 뒷면을 담은 이달의 소녀. [사진 각 소속사]

걸그룹의 장외 대결이 치열하다. 멤버별 ‘초능력’을 가진 엑소(EXO)부터 ‘영혼의 지도’를 탐닉하고 있는 방탄소년단(BTS)까지 보이그룹의 전유물로 여겨진 ‘세계관’을 갖춘 걸그룹들이 승승장구 중이다. 마치 마블 만화와 영화 속 가상 세계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개별 작품들이 연결돼 전개되는 것처럼, 각 그룹마다 자신만의 서사를 이어가는 셈이다.

타사 소속 ‘이달의 소녀’ 새 앨범 #SM의 이수만이 직접 제작 참여 #56개국 아이튠스 차트 1위 올라 #방시혁이 도운 ‘여자친구’ 앨범 #‘회’ 발매 첫 주 5만3200장 팔려 #신인 걸그룹 ‘에버글로우’도 주목

K팝 무대가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팬덤이 다양화, 세분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당초 걸그룹은 보이그룹과 달리 코어 팬덤이 탄탄하지 않아 신곡에 맞는 콘셉트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유튜브 등 플랫폼을 통해 시공간 제약 없이 새로운 팀을 접하는 해외 팬들이 많아지면서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는 방안이 필요해진 것. 아이돌 시장에서 세계관 구축은, 보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로 시리즈 앨범 판매량을 올리고 다양한 장르의 부가 콘텐트를 창작하는 묘안으로 자리 잡았다.

눈에 띄는 것은 ‘이달의 소녀’다. 지난 5일 발매된 두 번째 미니앨범 ‘[#]’는 56개국 아이튠스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K팝 걸그룹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2016년부터 한 달에 한 명씩 새 멤버를 공개하는 전략으로 각각 지상계(1/3)·천상계(yyxy)·중간계(오드아이써클)에 해당하는 유닛을 선보였다. 2018년 12명의 소녀가 완전체로 모이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그 사이 팬덤은 탄탄해졌다. 국내 음원 차트 성적은 200위 안팎. 서브 컬처에 익숙한 해외의 반응이 더 컸다.

아이돌 음악에 세계관 개념을 불어 넣은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도 힘을 보탰다. 이달의 소녀 콘셉트를 흥미롭게 여겨 처음으로 다른 소속사 가수 프로듀싱에 나선 것. 이달의 소녀가 SM 소속 NCT 127의 ‘체리밤’을 커버한 영상을 본 게 계기였다. 타이틀곡 ‘소 왓(So What)’등 앨범 수록곡 6곡 제작 전 과정에 참여하면서 “세상이 정한 틀을 깨고 나와 자신을 표출하라”는 메시지를 더 선명해졌다. 이달의 소녀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남안우 대표는 “인문학 등 요소를 음악에 접목한 방탄소년단의 성공 이후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남 대표는 “이달의 소녀의 경우 코어 팬덤인 여성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며 “지난해 발표한 ‘버터플라이’ 이후 미국·브라질 등 북남미 유입이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각국 소녀들이 등장하는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주체적 여성상을 강조하는 나이키 광고를 연상시킨다.

‘유리구슬’부터 이야기를 재정비한 여자친구. [사진 각 소속사]

‘유리구슬’부터 이야기를 재정비한 여자친구. [사진 각 소속사]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도 ‘여자친구’ 새 앨범 제작에 뛰어들었다. 지난 3일 발매된 미니앨범 ‘회: 래버린스(回:LABYRINTH)’는 발매 첫 주 5만3200여장이 팔렸다. 2015년 데뷔 이래 최고 성적이다. 지난해 쏘스뮤직을 인수한 빅히트가 쌓은 역량을 발휘한 결과다. 방 대표와 아도라·프란츠 등 빅히트 사단이 작사·작곡에 참여했고, 뮤직비디오 등 비주얼 콘텐트도 공동 작업했다.

특히 앨범 발매에 앞서 이전 앨범의 세계관을 집약한 영상이 큰 호응을 얻었다. 쏘스뮤직 관계자는 “소녀의 성장이라는 큰 틀 안에서 성장하며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유리구슬’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 등 데뷔 초기 작곡가 이기·용배와 손잡고 선보인 ‘학교 3부작’을 계승하면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같던 이야기가 한층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다.

소성진 쏘스뮤직 대표는 4일 빅히트 회사설명회에 참석해 “본격적 성장 서사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SM 출신인 민희진 CBO와 함께 진행 중인 글로벌 오디션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걸그룹 명가, 걸그룹 1등 레이블이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전사 콘셉트의 에버글로우. [사진 각 소속사]

여전사 콘셉트의 에버글로우. [사진 각 소속사]

신인 걸그룹 ‘에버글로우’의 성장세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3일 발매한 첫 미니앨범 ‘레미니선스(reminiscence)’의 타이틀곡 ‘던 던’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는 2주 만에 7000만회를 돌파했다. 데뷔 1년도 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미래에서 지구를 구하러 왔다”는 여전사 콘셉트로 좌중을 압도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서사적으로는 한국 스타쉽엔터테인먼트와 중국 위에화엔터테인먼트가 합작한 선배 그룹 우주소녀보다 한발 깊게 들어가고, 퍼포먼스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블랙핑크를 떠올린다는 해외 팬들도 많다. 작곡에 에프엑스·레드벨벳 등과 작업한 스웨덴의 올로프 린드스코그, 트와이스·(여자)아이들 등과 협업한 호주 출신 헤이리 에이트컨 등이 참여해 K팝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묻어난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블랙핑크 이후 힙합 기반의 강렬한 군무를 선보이는 걸크러시 콘셉트를 표방한 팀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소속사 간 활발한 교류로 상향 평준화됐다”고 분석했다.

해외 반응이 국내 인지도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숙제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것처럼 유럽·남미 등에서 활약하는 혼성그룹 카드, 첫 영어 정규 앨범을 낸 몬스타엑스 등 K팝 내에서도 다양한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며 “시차는 있어도 시장의 저변은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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