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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칼럼

역사의 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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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해 한 선배가 혀를 차며 털어놓은 얘기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아침을 먹다 말고 묻더란다. 한국전쟁을 남한이 일으킨 게 아니냐고 말이다. 깜짝 놀라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이름까지 들먹이며 제법 논리적인 북침설을 주장하더란 것이다. 바쁜 아침 밥상이 토론의 장으로 변모했음은 물론이다. 선배는 커밍스가 대표작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북침설과 남침설, 그리고 남침유도설을 제시한 뒤 마지막에 무게중심을 두고 한국전쟁의 발발 유형을 설명했지만 나중에 소련의 기밀문서가 해제되면서 남침이 분명한 사실로 밝혀졌다고 장황한 설명을 마쳤다. 그러자 아들이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며 말하더란다. "글쎄, 나도 그런 것 같긴 한데 그런 얘기 학교에서 하면 왕따 당해요."

어째서 이미 명백해진 남침설을 주장하면 왕따가 되는 것일까. 학생이 모두 북침설을 신봉하고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듣고 배웠단 말인가. 꼬리를 무는 의문 속에서도 '에이, 설마 그 정도일까'하며 선배의 말을 접어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전교조 한 지부가 열었던 통일학교 세미나의 교재 파문을 보면서 퍼뜩 선배의 근심스럽던 표정을 떠올려야 했다. 교사들이 사용한 교재에는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묘사한 북한의 역사관이 토씨까지 똑같게 서술되고 있다잖은가. "학술적 차원의 토론용일 뿐"이라는 해명도 의구심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모든 전교조 교사가 그런 식의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 만나 본 전교조 교사 중에도 수정주의 사관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몇몇 교실에서 북침설이 주입되고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학부모들은 불안할밖에. 자기 자식이 북침이나 주체사상을 말하지 않으면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조작된 역사인식을 가진 멍청이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부모들은 현재의 반쪽짜리 제도권 역사 교육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중학교 과정에서는 국사가 사회 과목으로 통합돼 있고 고교에서도 1학년만 국사가 필수과목이며 2학년부터는 한국근현대사가 선택과목에 불과한 어처구니없는 현실 말이다. 미국이 그렇다지만 300년도 안 되는 역사를 가진 나라와 반만년 역사의 우리가 역사 교육이 같을 순 없는 일이다.

하기야 교실 밖으로 나가면 더 많은 역사가 널려 있다. 논란 많은 근현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기록도 희미한 고대사까지 일상에서 넘쳐난다. 관객 1000만 명이 넘는 경이로운 흥행기록이 줄줄이 깨지는 기적 뒤에는 언제나 역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모두 그렇다. TV의 대박 드라마 역시 대부분 사극이다. '태조 왕건' '불멸의 이순신' '주몽' 등 아닌 게 없다.

역사가 넘치니 역사 해석도 다양하다.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fact)이 자유로운 상상(fiction)으로 포장된다. 문제는 이런 팩션(faction)의 생성 문법이 시장의 논리를 따른다는 것이다. 수요에 맞춰 해석된 역사 상품이 시장에 나오고 대중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골라 소비하는 것이다. 역사 상품은 필연적으로 강한 민족주의 성격을 가진다. 팔리기 위해서다. 극적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도 쉽게 왜곡된다. 수치는 지워지고 영웅은 과장된다. 상품화된 역사가 북침론만큼 위험한 까닭이다. 청소년이 학교에서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더 많은 역사를 접하고 배워서다. 우리의 역사 교육이 이처럼 안팎에서 표류하도록 놔둬도 될까. 중국.일본과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유대인들은 온갖 난관 속에서도 역사를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고난과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명멸한 많은 민족과 달리 수천 년 동안 떠돌다가 끝내 나라를 세우고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유다. 유대인의 역사인식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