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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키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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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에디터

고정애 정치에디터

“내 이름은 형오, 2012년 4월 16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이곳 터키 이스탄불로 날아왔다.”

국회의장 출신의 ‘무계파’ 김형오 #공관위원장으로 통합당 공천 지휘 #영남 불출마 유도 등 변화 이끌어 #YS·이회창 때처럼 인재 충원되나

460여 쪽에 달하는 『술탄과 황제』를 6년여 만에 다시 들추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바로 이거였다. 특히 ‘내 이름은 형오’였다. 그렇다. 국회의장을 지낸 바로 그 김형오다. 당시 그는 20년 정치를 뒤로하고 ‘인디아나 존스’처럼 이스탄불을 배회했다. 몸은 2012년이었지만 머리와 가슴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현장을 내달렸다. 그리고 책에 승자인 술탄 메흐메드 2세뿐 아니라 비잔틴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를 향한 헌사를 담았다. “패배를 뻔히 알면서도 끝내 항복을 거부하고 무너지는 제국의 기둥과 함께 성벽을 수의 삼은 비운의 사나이……. 의연히 산화한 황제는 무덤조차 없다. 하지만 내 가슴엔 묘지가 세워져 있다. 그는 어쩌면 이 시대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자화상이 아닐까.”

그렇게 국회의장보단 ‘김 작가’로 불리길 즐겼던 8년. 그가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다. 그는 기자, 공무원(국무총리 정무비서관,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거쳐 1992년 부산 영도에서 배지를 단 이래 내리 5선 했고 종국엔 입법부 수장까지 지냈다. 이력만 봐선 ‘잘 나가는 정치인이었네’라고 넘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독특함이 있다.

그는 YS(김영삼)계 실세 ‘강총’(강삼재 사무총장) 때 기조실장을 했다. 천막 당사 직후 박근혜 체제에선 사무총장을 했고 극심한 내전 상태였던 이명박·박근혜 대선 후보 경선 때엔 원내대표였으며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의 부위원장이었다. 거대한 권력이 소용돌이칠 때였는데 사실상 ‘무계파’였다. 그에게 ‘보스’가 있었던 것도, 그가 ‘보스’였던 적도 없었다. 2003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서 최병렬·서청원·강재섭·김덕룡·이재오에 이은 6위, 즉 꼴찌를 한 일도 있다. 오랜 측근은 “무계파면서 국회의장까지 올라간 드문 경우”라고 했다. 주변에선 그럴 수 있는 요체로 “일을 잘했다”고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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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게 된 건 황교안 대표의 설득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수락했는데 그는 “황 대표가 얼굴 안 보고 목소리만 들으면 빨려 들어가는 게 있다”고 했다. 물론 농담이다. 사명감·소명의식 같은 것일 거다. 지인에겐 “사형대에 가는 사형수의 심정을 알 것 같다. 필마단기로 엄청난 적진에 뛰어드는 심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간 공관위원장은 당 대표(혹은 대통령)의 대리인이곤 했다. 공관위원들도 실력자들의 대리인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김 위원장이 아니며, 공관위원들도 아니다. 공관위원들은 그가 직접 물색한 인물들이다. 오죽하면 당 안팎에선 “공관위 안에 황 대표의 지분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의 통합에 보탬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새보수당에서 “김형오 공관위는 인정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가 공천의 키를 잡고 한 달여 만에 더불어민주당과 통합당의 기류는 반전됐다. 통합당 쪽 사정이 낫다는 얘기도 있다. PK(부산·울산·경남)에 이어 TK(대구·경북)에서 불출마가 이어졌다. 초반엔 괜찮은 사람들이 그만뒀다는 분석이었는데 이제는 그만둔 걸 보니 괜찮은 사람들이란 평가가 나온다. 여의도 밥을 오래 먹은 이들이 “저 사람은 물구나무서서라도 국회로 들어가려 할 것”이라고 장담하던 인사들 중에도 불출마자가 있다. 김형오 공관위가 만들어낸 변화다. 한창 공천작업 중인 그와 25일 통화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번에 들어올 때 입당을 하지 않을 것이고, 정치는 더군다나 하지 않을 것이고, 왔다가 그냥 돌아갈 것이라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고 했다. 내 한 몸 던져서 자유민주주의만 지키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 ‘사사로움 없이 행동하길’ 기도하면서 시작한다. 나도 인간인지라 부족하고 잘못된 게 많지만 그런 자세와 각오로 일한다.”

그의 기대대로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그가 다시 작가로 돌아가도 그가 공천한 이들은 남는다. 이른바 ‘김형오 키드’다. YS의 15대 공천, 이회창의 16대 공천이 지금까지 보수의 면면을 이끌었다고들 말한다. 김형오의 21대 공천은 어떨까. 그에게 달렸다.

고정애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