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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처진 어깨를 세워주는 밥상의 힘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24)

“어서 와라, 저녁은 먹었냐?“
퇴근 후 늦은 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면 아직 주무시지도 않고 거실 중간에서 나를 맞이하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다.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와 대문 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안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현관쪽까지 걸어 나오는 중이다.

“밥 먹었어요. 왜 아직도 안 주무시고 계세요.” 늦게까지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 언짢아진다. 몸도 피곤해서인지 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위층으로 향한다. 엄마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도 수고했다. 어서 가서 자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네, 안녕히 주무세요” 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위층 내 방으로 향한다.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엄마는 나를 위해 꼭 아침을 챙긴다. 엄마가 손수 준비한 엄마의 밥상, 항상 새로운 반찬에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들. 늘 당연시하며 먹었던 아침 식사였다. 아!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내가 매일 직장에서 샘솟는 열정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그 이유가 내 가슴을 뜨겁게 파고든다.

퇴직하고 돌아오는 길이 온통 눈보라치는 겨울이었을텐데 따뜻한 말 한마디와 그 마음에 이 퇴직자는 어느새 따스한 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일러스트 강경남]

퇴직하고 돌아오는 길이 온통 눈보라치는 겨울이었을텐데 따뜻한 말 한마디와 그 마음에 이 퇴직자는 어느새 따스한 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일러스트 강경남]

얼마 전 금융권에서 퇴직한 분의 이야기다. 퇴직을 결정하고 아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다니던 직장에서 인정받고 계속 다닐 거라고 믿는 아내였다. 아내의 실망이 두려워 말도 꺼낼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내려야만 하는 퇴직 결정 앞에 명예퇴직서를 제출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마치 수백리길 같았다. ‘아마 아내도 눈치채고 알고 있을 텐데….’ 마음은 꽁꽁 얼어붙었고 몸은 돌처럼 굳어져 간신히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요.” 그 말 한마디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 내려갔다. 거실에 들어선 순간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저녁상에 그만 울컥했다고 한다. 퇴직하고 돌아오는 그 길이 온통 눈보라 치는 겨울이었을 텐데 따뜻한 그 말 한마디와 그 마음에 이 퇴직자는 어느새 따스한 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의 허리인 40대와 50대의 비자발적 퇴직자가 49만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5년 만에 최대치라고 한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연초부터 코로나 불황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의 감원 태풍이 거세게 불어 닥칠 것 같다. 힘들고 힘든 세월이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처럼 마음도 꽁꽁 얼어가고 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내린 퇴직으로 돌아오는 그들에게, 취업대란에서 좌절하고 돌아오는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하자. 따스한 말 한마디와 함께. “어서 와요, 수고했어요”

언 땅이 녹아야 새싹이 난다. 얼어붙은 그들의 마음을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자. 마음의 봄을 열어주자. 그래서 그들에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삶의 꽃이 필 수 있도록 새로운 시작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자.

긴 겨울 지나 어느새 3월이다. 봄이 오고 있다. 이번 봄에는 코로나 겨울도 사라지고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봄도 함께 왔으면 좋겠다.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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