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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소설 vs 영화 "1868년 女원작자 성공 녹여냈다"

중앙일보

입력

왼쪽부터 주연 배우 시얼샤 로넌과 그레타 거윅 감독이 지난해 12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영화 '작은 아씨들' 시사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AP=연합]

왼쪽부터 주연 배우 시얼샤 로넌과 그레타 거윅 감독이 지난해 12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영화 '작은 아씨들' 시사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AP=연합]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작은 아씨들’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 대한 뉴욕타임스(NYT) 찬사다. 주목받는 할리우드 감독이자 작가 겸 배우 거윅이 각색·연출한 이 영화는 미국 작가 루이스 메이 알콧(1832~1888)이 남북전쟁 시기 자신의 네 자매를 주인공으로 1868년 펴내 55개 언어로 번역된 동명 소설이 토대다.

엿새째 50만 돌파 영화 '작은 아씨들' #150년 전 자매 이야기, NYT "새롭다" #할리우드 주목받는 여성 스타 총출동 #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개봉한 미국에선 제작비(4000만 달러·약 476억원)의 두 배가 넘는 1억 달러 수입을 올린 데 이어 한국에서도 개봉 엿새 만에 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 6개 부문 후보,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 신선도가 95%에 달하는 등 호평도 잇따른다.

"예술가 여성과 돈에 관한 이야기"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이웃 부자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와 작가를 꿈꾸는 마치가의 둘째 딸 조(시얼샤 로넌). 미국 작가 알콧이 동명 원작 소설을 집필한 그의 고향 메사추세츠 콩코드 지역(생가가 박물관으로 보존돼 있다)에 집 외관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올컷의 학교 선생님이기도 했던『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이 지역에 살았다. [사진 소니픽쳐스]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이웃 부자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와 작가를 꿈꾸는 마치가의 둘째 딸 조(시얼샤 로넌). 미국 작가 알콧이 동명 원작 소설을 집필한 그의 고향 메사추세츠 콩코드 지역(생가가 박물관으로 보존돼 있다)에 집 외관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올컷의 학교 선생님이기도 했던『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이 지역에 살았다. [사진 소니픽쳐스]

거윅 감독은 150여 년 전 고전 소설을 시대에 발맞춘 사려 깊은 아이디어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자전적 성장 영화 ‘레이디 버드’로 2년 전 데뷔,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차지하기 전부터 이 소설을 “내 정체성의 일부로 여기며 자랐다”며 자신이 “『작은 아씨들』을 영화화할 가장 적절한 사람”이라 자처해왔다.

“이것은 예술가인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고 여성과 돈에 관한 이야기예요. 하지만 이런 측면이 깊게 다뤄진 적이 여태껏 없었어요. 이 영화는 이제껏 만든 어떤 영화보다 더 제 자서전처럼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그가 영화사에 전한 얘기다. 이번 영화의 차별점은 원작 소설과 비교하면 더욱 잘 보인다.

'여성' 장벽 넘은 원작자 삶 녹여내

촬영 현장에서 그레타 거윅 감독과 에이미 역 플로렌스 퓨, 메그 역 엠마 왓슨, 조 역의 시얼샤 로넌(왼쪽부터). 현재 가장 주목 받는 할리우드 여성 배우들이다. '오만과 편견' '안나 카레리나'도 참여한 재클린 듀런 의상감독의 절제미 있는 드레스는 올해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다. [사진 소니픽쳐스]

촬영 현장에서 그레타 거윅 감독과 에이미 역 플로렌스 퓨, 메그 역 엠마 왓슨, 조 역의 시얼샤 로넌(왼쪽부터). 현재 가장 주목 받는 할리우드 여성 배우들이다. '오만과 편견' '안나 카레리나'도 참여한 재클린 듀런 의상감독의 절제미 있는 드레스는 올해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다. [사진 소니픽쳐스]

거윅 감독은 영화에 현대적 색을 입히기 위해 원작자 알콧의 실제 삶을 접목시켰다.

알려진 대로 『작은 아씨들』은 알콧 자신의 실제 가족사를 담은 이야기다. 진보적인 교육자 아버지와 사회복지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매들은 가난과 시대적 제약 속에 스스로의 삶을 개척했다. 알콧이 말년까지 여성운동과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경이다.

알콧은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매진했다. 작가로서 첫 명성을 얻은 소설 『병원 스케치』(1863)는 서른 살에 북군 야전병원 간호병으로 자원입대해 복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가난 탓에 재봉일 등을 닥치는 대로 한 시절도 있었지만 1863년부터는 A.M. 버나드란 필명으로 대중소설, 스파이 액션물을 써 생계를 이었다.

『작은 아씨들』 세상에 못 나올 뻔 

'작은 아씨들'의 조 역은 당대 최고 스타 배우들이 거쳐왔다. 1933년 영화에선 캐서린 헵번, 1994년엔 위노나 라이더가 맡았다. 거윅 감독의 전작에 이어 다시 뭉친 시얼샤 로넌은 올해 스물여섯 살, 이번 영화로 네 번째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어톤먼트’ ‘브루클린’ ‘레이디 버드’에 이어)에 올랐다. [사진 소니픽쳐스]

'작은 아씨들'의 조 역은 당대 최고 스타 배우들이 거쳐왔다. 1933년 영화에선 캐서린 헵번, 1994년엔 위노나 라이더가 맡았다. 거윅 감독의 전작에 이어 다시 뭉친 시얼샤 로넌은 올해 스물여섯 살, 이번 영화로 네 번째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어톤먼트’ ‘브루클린’ ‘레이디 버드’에 이어)에 올랐다. [사진 소니픽쳐스]

사실 『작은 아씨들』은 세상에 못 나올 뻔했다. 알콧은 당시 오락거리로 치부되던 소녀문학엔 관심이 없었다. 집필에 나선 건 소년 모험소설을 꺾어보자는 출판사 제안을 받고서다. 작가 자신의 분신인 독립적인 작가 둘째 조(시얼샤로넌)를 비롯해 배우를 꿈꾸며 책임감이 강한 맏딸 메기(엠마 왓슨), 다정하고 피아노 실력이 탁월한 베스(엘리자 스캔런), 막내이자 야망 넘치는 화가 에이미(플로렌스 퓨) 등 네 자매의 이야기를 담아낸 초판이 단 며칠만에 매진됐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년 아닌 소녀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성장담을 이토록 내밀하게 다룬 작품은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 J K 롤링에 앞선 여성 작가 

원작 소설은 작가 알콧의 실제 자매들과 어머니 이야기가 토대다. 네 자매가 조의 창작 대본을 토대로 연극하며 노는 장면도 나온다. [사진 소니픽쳐스]

원작 소설은 작가 알콧의 실제 자매들과 어머니 이야기가 토대다. 네 자매가 조의 창작 대본을 토대로 연극하며 노는 장면도 나온다. [사진 소니픽쳐스]

거윅 감독은 당시 알콧이 『해리 포터』 싱글맘 작가 J K 롤링처럼 직접 판권을 관리하며 결혼이나 물려받은 유산 없이 자수성가한 작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는 쉴 새 없이 작품을 쓰기 위해 양손잡이가 되는 법까지 체득한 알콧의 불같은 성미까지 놓치지 않고 영화에 담았다.

10대이던 네 자매가 크리스마스 아침 벽난롯가에 모인 풍경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첫 장면부터 바뀌었다. 영화는 뉴욕의 출판사 사무실을 찾은 스물다섯 살 조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시간 순서대로 전개된 소설과 달리 영화는 7년 전 유년기와 성인이 된 이후를점프하듯 오가며 각자의 성장을 뒤좇는다. 거윅 감독은 이에 대해 “사람은 늘 지금의 나와 어릴 적 되고 싶었던 나의 합이다. 인생 전체를 담을 수 있는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싶었다”고 했다.

성인시절 부분에선 뉴욕에서 작가로 성공하려 애쓰는 조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대에 출판사 편집자를 상대하며 경제적 자급자족을 쟁취하는 그의 여정은 원작자 알콧과 닮았다. 실제 그는 이 소설의 성공으로 가족 전체를 부양할 수 있게 됐다. 거윅은 알콧의 이런 삶을 영화 속 조 캐릭터에 십분 녹여냈다. 소설에선 크게 조명되지 않았던 지점이다.

지난 9일(현지 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연인 노아 바움백 감독(왼쪽)과 그레타 거윅 감독. 두 사람은 각각 '결혼 이야기' '작은 아씨들'로 올해 '기생충'이 가져간 작품상 후보에 나란히 올랐다. [EPA=연합]

지난 9일(현지 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연인 노아 바움백 감독(왼쪽)과 그레타 거윅 감독. 두 사람은 각각 '결혼 이야기' '작은 아씨들'로 올해 '기생충'이 가져간 작품상 후보에 나란히 올랐다. [EPA=연합]

총명해진 막내 에이미, 사회 비판 대사 

이에 더해 그는 알콧이 원작에 새겨놓은 사회적인 질문들을 영화에서 더욱 부각시켰다. “사랑이 여자가 추구할 전부란 말이 신물 난다” “나이 먹고 ‘마치 양’으로 불리면서 긴 드레스를 입고 과꽃처럼 새침해 보여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해” 같은 조의 대사뿐만 아니다. 여성을 가로막는 사회 구조적인 장벽에 대한 비판은 막내 에이미의 입에서도 나온다.

소설보다 언니들과 나이차가 좁혀진 것으로 보이는 막내 에이미는 프랑스 파리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로리(티모시 샬라메, 사진 왼쪽)를 따끔하게 혼내기도 한다. '리틀 드러머 걸' '미드 소마' 등에 주연한 영국 배우 플로렌스 퓨가 에이미 역을 맡았다. [사진 소니 픽쳐스]

소설보다 언니들과 나이차가 좁혀진 것으로 보이는 막내 에이미는 프랑스 파리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로리(티모시 샬라메, 사진 왼쪽)를 따끔하게 혼내기도 한다. '리틀 드러머 걸' '미드 소마' 등에 주연한 영국 배우 플로렌스 퓨가 에이미 역을 맡았다. [사진 소니 픽쳐스]

이제껏 화려한 금발의 말썽쟁이 막내로만 간주됐던 에이미는 이번 영화에선 총명한 야심가이자, 작가인 언니 조만큼 화가로서 예술적 재능을 펼치는 캐릭터로 강조됐다. 에이미와 조 사이의 경쟁심리, 질투심도 한결 부각됐다.

남성과 로맨스 대신 바뀐 결말은 

소설에선 배경처럼 소비됐던 부자 대고모가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선 메릴 스트립의 연기로 생명력을 얻었다. [사진 소니 픽쳐스]

소설에선 배경처럼 소비됐던 부자 대고모가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선 메릴 스트립의 연기로 생명력을 얻었다. [사진 소니 픽쳐스]

영화는 결말 장면도 새로이 제시했다. 소설처럼 조의 로맨스도 그리지만 ‘그렇게 왕자님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판에 박힌 해피엔딩에 머물지 않았다. 대신 영화에서 조는 자신의 책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인쇄기에 활자가 찍히고 책장이 묶여 표지에 제목이 찍히는 그 순간을 말이다. 150여 년 전 알콧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속편 『좋은 아내들(Good Wives)』을 통해 극 중 네 자매는 결혼시켰지만 그 자신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결혼하느니 자유자재로 나만의 카누를 젓겠다”고 선언했던 그는 특히 조가 결혼하는 결말을 원치 않았다고 전한다. 책 출간 이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많은 열성적인 젊은 여성(독자)들이 로리, 혹은 누군가와 결혼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내게 편지를 써서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며 “내가 조를 말도 안 되게 우습게 만들고 말았다”고 쓰기도 했다.

거윅 "원작자 알콧 원했을 결말" 

거윅 감독은 영화사와 인터뷰에서 달라진 후반부에 대해 “조가 내 소녀 시절 영웅이었다면, 알콧은 어른이 된 이후 내 영웅이다. 그래서 그가 바랐을 결말을 선사하는 게 중요했다”고 했다. 뉴욕 상영 후엔 “조가 자신의 책을 얻게 될 때, 관객들이 여느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선택받는 순간 느꼈을 법한 감정을 느끼길 바랐다”고도 했다.

NYT "1994년 영화판은 백래시 시달려" 

이번 영화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와 로라 던이 연기한 어머니.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작은 아씨들』은 유년시절을 벗어나야 할 무언가로 그리지 않는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고도 말했다. [사진 소니픽쳐스]

이번 영화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와 로라 던이 연기한 어머니.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작은 아씨들』은 유년시절을 벗어나야 할 무언가로 그리지 않는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고도 말했다. [사진 소니픽쳐스]

여성에 의해 각색된 최초의 ‘작은 아씨들’ 영화였던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의 1994년판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흥행이 잘 안 되던 당시 분위기에 따라 가족영화로 홍보됐다. NYT에 따르면 “여성이 독립적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점 때문에 백래시를 겪기도” 했다. 거윅 감독의 이번 영화에 대한 열기는 달라진 시대를 반영한다. 에이미 파스칼 프로듀서는 말한다.

“지금이 이 영화를 발표하기에 가장 완벽한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선택, 어떻게 살 것인가, 돈, 권력, 그리고 남성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이냐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으니까요.”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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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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