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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칼럼

우리, 살아 남을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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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의 대상 국가로 한국을 우선 선택했다. 협상을 애걸하는 몇몇 국가를 제쳐 두고 한국을 지목한 이유는 자명하다. 갖출 것을 제법 갖췄기 때문이다. 도하회의(DDA)가 부진해진 뒤 유럽연합(EU) 같은 지역경제 통합이 어려워지자 미국은 벌써부터 개별 국가를 묶는 양자 전략으로 선회했고, 여기에 한국이 매력적인 국가로 부상했던 것이다. 제조업과 정보기술(IT) 강국, 무역규모 11위의 나라를 양자협정으로 묶을 수만 있다면, 대(對)아시아 FTA 전쟁에서 반쯤은 승리한 것이고, 중국.북한.러시아 견제에 든든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셈이다.

미국과의 교역 확대는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형 FTA'가 신종(新種)이라는 점이다. 입맛에 맞는 품목만을 선별해 협상하는 '열거주의'가 아니라 상품.공공서비스.사회서비스.투자.금융.지적재산권 등 모든 경제적 재화를 동일한 시장에 묶는 포괄주의 방식, 말 그대로 '실질적 경제통합'이 미국이 개발한 신형 FTA의 특징이다. 막말로 서로 트는 것, 조건 없이 섞는 것을 의미한다. 불리하다고 숨을 곳도, 잠시 대피할 곳도 허락하지 않는 국민경제 '올인전(戰)'이다. 미국이 한국으로 연장되고, 한국이 미국에 실재한다. 그러면 한국은 캘리포니아가 될까? 아니면 가난한 앨라배마가 될까? 이 질문은 곧 생존의 문제로 바뀐다. 우리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면 가부간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텐데, 어떤 경제학도 어떤 수퍼 컴퓨터도 신종 FTA를 총체적으로 측정하지 못하기에 이 질문 앞에 고통스럽기만 하다. 이른바 4대 선결조건 수용 시비는 '한국의 생존'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다. 가령 협정 체결 이후 상당한 세월이 흘러 산업과 시장통합이 이뤄지고 생산과 소비 표준이 '높은 수준으로' 통일된다면, 도량형 단위도 척.근.평에서 인치.파운드.에이커로 바뀔까? 불안감은 이런 인류학적 향수에서 역사적 정체성 문제로 번진다. '남북전쟁.서부개척.자본주의.자유주의.패권주의'로 엮인 기세등등한 역사와, '쇄국.개화.식민지.내전.독재.후발성장.민주화'로 진화된 주눅 든 역사 간에 활발한 신진대사가 일어나 혹시 한쪽은 증발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그렇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대국과 소국이 무역하면 결국 소국이 득을 보고 개방은 언제나 경쟁력을 촉진했음을, 따라서 선진국행 티켓을 거절하는 것은 폐쇄적 민족주의에 물든 멍청이들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항간에 떠도는 이런 낙관적 논리들이 낯설지는 않으나 운명을 맡길 만큼 확신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무기고에는 과학적 근거보다 희망 사고가 더 많이 발견된다. 그런데 낙관론의 취약한 근거가 'FTA 찬성'의 확실한 지표가 될 수 없듯 결과는 파멸일 거라는 예측이 'FTA 반대'의 기준이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유보론으로 도피? 이는 사실상 내년 3월 말인 시한조건에 걸린다. 이것이 딜레마다.

전문가들 사이에 공유된 감이 있기는 하다. 경제적으로는 제조업 '약진', 서비스와 금융 '침해', 농축업 '대체로 파산'. 사회적으로는 하위 소득 일자리의 대량 파괴와 사회 양극화 심화. 이는 단기적 전망이고, 장기적 전망은 여전히 두 개로 갈린다. 'G10행 급행'이라는 예찬론과 '마킬라도라(중남미형 수출자유지역)로 가는 쪽문'이라는 비관론. 자, 그러면 이제 가부를 결정하자. 필자는 매우 조심스럽게 '가'쪽이다. 양자협상만이 트여 있는 길이라면 미국과 겨루자. 올인에는 오기가 필요한 법, '살아남을까?'를 '살아남아야 한다'로 바꾸고 주눅 든 역사의 화려한 반전을 꾀하자. 미몽에서 헤맸던 1882년 조선이 통상조약을 미국과 체결했듯, 운명의 연장선에서 항상 어른거렸던 나라가 미국이었다. 그 운명을 받아들이되 마치 핵탄두가 터진 듯한 충격을 완화할 사회적 대피소를 중층적으로 만드는 일에 나서는 것이 더 현명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