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학 연기로 맞벌이 육아 고통, 할아버지·할머니 찬스 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돌봄교실 운영이 시작된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돌봄교실에 등교한 학생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돌봄교실 운영이 시작된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돌봄교실에 등교한 학생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구로동에 사는 맞벌이 직장인 김모(39·여)씨는 최근 경남 창원에 있는 친정 어머니에게 ‘육아 SOS’를 요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0살·8살 형제의 개학이 미뤄지면서 당장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동을 자제하라는 이야기에도 어머니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며 “‘서울에 올라오시라’고 말씀드리는 순간 속상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개학이 연기되고 학원 휴원이 잇따르면서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 고충이 커지고 있다. 방과후 돌봄교실을 중단하는 곳도 늘면서 부모들 입장에선 급하게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재택근무해도 육아·집안일 이중고 #“대구 계신 부모님껜 도움도 못 청해” #전업주부도 종일 아이와 씨름 고통 #발달장애아 교육 복지관도 스톱

2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코로나19에 따른 맞벌이 직장인 826명을 대상으로 자녀 돌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5%가 ‘육아 공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36.6%는 ‘친정 및 시부모님 등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고, ‘개인 연차 사용’(29.6%)과 ‘재택근무 요청’(12.8%) 등으로 임시 처방에 나섰다는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그나마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9살·7살 형제를 키우고 있는 김모(38)씨는 부모님은 생업 때문에, 장인·장모님은 코로나19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대구에 계셔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부인도 재택근무가 여의치 않다. 이 때문에 김씨가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업무를 보고 있다. 김씨는 “불가피하게 거래처와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며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잡히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도 아이들의 밥을 끼니마다 챙겨주고 집안일을 하면서, 회사 업무까지 모두 소화하기가 버거운 형편이다. 그나마 낫다는 전업주부들 역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야외활동이나 놀이시설 등의 이용이 힘들어지면서 혈기왕성한 아이들과 종일 씨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개포동에서 11살·9살 형제를 키우고 있는 고모(45·여)씨는 역시 비슷한 또래들을 키우고 있는 여동생과 함께 ‘품앗이 육아’에 나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여동생과 번갈아가며 두 집 아이들을 맡아서 육아를 담당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쉬면서 육아 스트레스를 덜기 위한 고육책이다.

주요 복지센터와 특수학교 등이 문을 닫으면서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의 근심도 크다. 단지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서가 아니다.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교육기관이나 복지센터는 ‘제2의 집’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김윤정 분더슐레 심리치료센터 원장은 “각종 활동을 통해 자극을 주고 친구들과 교류하며 사회성을 길러주는데, 집에만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쉽다”고 우려했다.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철저한 소독 관리를 통한 긴급 돌봄 시스템이 필요한 때”라며 “선택의 여지 없이 시설을 모두 폐쇄하면 아이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부모들도 곤경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의 돌봄을 받기 어려운 가정을 대상으로 ‘아동 돌봄’ 특별센터를 운영하는 식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주영·박현주·정은혜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