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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실버라이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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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경제에디터

서경호 경제에디터

갑자기 초능력이라도 생긴 것 같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때 주위 사람의 잔기침 소리가 10배는 더 크게 들린다. 눈썰미도 한결 좋아진 듯하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마스크 안 한 사람을 찰나에 파악하고 피한다. 마스크는 감염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 자기관리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그널이 됐다.

간만에 여야 이견없이 추경에 공감 #신뢰자본·원격의료 키우는 계기로 #자신과 공동체 믿고 코로나 극복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시장도 주저앉았다. 경제는 흐름이고 연결인데 코로나19는 그 흐름을 막고 연결을 끊는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일시적이라고 믿고 싶지만 한국을 세계와 연결하는 비행기 길이 좁아지고 끊어지면 ‘수출 코리아’는 힘을 쓸 수가 없다. 국내에서도 안 다니고 안 만나니, 대통령 앞에서 장사가 ‘거지같이’ 안 된다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온통 우울하고 걱정되는 소식뿐이지만 그 중에 겨자씨만한 희망이라도 되는 게 없을까 애써 꼽아봤다. 코로나 충격은 불가피하지만 시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 차분히 응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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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간만에 추경에 대한 이의가 없다. 거의 연례행사가 돼버린 정부의 습관성 추경 의존증은 심각한 문제고, 이에 대한 오래된 비판이 있어왔다. 본예산 잉크도 마르기 전에 추경을 거론하는 경우가 허다해 예산 절차를 무력화하고 ‘재정중독’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번엔 여야를 막론하고 추경 필요성을 인정하며 여론도 마찬가지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공방 하나 없이 추경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추경 효과를 내려면 신속하고 충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기와 규모가 문제일 뿐이다.

둘째, 재난은 신뢰자본을 축적할 기회라는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의 주장에 공감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의 신뢰 수준을 미국 수준으로 높이면 지난해 한국 성장률은 2%가 아니라 2.7%쯤 되며, 이는 50조원의 추경 효과와 맞먹는다고 한다. 한국은 선진국보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부족하다는 평가에서 이번 기회에 벗어나 보자. 우리가 그렇듯이 당신도 마스크를 비롯한 개인위생을 잘 챙길 것이라는 믿음이 추경 못지않게 힘이 된다.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마스크와 생필품 사재기가 있다는 소식은 안타깝다. 시민의식의 부재라기보다는 정부의 위기 대응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스크는 정부가 책임지고 조달해 이번 사태가 사그라질 때까지 아예 국민에 무료로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면 한다. 마스크 사용만이라도 빈부의 차이가 없도록 하자. 마스크를 공공재처럼 만들어버리면 사재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추경까지 기다리지 말고 예비비라도 우선 투입할 수는 없을까.

셋째, 우리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국제적 분업체계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국내 대기업은 중국에서 부품 공급이 끊어지는 바람에 공장을 세워야 했다. 원가 경쟁력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고, 싸고 품질 좋은 부품을 세계 시장에서 조달해 제품으로 완성하는 자체가 우리의 경쟁력이기도 했지만 리스크 요인도 된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비용과 리스크를 저울질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넷째, 어제부터 전화만으로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원격의료가 한시적으로 모든 의료기관에 허용됐다. 병원 방문으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한 번 해본 적도 없고, 스마트폰 앱 등 원격의료를 할 수 있는 플랫폼도 없이 시작돼 현장에선 혼선이 있다지만 의미는 있다. 의사협회 등의 반대로 20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있는 원격의료를 의사와 의료 소비자가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시적 허용이 아니라 의료법을 고쳐 합법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인프라가 있는데도 국내시장이 열리지 않아 해외로 나가는 사례가 이어진다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혁신성장을 앞으로 더 이상 논하지도 말자.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도 자신과 주변 사람과 공동체를 믿고 견뎌야 한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도 한 줄기 빛은 있다(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서경호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