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만류에 “감기 한번 안 걸렸다”며 대구 달려간 ‘메르스 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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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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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말렸죠. ‘너무 위험한 데 가는 것 아니냐’는 딸에게 ‘엄마는 지금까지 감기 한 번 안 걸렸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나왔어요.”

서명옥 전 강남구 보건소장 #“메르스 겪어 남 일 같지 않았다” #전국 각지서 의료진 490명 합류

서명옥(60·여·사진) 전 서울 강남구 보건소장은 26일 오후 대구행 KTX에 올라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속출한 대구 지역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전날 대학 동기인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이 5700명 의사회 동료들에 보낸 호소문이 그를 한달음에 대구로 달려가게 했다. 5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 경험이 마음을 움직인 것도 있다. 서 전 소장은 당시 방역체계의 최전방인 보건소장으로 있으면서 현장 상황을 진두지휘했던 메르스 전사 중 한명이다. 당시 강남구에서 메르스가 폭발했었다.

서 전 소장은 2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메르스를 겪었기 때문에 대구 뉴스를 보고 남 일 같지 않았다. 내려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대구시의사회장의 호소문을 보고 결심하게 됐다. 내가 대구에서 학교를 나오기도 했고, 누구보다 먼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보건소장을 끝으로 15년간의 보건소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 강남구 일반 검진센터 소속 영상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27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근무 교대를 하기에 앞서 서로의 보호복을 점검하며 격려하고 있다. [대구=뉴스1]

27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근무 교대를 하기에 앞서 서로의 보호복을 점검하며 격려하고 있다. [대구=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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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전 소장은 “메르스를 겪으면서 의료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주변 관리를 위한 행정적 지원이 절실하단 걸 깨달았다. 대구에 내려와 보니 보건소나 1339 콜센터가 먹통이라 주민 불안이 크다. 이런 부분 지원을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하다가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분투하는 코로나 전사들의 부족한 손길을 채워주기 위해 생업을 제쳐두고 대구로 향하는 의료진이 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7일 오전 9시 현재 전국 각지에서 대구 지역에 의료봉사를 하겠다고 자처한 사람이 490명에 달한다. 의사 24명, 간호사 167명, 간호조무사 157명, 임상병리사 52명, 행정직 등 90명이다.

대구에서도 속속 동참한다. 칠곡경북대병원 등에서 36년간 일한 뒤 6월까지 안식년으로 쉬고 있는 김미래 간호사(60·여)가 그렇다. 김씨는 “지원을 받는다는 대한간호협회 문자를 보고 나섰다. 이럴 때일수록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 나이팅게일 정신을 발휘할 때”라고 말했다. 김씨 딸 역시 만류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면 훌륭하고 존경스럽다고 하지만 막상 엄마가 간다고 하니 불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누구나 이 상황은 두렵다. 그러나 소명을 띤 직업인이고 굳은 의지와 원칙을 준수한다면 무사히 소임을 다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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