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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아침에 스코세이지 감독 편지 왔다, 조금만 쉬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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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배우 송강호. 오종택 기자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배우 송강호. 오종택 기자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편지를 보내오셨어요.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쉬어라. 대신 조금만 쉬어라. 나도 그렇고 다들 차기작 기다린다’고. 편지 보내주셔서 기뻤습니다.”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의 말이다. ‘기생충’이 9일(미국 현지시간)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고 귀국 후 첫 공식 행사다. 현지에서 수상 기쁨을 함께한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과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공동 각본가인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도 참석했다.

19일 아카데미 4관왕 귀국 기자회견 #송강호 "오스카 캠페인, 내가 작아진 느낌" #'기생충' 미국 HBO 드라마는 5~6부작

10개월 만에 같은 장소, "기분 묘하다"

지난해 4월 칸영화제 출국 전 제작발표회를 이곳에서 하고 10개월 만이다. “그만큼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졌다. 참 기분이 묘하다”고 봉 감독은 말했다.

이날 봉 감독은 밝은 표정이었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해 칸 영화제부터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긴 여정에 동행한 회색 머플러를 이날도 착용했다.

 “육체적, 정신적, 체력적으로 방전돼서 (미국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착륙 방송 들을 때까지 10시간 내내 잤습니다.”

'옥자' 이후 번아웃 판정…쉬어볼까 했는데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생충' 기자회견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왼쪽 세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박소담, 송강호, 봉 감독, 곽신애 대표, 한진원 작가, 이선균, 조여정,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 사진 밖 맨 왼쪽엔 배우 박명훈, 장혜진도 참석했다. 오종택 기자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생충' 기자회견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왼쪽 세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박소담, 송강호, 봉 감독, 곽신애 대표, 한진원 작가, 이선균, 조여정,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 사진 밖 맨 왼쪽엔 배우 박명훈, 장혜진도 참석했다. 오종택 기자

그는 또 “2017년 ‘옥자’ 끝났을 때 이미 번아웃 판정을 받았는데 ‘기생충’이 너무 찍고 싶어서 없는 기세를 영혼까지 긁어모아 작품을 찍었다. 촬영기간보다 더 긴 오스카(아카데미상 애칭) 캠페인 기간을 다 소화했다”면서 “곽 대표님과 ‘기생충’을 처음 얘기한 게 2015년 초다. 거슬러 올라가면 참 긴 세월인데 행복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이어 “좀 쉬어볼까 했는데 스코세이지 감독님이 쉬지 말라고 하셔서”라며 활짝 웃었다.

“여기 있는 배우들의 멋지고 아름다운 연기, 촬영팀 등 모든 스태프가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낸 장면 하나하나, 거기에 들어간 저의 고민들”을 돌이키며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사실 영화 자체로서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는 부탁도 했다.

‘기생충’은 9일(현지 시간) 미국 아카데미 비영어 최초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며 새 역사를 썼다. 지난해 한국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부터 10달여에 걸쳐 해외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174개 트로피를 챙겼다.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모두 받은 영화로는 ‘기생충’이 미국 영화 ‘마티’(195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칸 최고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동시 수상작으론 세 번째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미국 느와르 ‘잃어버린 주말’이 1955년 황금종려상이 제정되기 전까지 칸 최고상이었던 그랑프리와 아카데미 작품상을 1946년 잇따라 받았다.

'괴물' '설국열차' 넘은 '기생충' 열광 이유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조명을 손으로 가린 채 질문하는 기자를 바라보고 있다. 왼쪽은 배우 송강호. 오종택 기자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조명을 손으로 가린 채 질문하는 기자를 바라보고 있다. 왼쪽은 배우 송강호. 오종택 기자

봉 감독의 영화들 중 왜 유독 ‘기생충’에 전세계가 열광했을까. 봉 감독은 “빈부격차를 다룬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괴물’은 괴물이 한강변을 뛰어다니고 ‘설국열차’는 미래의 기차가 나오는 SF적 영화들이죠. ‘기생충’은 그런 것 없이 동시대 한국에서 있을 법한 얘기고 우리 배우들이 현실에 기반한 분위기, 톤을 잘 연기해줘서 폭발력을 가진 게 아닐까요.”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미국) 로컬 영화제”라 했던 발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제가 처음 오스카 캠페인하면서 무슨 도발씩이나 하겠어요. 영화제 성격에 대한 질문이 나오다가 쓱 나온 얘긴데, 미국 젊은 분들이 트위터에 많이 올렸나 봐요.”

송강호 "오스카 캠페인,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것도 ‘기생충’이 처음, 천문학적 홍보비를 투입하는 오스카 캠페인에 뛰어든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다. 지난해 8월부터 미국에서 오스카 캠페인을 펼친 봉 감독은 “처음엔 오스카 캠페인이 낯설고 이상할 때도 있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어떤 작품이 뛰어났고 어떤 사람이 참여했는지 세밀하고 진지하게 점검해보는 과정으로 볼 수 있겠더라”고 했다. 송강호는 “세계 영화인과 어떻게 호흡하고 어떤 공통점에 대해 소통과 공감할 수 있나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며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 그만큼 위대한 순간들이었다” 추억했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왼쪽은 배우 송강호. 오종택 기자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왼쪽은 배우 송강호. 오종택 기자

외신에선 ‘기생충’이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도 올랐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생충’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투표하는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출연진 전원에게 주는 영화 부문 앙상블상을 올해 비영어 영화 최초로 받았지만 아카데미‧골든글로브 연기상 부문 후보엔 오르지 못했다.

봉 감독 "타란티노, 10분 내내 조여정 찬사" 

특히 각광받은 이정은과 조여정에 대한 질문에 봉 감독은 “이정은 배우는 미국에서 ‘오리지널 하우스키퍼’가 누구냐며 엄청난 화제였다. SAG 시상식 입장 때 톰 행크스가  강호 선배, 이선균씨, 특히 이정은 배우를 보고 아주 반가워하며 영화에 대한 질문을 길게 했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왼쪽)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지난해 시상식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왼쪽)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지난해 시상식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조여정에 대해선 “LA에서 길 가다가 만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10여분을 조여정 캐릭터에 대해 얘기했다. 부잣집 아내 역할을 하루 내내 생각했다면서 연기와 캐릭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더라”고 말했다. 또 “앙상블상이 입증했듯 누구 하나 균형 빠지는 것 없이 우리 전체 배우가 미국배우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아카데미 작품상 투표에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우협회 회원들이 일등공신이 돼줬다”고 했다.

봉 감독이 다시 샤론 최 언급한 순간은 

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생충'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진모 편집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배우 조여정, 이선균, 한진원 작가,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봉준호 감독, 배우 송강호,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 등 제작진, 배우 등이 마무리 인사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생충'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진모 편집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배우 조여정, 이선균, 한진원 작가,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봉준호 감독, 배우 송강호,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 등 제작진, 배우 등이 마무리 인사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날 기자회견 중 미국 CNN 기자가  “한국사회 불균형을 다룬 영화에 한국관객이 지지한 이유”를 영어로 묻자 봉 감독은 “최성재(샤론 최‧통역가)씨가 없는 상황이라 순간 당황했다”며 ‘기생충’ 투어의 또 다른 스타 샤론 최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이 스토리엔 우스꽝스럽고 코미디적인 부분도 있지만 빈부격차 드러나는 씁쓸하고 쓰라린 면이 있다. 그 부분을 단 1㎝라도 피하고픈 생각이 없었다”면서 “처음부터 엔딩까지 그런 부분을 정면돌파해야하는, 그러려고 만든 영화다. 관객이 불편하고 싫어하실 수 있지만 겉에 달콤한 장식을 해가며 그렇게 영화를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솔직하게 그리려고 한 게 대중적 측면에서 위험할 수 있어도 그게 우리가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영화계에서 영화산업의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포스트 봉준호법’을 제시한 데 대해선 “해외에서 한국영화산업 특유의 활기, 많은 좋은 작품 나오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플란다스의 개’(2000) 이야기를 한다”며 말을 이었다. '플란다스의 개'는 아파트단지 내 개 실종사건을 그린 그의 장편 데뷔작으로, 흥행에선 참패했지만 독특한 작품관을 높이산 제작자로 인해 차기작 ‘살인의 추억’(2003)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요즘 젊은 감독 '기생충' 시나리오 가져온다 해도 

봉 감독은 “요즘 젊은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 같은 시나리오, ‘기생충’과 글자 한 자 바꾸지 않은 똑같은 시나리오를 가져왔을 때 영화가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까. 냉정하게 질문하면 한국산업이 내가 데뷔한 때부터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더는 젊은 감독들이 이상한 시도, 모험하지 못하게 됐다”면서 “1980~90년대 붐을 이룬 홍콩영화 산업이 어떻게 쇠퇴해갔는지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런 길을 걷지 않으려면 한국의 영화산업이 리스크를 두려워 말고 더 도전적인 영화를 껴안아야 한다”고 했다. “최근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가 나오는 등 워낙 많은 재능이 이곳저곳에서 꽃피고 있기 때문에 결국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했다.

봉 감독 동상·생가에 "제가 죽은 후에..."

'기생충'은 미국판 HBO 드라마로도 만들어진다. 미드 ‘체르노빌’처럼 대여섯 에피소드의 밀도 높은 리미티드 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다. 봉 감독은  ‘빅쇼트’ ‘바이스’의 할리우드 감독 아담 맥케이와 함께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그는 "아직 드라마는 초기 단계로, 캐스팅에 관해선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준비 중인 두 편의 차기작은 “몇 년 전부터 해오던 대로 준비하고 있다”면서 “다음 작품으로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나가야 할 것 같다. 20년간 해왔지만 그게 감독으로서 영화산업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또 자신의 동상·생가 등에 관한 기사도 봤다며 “그런 얘기는 제가 죽은 후에 해주셨으면 좋겠고 그냥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제가 딱히 할 말이…”라며 웃었다.

흥행분석 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18일(현지시간) 기준 북미 극장 매출만 4433만 달러에 이른다. 역대 북미 개봉 비영어 영화 흥행 4위인 멕시코 작품 ‘사랑해, 매기’(2014, 4447만 달러)를 바짝 추격한 데 더해, 3위인 중국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2004, 5371만 달러)까지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생충’의 순제작비는 135억원으로 알려졌다.

26일엔 ‘기생충’ 흑백판이 개봉해 열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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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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